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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09. 2020

아빠의 소나무 이력서

황혼의 나이, 그해 봄 아빠가 이력서를 냈다

 

우리 아빠는 컴퓨터에 서툴다. 서툴다는 사전적으로 일 따위에 익숙하지 못하며 다루기에 설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빠의 손끝은 설익어있다. 마우스 클릭과 더블클릭을 구분하지 못해 따닥 하고 누를 때 마다 어색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끝은 조금씩 더디게 자라난다. 아침이 되면 아빠의 시선은 모니터 속 화면을 향해 가 있다. 로그인한 카페 주변마다 배너며 게시판이 보이고 글쓰기를 누르면 사진과 동영상을 첨부해야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다. 아빠에게 네모난 인터넷 속 세상은 하나를 통과해야 그 다음 관문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종의 관문이다. 그 속에 양손을 짓이기며 버티고 있는 사람, 보스와 온 몸으로 맞서 싸우는 사람 아빠다.

재작년 정년퇴직을 한 아빠는 외길인생이었다. 아빠는 40년 동안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 우직하게 묵묵히 한 길만을 걸어오셨다. 그 길을 등지고 조금 더 자유로운 황혼을 위해 비행 중이었고, 그 후 새로운 이륙지를 찾았다. 숲 해설사.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직업이다, 나도 처음에 숲 해설사가 무엇인지 몰라서 찾아봤으니까 말이다. 숲 해설사는 숲에서 자연물들을 이용해 아이들을 상대로 놀이를 해 나무와 친숙하게 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또 산길과 주변을 돌면서 주변에 있는 꽃이나 나무 이름,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




아빠가 처음 숲 해설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를 기억한다. 정갈하게 프린트된 자기소개서 두 장. 자기소개란 안에는 연필로 삐뚤빼뚤 줄을 긋기도 하고 여러 번 지우기도 했던 고민이 가득 담겨있었다. 문서쓰기가 어렵다며 쑥스러운 듯 한글 파일로 옮겨 달라고 하던 아빠의 표정. 그 표정엔 배움에 대한 열정과 새로운 일을 바로 찾았다는 설레임이 가득했다. 나는 아직도 아빠의 이력서를 기억한다. 나태주의 풀꽃이란 싯귀를 적어 넣으며 다른 건 몰라도 흔들리는 바람에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자신을 담담하게 소개했다. 화려한 경력란과 칸은 채워 넣은 것 보다 빈 칸이 더 많았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에 담겨있는 모습은 한결 같이 살아온 당신 본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고 있었다. 티 없이 자라난 새순들, 왠지 그 이력서에 묵묵하게 자라온 소나무 한그루가 자라나고 있는 것만 같다.


 요즘은 스펙만 쫓는 세상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력서에는 어떠한 계절에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뿌리 같은 것이 있었다. 아빠는 숲 해설과정을 수료하시고, 장애인단체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나서도 또 다른 해설 공부거리는 없는지 끊임없이 공부하신다. 남들보다 더뎠기 때문에 조금씩 더 여러 번 하려고 애쓰신다. 가끔 요즘 세대들은 당연히 아는 컴퓨터 사용법을 반복적으로 물어볼 때마다 나는 아빠에게 좋은 소리보다는 짜증을 더 많이 내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아빠의 60대 황혼 이력서를, 그 설레임 속에 피어났던 순수한 아빠의 배움에 대한 열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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