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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Aug 02. 2021

왜 전화를 할수록 허기가 질까?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갱년기 불면증

사람은 무너졌을 때 본능적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응원해줄 사람을 찾는 것 같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며칠 전부터 갑자기 잠이 안 와. 왜 그러지?”

“갱년기 증상 같은데. 열은 안 나고?”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 자리에 누우면 열이 확 올라오는 느낌이 있어.”

“거봐. 갱년기 때문에 그래”


열 사람에게 물어봐도 다 똑같은 대답이었다. 갱년기 때 나타나는 증상은 우울, 불안, 홍조, 열감, 불면 등 다양한데 나는 불면으로 나타난 것 같다며 누구나 겪고 지나가는 일이라 위로했다. 석류를 먹어봐라, OO락이 좋다, 훼OO이 도움이 된다, 호르몬을 보충하면 금방 좋아진다 등 조언해주는 치료법도 다양했다. 좋다는 그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었고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불면의 밤이 길어질수록, 그래서 몸과 마음이 점점 더 텅 비고 약해질수록 나는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편하게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약속을 잡고 시간에 맞춰 어디론가 이동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전화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름 머리를 쓰기도 했다. 어느 한 사람에게 자주 전화하면 그 사람이 피곤해할 수 있으니 한 사람에게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전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나도 누군가가 끝도 없이 자기 푸념과 고민을 늘어놓으면 힘들다. 게다가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돼 이야기를 하는 내내 징징거리면 안쓰러우면서도 지쳐버린다. 그래도 처음 한 번은 아무리 우는 소리를 하며 힘들다고 해도 들어줄 수 있으니 시간 안배를 잘 해가며 가능한 같은 사람에게 여러 번 전화하지 말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불면이 최고조에 달했던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정말 전화를 많이 했다. 친하지만 평소에는 잘 연락도 안 하던 친구들을 모조리 찾아 전화를 돌렸다. 


“잘 지내지? 오랜만이야. 코로나 때문에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으니 전화했어.”

“그러게. 못 본지 꽤 오래 됐네. 너는 별 일 없지?”

“응. 잘 지내는데, 요즘 갱년기여서 그런지 불면증 때문에 좀 그래.”


마치 친구의 소식이 궁금해 전화한 것처럼 시작해 내 안부를 물으면 기회는 이때다 기다렸다는 듯이 불면증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시작한 통화는 짧으면 30분, 보통 1시간을 넘겼다. 오랫동안 나를 알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차돌맹이처럼 단단해 갱년기 따위는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이냐며 의아해했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네. 그런데 갱년기 증상이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올 수도 있나?”


걱정해주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이 걱정보다 놀라움을 앞세우면 나는 어쩐지 서운해져서 더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일주일 내내 잠을 못 자니 딱 죽겠더라. 병원에서는 호르몬 치료를 권해 지금 약을 먹고 있다. 빨리 낫고 싶어 한의원에도 다닌다. 그래도 병원 다니느라 힘만 들지 차도가 없다. 한 번 터진 이야기 봇물은 끝도 없이 넘친다. 몇 마디 못 한 것 같은데, 시간은 훌쩍 지나 아쉽게 다음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는다. 


대부분 다음은 없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고, 위로가 고팠던 나는 오히려 허기가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단 두 사람만은 예외였다. 한 사람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절친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지만 공감대가 많아 꾸준히 인연을 맺어온 사람이었다. 스타일은 달랐지만 두 사람만큼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절친은 이미 오래전부터 불면증을 앓고 있어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가 귀에 꽂혔다. 어느 하나 허투루 들을 이야기가 없었다. 공감은 물론이고 어떻게 해야 불면증을 조금이라도 호전시킬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까지, 전화를 할 때마다 주옥같은 조언과 위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회에서 만난 절친 역시 짧게나마 자신 역시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얼마나 힘들겠냐며 같이 아파하고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극도로 불안했다가도 그들과 한참 통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고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 전화를 하는 빈도수가 확 늘어버렸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만났던 절친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불안함을 호소했다. 시시콜콜 그날의 내 기분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내가 얼마나 힘든지 공감해주기를 기대했다. 


“약을 먹고 자는데도 4시간밖에 못 자. 너무 힘들어.”

“이상하게 기분이 너무 안 좋아. 어제는 다른 날보다 잠을 더 잤는데도 그러네. 왜 그렇지?”

“몸이 너무 피곤해 꼼짝도 못하겠어. 이거 약 부작용 아냐? 일상이 엉망이 됐어”


나로서는 그때그때 다른 이야기라 여겼지만 남들이 보면 고장 난 녹음기처럼 똑같은 레퍼토리를 되풀이하는 나에게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내가 하는 말이 도움이 되니? 벌써 한 달 째 내내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넌 좋아지질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듯 멍해졌다. 난 매번 다른 이야기를 했고, 그 친구가 해주는 조언과 위로, 격려 때문에 버틸 수 있었는데 왜 자기 말이 도움이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 말로는 매번 ‘재미있는 무언가를 하면서 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점점 더 조급해지고 더 불안해하니 좋아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러면서 “몰랐는데 마음이 약하네”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때부터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친구와의 통화로도 내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 동안 그 친구가 내가 듣고 싶었던 얘기를 해주기 때문에 전화를 자주 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친구에게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다. 희망을 듣고 싶었지, 불안한 미래를 확인받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누구보다도 나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로부터 ‘나를 잘 몰랐다’는 이야기를 듣자 허기가 더 심해졌다. 나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러워졌다. 자타가 공인하는 씩씩하고 긍정적이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는데, 불면증이 깊어질수록 예전에는 없었던 내 모습이 나타나 나조차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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