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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유 Aug 05. 2021

내가 책 한 권을 필사한 이유

손으로 책을 읽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2020년 4월 8일 오랜만에 책을 샀다. 2018년에 출간돼 이미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이다. 왠지 제목부터 끌렸다. 당시 나는 완전히 혼자 고립된 느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면이 두 달 넘게 지속되면서 내 몸과 마음은 바닥까지 추락한 상태였다. 타고난 강골이라 30대 초반에는 몇 달씩 하루 2~3시간밖에 못 자면서 일해도 끄떡없었다. 그랬던 내 몸은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비명을 질러댔고,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음까지 무너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주변 사람들도 당연히 ‘갱년기’로 인한 불면증이니 갱년기 치료를 받으면 금방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 효과적인 갱년기 치료 중 하나가 ‘호르몬 치료’다. 호르몬 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유방암 발생 위험이 커지는 부담은 있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달을 꽉 채워 호르몬 약을 먹었는데도 불면은 좋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었고, 병원에서는 갱년기로 인한 불면증은 아닌 것 같으니 수면전문클리닉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수면전문클리닉은 크게 보면 코골이,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 등으로 인한 수면장애와 정신적인 요인으로 인한 불면을 치료하는 곳이다. 나는 코를 골거나 수면무호흡증이 없으니 후자에 속할 것이다. 수십 년을 함께 한 친구가 말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너에게는 깊은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그 불안감을 없애지 않으면 불면이 해결이 안 될 것이다.”라고. 


의아했다. 난 성격이 급하고 걱정이 많은 편이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불안감을 품고 있다니 인정하기 어려웠다. 물론 질병에 대한 불안은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다 맑은 정신으로 인간의 품위를 지키며 세상을 떠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시어머님을 보내면서 그 슬픈 현실을 알아버렸다. 


그렇지만 그 불안감은 적어도 수년 전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것 때문에 갑자기 불면이 생겼을까? 인정하기 힘들었다. 다만 불면으로 몇 달 동안 고생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진 것은 사실이다. 성격상 어떤 문제가 생기면 집요하게 원인을 분석하며 해결책을 찾는다. 일을 하는 데는 이런 성격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불면에는 쥐약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불안감은 커졌고, 불안감은 뇌를 더 각성시켜 불면을 악화시켰다. 


잠은 생각하고 집착할수록 도망간다. 의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잠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든, 친구들을 만나서 신나게 수다를 떨든 어떤 방법으로든 잠을 생각하는 시간을 없애라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다 쉽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면 시력도 떨어진다. 영화를 봐도 재미없었고, 책을 보려면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버거웠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기도 했지만 시간 맞춰 약속 장소에 가는 것부터 부담스러웠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잠을 덜 생각할까? 궁리 끝에 생각한 방법이 책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쓰는 것이었다. 생각을 멈추거나 덜어내는 데는 잠을 자는 것도 좋다. 일단 자고 나면 신경이 한결 누그러지고,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의 물꼬가 터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던 병이 불면이었으니 잠으로 마음을 달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마침 눈길을 끄는 책이 있었다. 불면이 장기화되면서 나 스스로에게 적잖이 실망하고 있던 터였다. 깊고 깊은 불면의 터널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당신이 옳다>는 책 제목은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미리보기로 본 내용은 더 매력적이었다. 바로 전자책을 구매했다.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을 구매한 이유는 종이책보다는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게 더 편해서였다. 모니터가 넓으니 왼쪽에는 전자책을 띄워놓고, 오른쪽에는 워드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책 내용을 타이핑했다.      


머리가 복잡할수록 손으로 읽어라 

머리가 복잡할수록 몸을 움직이라고 말한다. 손으로 옮겨 적어도 되지만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글을 써야 할 때는 키보드를 두드렸기에 컴퓨터를 택했다. 굳이 책을 빨리 읽을 이유도 없어 몸과 마음이 피곤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타이핑을 하며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한 페이지 이상 읽으면서 타이핑하기 힘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니 한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 이미 앞의 문장이 어떤 내용인지 가물가물했다. 컴퓨터로 타이핑하며 읽을 때 좋은 점은 비교적 쉽게 여러 번 반복해 타이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손으로 쓸 것인지, 컴퓨터로 타이핑을 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다. 손으로 쓰는 것이 더 좋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손으로 쓰던, 타이핑을 하던 그냥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손을 움직여 쓰면서 읽으면 머릿속에 더 잘 들어온다. 손을 움직이며 쓸 때 뇌에 정보를 기억하는 부분이 더 활성화되고,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할 때 손으로 쓰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키보드를 타이핑하는 것보다 손으로 쓸 때 내용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용을 기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불안함에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는 기계적으로 책 내용을 타이핑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 며칠은 타이핑을 하는 것인지, 책을 읽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갔다. 그래도 열심히 타이핑을 하다 보면 잠시나마 ‘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머리도 조금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유튜브를 보고 명상도 많이 하고 요가를 하기도 했지만 책을 손으로 타이핑하면서 읽는 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효과가 좋았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책 내용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나도 모르게 타이핑 자체에 열중해 내용을 놓치면 다시 천천히 타이핑을 하면서 내용을 머릿속에 담았다. 그러면서 내 마음도 조금씩 편해졌다. 깨 있는 동안에는 잠만 생각하며 울고 좌절했던 내가 책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 책을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한참 불면으로 고생할 때는 몸도 피곤하지만 마음이 불안해 차분하게 한 자리에 앉아있질 못했다.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피곤하고 머리가 무거울 때는 밖으로 나가 걸었다. 실내에 있으면 공기가 정체돼 더 답답한 느낌인데, 밖으로 나가 움직이면 그래도 덜 답답하고 몸도 덜 피곤한 것 같아서였다. 그랬던 내가 비록 한두 시간이라도 한 자리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놀라운 변화였다. 


한 권을 다 읽는데 약 한 달 반이 걸렸다. 아래아 한글로 타이핑한 책 내용이 A4 용지 기준으로 128장이다. 그 중 이미 상당 부분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꽤 두꺼운 책을 다 읽고 타이핑한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마음이 한참 힘들 때는 자존감마저 떨어져 더 힘들었는데, 책 한 권을 손으로 읽고 난 흔적을 파일로 확인하면서 자존감도 많이 회복했다. 


나처럼 책을 따라 쓰며 마음을 달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을 필사하는 사람들은 종종 보았다. 성경도 책의 일종이고, 성경을 따라 쓰는 이유도 기본 바탕은 같지 않을까 싶다. 나약한 인간의 본성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더 온전히 믿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읽고 따라쓰기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어떤 책을 따라 쓸 것인가! 어떤 책이든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나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탐독하는 책을 선택할 것을 권한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라면 마음이 불안하고 복잡해도 조금은 더 눈길이 가기 때문이다. 


만약 읽고 싶은 책이 없다면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좋은 책을 선택해도 좋다. 사람마다 가치관이나 취향이 달라 어떤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 나에게는 별 감흥을 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책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설령 내용이 재미없어도 책을 읽는 자체보다 따라 쓰면서 마음을 달래는 게 목적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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