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성공한 사람입니까?'
아마 대부분은 이 질문에 즉답하길 주저할 것이다.
실제로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차지할 확률은 극히 낮다.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하지만 그 자리는 늘 부족하다. 획일화된 가치와 경쟁을 기반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성공이란 욕망 그 자체이다.
공시생 지은님은 평범했다. 남들처럼 추구했고 남들과 같은 고민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아쉽게도 인간의 위대함을 잘 모른다는 점까지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죠. 시험은 나만 잘한다고 합격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게 성공학의 허구예요. 경쟁이 있는 한 합격은 사실 나보다는 남의 공이 더 크지요. 고맙게도 남이 공부 덜해서 내가 합격하는 거니까요.”
“우리는 경쟁에 익숙하고 실패는 일상이지만 여전히 이 승률 낮은 게임에 올인하고 배팅합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지은님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질문을 던졌다.
“성공을 위해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실패확률이 높아도 도전할 수밖에요."
“맞아요, 우리 사회에서 성공과 경쟁은 한 세트로 묶여 있어요. 그러니 실패도 서비스처럼 따라오는 거고요. 그러면 이왕 질문을 시작한 김에 지은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실패에 대해 확실하게 파헤쳐 보는 건 어때요?"
그녀는 다시 반짝였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전에 어느 역사학자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그는 전통적인 선악 논쟁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런 게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그저 할 일을 하는가 못하는 가만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패러다임이 다른 사람 간의 대화는 쓸쓸하다. 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고 다른 한 사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만일 '악'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실패가 바로 그것이다.
인생에서 실패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매우 이례적이며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경쟁 프레임에서는 실패가 너무도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모두가 겪는 감기처럼 흔하고, 오히려 격려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렇게 대부분이 별 문제의식 없이 평범한 패배자의 길을 받아들인다.
'성공이 이게 맞아?'
'내가 고작 이걸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달려온 거야?'
설령 1%의 성공을 거머쥔 사람조차도 허무를 피할 방법은 없다. 경쟁은 흥행에 성공했지만 플레이어들은 모두 루저가 된다.
"시험에 불합격하는 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이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거예요. 인간은 실패할 수 없도록 잘 설계된 기계와 같아요. 만일 인생에서 실패한다면 그건 정말 대형 사건이거든요."
"시험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는 말씀이죠? 거기서 얻는 것도 있고 다음 기회도 있는 거니까 또 도전하면 되는 거고요."
그러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면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은님은 성공과 실패가 인간의 본질과 연결된다는 것을 아직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험에서 실패하는 건 얼마든지 괜찮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절대로 실패하면 안 된다.
따라서 무엇보다 진짜 성공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 꿀벌 한 마리가 있다.
그에게 성공이란 그리고 실패란 무얼까.
그걸 알려면 꿀벌의 일이 뭔지부터 알아야 한다.
"자연의 존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글쎄요. 생존? 행복?"
"아뇨. 바로 일이에요. 존재와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로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만들 때도 다 용도를 생각하고 만들잖아요. 예술작품조차도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고요. 이걸 모르고 살아가는 동물은 없어요. 다 척척 알아서 하죠. 오히려 머리 좋은 인간만 이걸 모른다는 게 아이러니예요"
"생소한 건 아닌데 뭔가 의외이고 약간 충격이에요.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말도 생각나고요. 어쨌든 생존이나 행복보다 일이 앞서는 거네요?"
"생존과 행복은 일을 하면 자연히 주어지는 보상이에요. 직장에서 맡은 일 하면 월급주잖아요. 그런데 일은 안 하고 월급만 달라고 하면 그 직원은 어떻게 될까요? 만일 할 일은 안 하고 한 달 내내 딴 일만 했다면요? 월급 받기 힘들겠죠? 직장 다니기도 어려워질 테고요. 제 일을 안 하면 이렇게 생존도 행복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존재'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려면 '일'이 뭔지를 알아야 하는 거죠. 이게 자연의 이치예요. "
꿀 모으기, 채밀. 꿀벌의 천직이다.
채밀을 하면 성공이고, 못하면 실패다.
정상적이라면 꿀벌의 실패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꿀벌의 성공으로 얻은 꿀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식물은 번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꿀벌이 더 이상 채밀을 하지 못한다면 어떤가.
그것은 자연계에 벌어진 사건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존재에서의 '악'은 바로 '일'의 실패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역시 심플하다.
인간의 일이 뭔지만 안다면 실패할 일도 없는 게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정작 인간의 일이 따로 있음을 알지 못한다.
실패가 평범해지는 현상.
그 바탕엔 '진짜 일'에 대한 무지가 깔려 있다.
질문.
자연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은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것이다.
인과율의 도도한 흐름에 질문하며 다른 차원의 길을 개척해 내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오염된 물이 정화되기도 하고, 아픈 동물이 치유되기도 한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고통이 사라진다.
질문력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과도 같은 능력이다.
질문력은 고차사고를 이끌고 더 좋은 질문을 만들어 내는 선순환을 만든다.
인간이 질문할 수 있다면, 인생은 결코 실패할 수 없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가짜 실패'로 몰고 가는 것은 다름 아닌 '무지'이다.
질문하라.
그리고 당당하게 당신의 성공을 인정하라.
"질문력은 문제를 찾고 원인과 결과의 맥락을 탐구하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진짜 문제를 만나고 해결의 실마리를 얻어요. 문제를 찾아 제거하는 과정, 이것이 인간의 일이에요. 이걸 안다면 실패하는 비극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혁명이 일어난 거 같아요. 아직 정리는 안되지만, 질문이 '진짜 일'이라는 것 하나는 꽉 붙잡겠습니다. 제가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꽤 해결할 문제가 많을 것 같아요. 시험문제보다 지금은 그 문제에 더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데요."
지은님의 이 말은 놀라웠다. 그녀 안에서 다시 드러나는 위대함에 마음이 숙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