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5년 정도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원래 성격이 온화하고 남편과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희생하는 분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분노가 많아졌다. 주로 얼마나 호되게 시집살이를 했는지를 이야기하며 화를 냈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점이 치매의 시작점이었다.
어머니의 평소 성품을 아는 가족들은 갑자기 변해버린 어머니를 보며 당혹스러워 했다. 당시 나는 어머니가 ‘우울증’이라 생각했다. 그 즈음 <우울증>이란 책을 만들었었는데, 노인의 우울증은 우울함보다 분노, 화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인성 우울증은 가족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 좋아진다고 들어 열심히 어머니 이야기를 맞장구치며 들어 드렸다. 조금 과장하면 한 100번은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어머니가 그 옛날 쌓였던 묵은 감정을 어느 정도 털어내면 다시 예전의 온화한 어머니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끝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가 시집살이 이야기를 꺼내면 ‘아, 또 시작이구나. 이번에는 언제 끝나려나’ 한숨부터 나왔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당연히 처음 듣는 것처럼 열심히 들어야겠지만 쉽지 않았다.
좋은 얘기도 세 번 이상 들으면 싫다고 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불편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계속 듣기가 힘든데, 내가 그렇게 친구를 괴롭혔다고 생각하니 서운함은 미안함으로 변했다. 게다가 10번 잘 들어주다 한 번 쓴 소리 했다고 섭섭해 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남편의 인내심은 참으로 대단하다. 혹독하게 불면증을 앓았던 두 달 동안 남편 또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고생 많았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친구에게 매일 전화하고 싶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로 끝내려 애를 썼다. 전화를 하고 싶은데 한 지 얼마 안 될 때는 카톡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남편은 같이 사는 가족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로 학교 개학이 계속 연기되고 있어 교사인 남편은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내 앞에 있었다. 주중에는 그나마 내가 사무실에 잠깐이라도 나갔다 들어오지만 주말에는 하루 종일 남편 옆에 붙어 하소연을 했다. 너무 몸이 힘든 날은 ‘이렇게는 살 수가 없다’며 남편에게 패악을 떨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롤러코스터처럼 날 뛰는 내 감정을 묵묵히 받아냈다.
나를 이해하고 안쓰러워하며 견디던 남편은 내가 전화기를 붙잡고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하는 걸 싫어했다. 전화를 할 때는 내가 자기연민에 빠져 더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은 다른 사람이 내 문제를 해결해줄 것도 아니니 자기한테만 이야기하고 끝내라고 했다. 자기는 괜찮다고.
혼자서 감당하겠다는 남편이 고마우면서도 불쌍했다.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 때문에 같이 밤잠을 설치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끝도 없이 반복되는 내 이야기를 듣는데 말이다. 타고난 체질이 그리 건강하지도 않은 남편이 나보다 더 먼저 쓰러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데도 참으면 병이 더 커진다. 어떻게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데, 전화를 하거나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너무 힘드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매일 일기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내키는 대로 썼다. 어느 날은 절망을 쏟아내고, 어느 날은 스스로에게 희망을 강요하는 글을 쓰며 감정을 가다듬었다.
다행히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면서 말로는 채우지 못했던 허기를 견딜 수 있었다. 물론 글을 쓴다고 속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을 덜 괴롭히고, 나 또한 덜 상처받는다는 것으로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