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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리스트 작성

읽어버린 소비를 찾아주는 마법의 도구

by 신수현 Apr 04. 2025

어느 날, 문 앞에 작은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이게 누구에게 온 걸까? 자세히 살펴보니 내 이름이 적혀 있다. 하지만 도대체 내가 언제 이걸 샀지? 뭘 주문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박스를 열기 전까지는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일이 단 한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쇼핑은 계속되지만, 소비의 흔적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제 우리는 ‘소비의 과잉’보다 ‘기억의 결핍’으로 인해 돈을 잃고 있다. 쇼핑을 하고, 결제를 하고, 택배를 받고, 반품하고, 환불받는 모든 과정은 마치 복잡한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얽혀 있다. 그런데 그 드라마의 대본이 없다. 기록하지 않으면, 이 모든 쇼핑은 오로지 내 기억에만 의존하게 된다.     


문제는 단순히 물건을 잊는 것이 아니다. 쇼핑을 잊는다는 것은 내가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모른다는 뜻이고, 이는 결국 예산 관리의 실패로 이어진다. 매달 가계부를 정리하다 보면 “이 돈은 어디로 갔지?” 하는 항목이 꼭 하나쯤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쇼핑과 관련된 지출이다. 심지어 구매하지도 않은 물건에 대한 환불을 깜빡하거나, 중복 주문으로 같은 물건을 두 개 사는 일도 발생한다. 계획 없이 시작된 소비는 끝없이 새어나간다.     


그래서 나는 ‘쇼핑리스트’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마트에 가기 전 작성하는 리스트가 아니다. 지금은 온라인 쇼핑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쇼핑리스트다. 내 방식은 이렇다.    

 

1. 장바구니 이전 단계 기록


사고 싶은 것이 생기면 일단 ‘쇼핑메모장’에 적는다. 버킷리스트라고 작성해도 좋다. 장바구니에도 담지 않는다. 이 메모장은 단순히 사고 싶은 물건의 이름만 적는 공간이 아니라, 왜 사고 싶은지, 지금 필요한 건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를 짧게 메모하는 공간이다. 이 짧은 질문만으로도 무의식적인 소비를 한 번 걸러낼 수 있다.     


2. 구매 후 바로 기록


결제를 마친 순간, 항목을 메모장에서 ‘구매 완료’로 이동시킨다. 이때 구매 날짜, 상품명, 금액, 결제수단, 배송 예정일 등을 함께 적는다. 나중에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다. 택배가 제때 오지 않을 때 이 리스트는 훌륭한 체크리스트가 된다. 택배어플을 통하여 수시로 배송조회 추적을 하는 것도 좋은 습관이다.    


3. 취소·환불까지 추적


구매가 끝이 아니다. 반품하거나 환불을 받을 때도 반드시 기록해 둔다. 간혹 환불신청을 하고 환불이 된건지 잊어버린적이 있다. 신용카드의 경우 명세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수 없고, 체크카드의 경우 통장에 입금되는데, 환불기간이 7-10일 걸린다고 상담하지만, 이 시간은 잊어버리기 딱 좋은 시간들이다. 그리고 구매처와 결제처가 다르기 때문에, 쇼핑몰 링크도 기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환불 예정(날짜)’, ‘환불 완료’로 상태를 분류해서 확인한다. 예전에는 환불 요청을 했는지조차 잊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이 리스트를 쓰고부터는 그런 실수가 줄었다. ‘돈이 새는 구멍’을 막는 셈이다.     


4. 한 달에 한 번 돌아보기


한 달 치 쇼핑리스트를 정리해서 다시 들여다본다. 가장 만족스러운 소비는 무엇이었고, 굳이 필요 없었던 소비는 어떤 것이었는지 체크해 본다. 이 과정을 통해 내 소비 습관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에 쉽게 끌리는지, 어떤 상황에서 충동구매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쇼핑리스트를 기록의 도구로 사용한 뒤부터, 이상하게도 ‘사는 재미’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물건을 선택하고, 결제하고, 기다리고, 받는 그전 과정을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다. 그 감각은 돈을 아끼는 것 이상의 만족을 준다.     

우리는 자주 “돈이 없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돈이 없는 걸까? 어쩌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잊었기 때문은 아닐까? 잊히는 소비는 반복된다. 기록되지 않은 지출은 다음 달에도, 다음 해에도 같은 방식으로 흘러간다. 쇼핑리스트는 그 흐름을 붙잡아두는 가장 단순하지만 강력한 기술이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당신의 다음 소비 앞에 하나의 문장을 적어보자.

“나는 지금 왜 이걸 사고 싶은가?”

기록은 통제이고, 통제는 자유다. 잊히는 소비가 아닌, 기억에 남는 소비를 위해 쇼핑리스트를 다시 꺼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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