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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Apr 18. 2022

글을 써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생각과 감정은 글로 쓸 때 구체화된다

수십 년을 잡지 기자, 단행본 기획․편집자로 일하면서 늘 좋은 아이템을 찾느라 애를 써야 했다. 신선하면서도 차별화된 좋은 아이템을 발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자면서도 아이템을 궁리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꿈을 꾸었을까.

그렇게 한 동안 아이템 찾아 삼만리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번쩍 하고 괜찮은 아이템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머릿속에서는 일사천리로 그 아이템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를 그리는데, 그 과정에서 열에 아홉은 생각만큼 아이템이 참신하지 않아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살아남은 1개 정도의 아이템은 생각만으로는 상당한 확신을 갖게 한다. 잘 될 것 같은 예감에 기분도 상쾌해진다. 그런데 막상 아이템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기획안을 작성하다 보면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템이라 확신했는데, 글로 정리하다 보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하고, 아이템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마땅치 않음이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은 글로 쓰기 전에는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다.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감정 또한 느낄 수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아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해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힐 때는 글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      


복잡할수록 글이 필요하다

감정은 알아차려주기만 해도 가라앉는다. 나 역시 마음이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하지만 대개 감정은 복합적이다. 똑 부러지게 어떤 한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색깔이 다른 여러 종류의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와 자신조차도 헷갈릴 수 있다.

“양가적인 감정 때문에 너무 힘들어. 밉고 증오스럽기만 하면 헤어지면 되는데, 때로는 불쌍해. 미운 감정보다 불쌍한 감정이 더 크면 그냥 용서하면 되는데 감정이 왔다 갔다 하니 괴롭기만 하네.”

믿었던 남편이 외도를 해 크게 상처를 받은 지인이 털어놓은 말이다. 복잡한 감정이 얼마나 지인을 괴롭히고 있는지가 그대로 나에게까지 전해져 마음이 무거웠다.

어디 지인뿐일까?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요동쳐 혼란스러운 경우는 많다. 분명 좋은데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미움과 애정이 공존해 괴로운 경우는 매우 흔하다. 불확실한 것은 언제나 두려움을 몰고 온다. 감정도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엉켜 있을 때는 외도한 남편에 대한 애증으로 이도 저도 못하는 지인처럼 어떻게 감정을 이해하고 처리할 것인지가 모호해 더 괴롭다.

무언가를 결정하기 힘들 때 차분하게 종이에 장단점을 써보면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직을 하는 것이 좋은지, 지금 다니는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이 좋은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면 이직을 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적어보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좀 더 선명하게 보인다.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압도적으로 많을 때는 이직하는 것이 좋고, 장점보다 단점이 많을 때는 당연히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 설 것이다.

감정은 결정해야 할 대상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양가적인 감정이 동시에 든다면 색깔이 다른 두 종류의 감정을 구분해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적어보는 것도 괜찮다. 왜 미운데 불쌍하기도 한지, 왜 행복한 데 불안한지 글로 써보면 감정의 실체가 더 잘 보인다.                          


글의 논리가 생각의 비약을 제어한다

마음이 우울할 때는 사고가 자꾸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흐른다. 나는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믿는다. 그래서 부정적인 말은 가능한 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자 극단적인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

거의 두 달 가까이 잠을 못 잔 어느 날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괜히 남편의 관심이나 동정을 사기 위해 한 말은 아니었다. 반은 진심이었다. 깨어 있지만 너무 피곤하고 머리가 무거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하루 종일 ‘자고 싶다’는 생각과 ‘왜 잠이 오지 않을까?’ 이유만 찾으며 살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더더욱 반대급부로 행복하게, 정상적으로 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고 싶다 생각하고 함부로 말을 뱉은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예기 불안’, 즉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생각을 비약시켰다. 백방으로 노력해도 불면증이 좋아지지 않자 앞으로도 계속 같은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는 살 수 없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슬퍼하고, 억울해하고, 분노했다.

한 번 나쁜 생각이 들면 빠른 속도로 증폭된다. 더 비극적이고 우울한 최악의 생각으로 치닫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 ‘계속 이렇게 잠을 못 자면 어떡하지?’로 시작한 생각은 ‘이 상태가 좋아질 수 없으니 죽는 게 낫다’로 논스톱으로 연결된다. 참으로 엄청난 비약이다.

이 근거 없는 비약에 제동을 거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글을 쓰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생각만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글로 써 놓으면 보이기 시작한다. 나 또한 극단적인 내 생각을 글로 쓰면서 내가 얼마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단정 짓고, 비약했는지 느꼈다. 글을 써 놓고 보니 ‘죽고 싶다’는 마음 이면에는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보였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억지로 생각을 바꾸려고 하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극단적인 생각을 할 때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글로 써보고, 쓰고 싶은 말을 다 쓰면 한 번 읽어보자. 그것만으로도 스스로 얼마나 생각을 비약했는지 알 수 있고, 특별한 근거도 없이 비약한 것을 알고 나면 생각은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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