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13
Chapter13. 눈 감고 컴퓨터사용하기
가끔 삶의 무게가 더 느껴질 때 =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나는 해야 할 때
앞의 Chapter6에서 살짝 거론한 바가 있는데, 우리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들은 컴퓨터나 핸드폰을 사용할 때 소리로 텍스트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핸드폰의 경우는 역시 각종 조작이 간편하게 되어있어 교육을 받지 않고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컴퓨터의 경우는 완전 신세계여서 보행이나 점자와는 별개로 컴퓨터 수업을 따로 받았었다. 그리고 느낀 점은 '오! 이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구나!'와 '결국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감정의 공존이었다. 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되었던 컴퓨터 사용을 상당한 부분까지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오!'를 외칠 수 있었고, 사실 어느 프로그램이든 완벽할 수는 없는데 시각적으로 극복이 안 되는 상황에서 맞이하게 되는 문제들이다 보니 '아쉬운 점'들이 더 크게 느껴진 듯하다.
내가 아는 바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음성 출력 프로그램은 '센스리더'이다. 보통 정안인 분들에게는 워낙 생소한 이름일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들에겐 26인치 OLED모니터보다도 더 선명하고 소중한 프로그램이 바로 이 '센스리더'이다. 그런 면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오랜 기간 업데이트를 해오며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개발자 분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어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오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줄어드니 말이다.
'센스리더'사용의 기본 원칙은 '마우스 사용 금지'이다. 눈이 잘 안 보이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화면의 어느 위치에 마우스 커서가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마우스 커서를 마음먹은 대로 볼 수 있다면 이미 '센스리더'는 필요 없는 상태이다. 그런 분들은 하산해도 좋다.(아! 여긴 센스리더 교육장이 아니었지....) 여튼, 그런 이유로 일단은 방향키를 움직여 읽어 나가는 것이 제1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바탕화면을 예로 들어서, 방향키로 아이콘을 이동하면 하이라이트 된 아이콘의 이름을 읽어주는 것이 바로 '센스리더'의 역할인 것이다. 같은 원리로 파일이나 폴더를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인터넷 창으로도 이어진다. 인터넷 창이 뜨면 '센스리더'의 위치는 화면 좌측 상단에 위치하게 된다. 여기서 방향키를 움직이게 되면 링크나 텍스트 단위별로 하나씩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동하는 동안 모든 버튼, 검색창, 링크, 텍스트 등을 거치며 내려오기 때문에 전혀 모르는 홈페이지의 화면 하나를 파악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물론 사용에 익숙해지면 내가 원하는 항목으로 좀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숙달이 되지만 처음 가보는 사이트에선 역시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는 스캔이 필요하기 때문에 참 쉽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핸드폰과 다른 점이다.
핸드폰의 경우 기본 작동 원리인 '하이라이트 되면 읽어 준다.'는 점은 같지만 핸드폰의 경우 정안인 들도 손가락으로 터치를 하고 음성 출력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도 손가락을 이용하기 때문에 좀 더 이용이 쉽다. 다른 점이라면 일반 화면에서는 한 번만 누르면 해당 앱이 작동되지만, 음성 출력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한번 누르면 해당 앱이 하이라이트 되고 그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더블 클릭을 해줘야 앱이 실행이 된다. 10년 전에 처음으로 이 프로그램을 사용했을 때는 뉴스 기사 같은 것들은 읽어주지 못했었지만, 최근에는 세세한 것까지 잘 읽어주어 뉴스를 검색해 보거나 문자, 카카오톡 등을 사용하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다. (물론 사용이 불편하기는 하다. 하하하)
다시 컴퓨터 이야기로 와서... 이렇듯 새로운 사이트 하나 써칭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그나마 네이버나 구글 같은 일반 웹사이트들은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공무원들만 사용하는 내부망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욕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내가 아는 욕들만으로는 속이 시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하하. 아마도 보안이 많이 걸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좀 너무 한다 싶은 경우가 종종 있다. 현재 상태에서는 근로 지원인이 있지 않은 이상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업무를 해결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공무원들에게 제일 중요한 공문서 작성 프로그램에서 호환이 엉망이고, 재정 프로그램에서도 일을 하다가 신규 발생 욕설을 찾아봐야 할 지경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에서는 아무리 '센스리더'를 움직여도 화면의 한 구역만을 쳇바퀴 돌 듯 왕복할 뿐 내가 원하는 작업 위치로의 이동이 일어나질 않는다. 마우스로 내가 원하는 작업 위치를 클릭하면 너무 쉽게 해결될 일이지만 마우스 커서를 볼 수 없는 이들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결국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게 된다. "ㅇㅇ야~ 여기 와서 이것 좀 한번 도와줄 수 있을까?"하고 후배들에게 아주 공손하게 물어보는 일이 다반사이다.(정안인들에겐 참으로 별것 아닌 일이라 보통은 후배들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 다들 각자의 업무로 바쁜 일상에서 이런 시답잖은 일로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일들은... 참 미안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사기업이라면 센스리더의 효용성이 더 클 수도 있겠다고 종종 생각을 했다.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은 아무래도 좀 더 많은 보안과 떨어지는 접근성을 지니고 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툴툴 거리는 것이 일상이긴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센스리더의 고마움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이니 말이다. 센스리더가 없었으면 어쩌면 난 혼자 녹음을 하고 있었을지도... 그리고 그 녹음한 내용을 친구나 아내에게 들려주며 워드를 쳐달라고 부탁했겠지. 하하하. 생각만 해도 불편함과 민폐스러움에 소름 끼친다.
그래도 4차 산업 혁명 시대라고 하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조금은 기대를 걸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린다. 좀 더 많은 투자와 지원으로 음성 출력 프로그램의 혁신이 일어나 어떤 화면에도 쉽사리 접근할 수 있고, 이미지 파일에 적혀있는 텍스트까지도 읽어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개발되길 말이다.(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현재는 이미지 파일에 적혀있는 텍스트는 전혀 읽어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기반이 갖춰졌을 때,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누구나 사회에서 1인의 몫을 해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혁신에 슬쩍 묻어서 나도 좀 쉽게 회사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