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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를 모르는 아이

by 신수현

열아홉의 가을은 스산하며 어두웠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의 첫 발을 내딛던 그해, 버스를 타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이야기는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여덟 명의 친구들이 면접을 함께 하기 위해 여행 아닌 여행을 함께 하였다 우리는 액세서리 수출하는 무역회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은 학교와는 다른, 나의 날개를 달아주는 곳이 아니라, 어둡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수출만 하는 회사이며, 서울 송파에 위치한 건물은 깨끗했다. 예전에 스타킹을 만드는 공장에 견학 간 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여러 군데 견학을 하고 선택해야 하는데, 전 회사와는 다른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나의 발은 그곳에 묶였다. 각자 위치에 배치된 우리는 그림자처럼 회사의 풍경 속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도금은 하청업자의 손에서 이루어졌고, 우리는 그저 포장하거나, 혹은… 디자인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 내가 발을 디딘 곳은 ‘개발부’라는 이름의 공간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늘 공부와는 먼 아이였다. 공부가 흥미도, 행복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공부는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의 제목이 나의 이야기 같았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들어서며 정말 신기하게도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고, 성적이 오르면서 공부는 재밌어졌다. 조금 더 일찍 공부의 재미를 알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그 시절 면접관들은 이력서와 등본, 생활기록부의 등수와 선생님이 무의미하게 기재해 놓은 상담기록이었다. "공부를 좀 했네?"그 말은 훈장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여덟 명 중 세 명, 나를 포함한 세 명은 개발부라는 깃발 아래 모였다. 어쩌면 성적이라는 보이지 않는 줄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끈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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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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