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나는 숫자와 관련된 업무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경리 업무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갑근세’와 ‘부가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방의 작은 회사에 입사했다. 사람들은 작은 회사에서의 일이 쉽다고 했지만, 그 믿음은 곧 깨졌다. 자체결산을 해야 하는 작은 법인기업이었고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떠맡아야 하는 곳이었다. 인수인계를 맡은 전임자는 이미 퇴사하였고, 나는 한 달 동안 과장님의 서포트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전표와 영수증이 쌓여 있었다. 매일 퇴근 후, 전임자가 남긴 전표의 뒷면에 붙은 영수증을 하나하나 대조해 가며 그 의미를 되짚었다. ‘왜 이 계정과목을 썼을까?’, ‘이 숫자는 어디서 온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숫자들 속에서 작은 단서를 찾아 퍼즐을 맞추듯 일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영수증을 보며 계정과목을 이해하게 되었고, 회사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계정과목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몇 달은 눈물이 날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숫자에 대한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특히 법인 결산 업무를 경험하면서 ‘재미있다’는 감정이 처음으로 느껴졌다. 과장님은 나의 세심한 성향을 주목하시며 회계 업무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그 말이 계기가 되어, 나는 30살에 경영학과(야간)로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10년 늦은 시작이었다.
대학은 나에게 신세계와 같았다. 그동안 누군가의 판단에 의존하던 내가,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조별 과제를 하며, 시험공부를 통해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한 공부 이상의 변화였다. 삶의 태도가 바뀌는 경험이었다. 출석을 빠지지 않고, 제시되는 예상시험문제를 공부했더니 생각보다 높은 학점을 받게 되어서 나에게 공부는 즐거웠다.
하지만 배움의 길이 항상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세무사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또다시 벽을 느꼈다. 내가 더 꼼꼼하게 일할수록, 누군가는 세무사님에게 더 많은 지적을 받아야 했다. “여자들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떠올랐다. “같이 맞춰가자”는 은근한 압박 속에서, 나는 ‘내가 너무 튄 걸까?’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그저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었다. 누구를 앞서기 위한 것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친구와 이런 문제에 대해 대화를 하면서 우리들은 누군가에게 100%보다, 80%만큼의 능력만 보여줘야 사회생활이 쉽다고 이야기했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낮에는 숫자와 싸우고, 밤에는 강의실에서 졸음을 참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교에서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강의실의 칠판과 교수님의 말씀 속에서 서서히 풀어졌다. 그렇게 단 한 번의 휴학 없이 4년을 채웠고, 졸업 후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학력과 경력이 쌓일수록, 오히려 취업의 문은 좁아졌다. 세무사 사무실에서는 입사 시 경쟁이 없다. 공석이 생기면 간단한 면담으로 채워진다. 화려한 이력서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적응할 수 있는지,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지였다. 나는 대학원 학력을 이력서에서 지웠다. 함께 일하는 실장, 사무장, 다른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학원 나왔다며? 대학원이 왜 필요해?"라는 말이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학력은 도구일 뿐, 정답이 아니었다. 대학이 취업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것이 아니며, 대학 때문에 취업이 쉬운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나는 배우고 있다. 자격증 공부를 하고, 새로운 회계 기준을 찾아본다. 처음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결정을 앞두고는 누군가의 확신을 빌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들이 알려주는 길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잘못된 정보로 나를 오히려 멀어지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다짐한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묻지 않고,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나의 노력은 더 이상 누구의 평가 대상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시기나 질투의 대상이 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책을 펴고, 강의를 듣고, 또 묻는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싸움, 누구와도 나누지 않아도 괜찮은 그 결핍의 여정은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향으로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