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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샘 Sep 18. 2023

좌충우돌 육아일기 2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14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Chapter14. 좌충우돌 육아일기 2


자연은 누구에게나 힐링이란 선물을 주고,
그것은 잘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양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가 바로 여행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근래에 와서는 가족 여행이 얼마나 일상이 되었는가?! 내가 어렸을 때는 춥고 배고파서 여행이란 어마어마한 이벤트를 치렀던 기억이 거의 없는데 말이다.(기억력이 나빠서 기억이 안 나는 것일 수도...) 여튼!!! 그래서 우리 가족도 종종 여행을 다녀오곤 한다. 아내가 운전을 해서 가깝게는 가평, 멀게는 제주도까지가 우리의 여행 범위이다. 다만, 제주도까지가 작전 영역이긴 하지만 아이가 멀미를 잘하고 아내가 운전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사유로 경상도 지역과 전라도 지역으로 여행을 가본 적은 없었다.      

그러던 2023년 아이도 이제 제법 많이 커서 9살이 되었고 코로나로 인한 방역 조치도 완전 해제에 가까워졌기에 우리 가족은 경주 여행을 떠나보기로 결심을 했다. KTX를 타고 경주로 가서 시티투어버스를 활용해 관광을 즐긴다는 계획! 그렇게 되면 타지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 일도 없어지고 아이의 멀미도 크게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매우 좋은 계획이라는 자화자찬 속에 한 가지 문제가 대두되었다. 집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 집은 노원구와 인접해 있는 중랑구. 택시를 타고 서울역까지 가면 거의 한 시간 반을 가야 한다.(우리의 출발이 토요일이었기에 토요일 오전 교통량을 기준으로 생각한 시간이다.) 아이가 멀미를 하는 데다 그 긴 시간 택시 안에서 마땅히 놀아줄 것도 없기에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방법이...  나는 택시를 불러서 짐과 함께 서울역으로 가고 아내와 아이는 조금 먼저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역까지 가는 방법이었다. 사실 그다지 나쁜 방법은 아닌데 늘 그렇듯이 우리 가족의 함정은 '나'였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각자 출발하였지만 중간중간 위치를 확인해 보니 거의 비슷한 시각에 도착을 할 것 같았다. 나름 잘 되었다고 생각을 하며 서울역에 도착해 택시의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고 택시를 떠나보낸 그 순간!! 택시 안에 또 다른 작은 가방 하나를 놓고 내린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해야 하는 바로 그 순간, 아내도 도착했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전화를 받아 가방을 놓고 내려 서둘러 기사님께 전화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전화를 끊고, 다시 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는데... 어휴... 얼마 안 되는 그 사이에 다른 손님을 태우고 떠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정 설명을 드렸고, 다행히 참으로 선량한 분이셔서 가장 가까운 파출소에 가방을 맡겨 두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사이에 아내와 아이를 만나 오랜만에 배부르게 욕을 먹고 표를 교환하러 갔다. 기차표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다음 기차에 표가 있어 다시 표를 예매하고, 다른 택시를 잡아타고 앞선 택시의 기사님이 맡겨두신 파출소로 달려가 가방을 되찾고 다시 돌아오니 우리 세 사람은 이미 긴 여행에서 돌아온 것과 같은 피로감에 쩔어 있었다.    

  

그렇게 지친 가운데 KTX를 탔는데  우리가 새롭게 예매한 자리는 열차 중간에 위치한 4인용 가족석. 우리는 셋. 자연스럽게 전혀 일면식도 없는 한 분의 남자분과 함께 4인용 가족석에 착석하게 되었다. KTX 가족석에 앉아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 테지만 이 자리가 되게 협소하여서 정말 가족이나 친한 사이여야 좀 편히 갈 수 있지, 아니면 모르는 사람과 무릎이 맞닿는 인생에서 둘도 없을 불편한 상태로 2시간의 여행을 하게 되는 그런 자리이다. 나는 그 남자분의 옆자리에 앉아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며 그 둘이 보내는 따가운 눈총을 그대로 흡수. 반성의 재료로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라는 생각을 되뇌이며 경주까지 내달렸다.     


나의 뻘짓 덕분에 첫날 관광은 약소하게 지나갔고, 두 번째 날은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돌아다니게 되었다. 투어 버스를 타보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걷는 길이도 상당한데, 아내가 나와 아이를 동시에 케어하며 다니느라 고생을 좀 했다. 덕분에 여행 중에 아내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귀찮게 하지 말고 손 잡아."였다 내가 혼자서 조금 뒤처질 만하면 조용한 목소리로 다가와 저런 이야기를 나에게 던지곤 했다. . 그럼 나는 군말 없이 아내의 손을 잡아야 한다. 까딱 잘 못했다가는 아내에게 맞을 수도.... 하하하.    

 

아내와 나는 어쩔 수 없이 늘 붙어 다니다 보니 동네에서도 쓸데없이 사이가 좋은 부부라고 소문이 나있다. 소문이란 것이 역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좋은 선례가 아닌가 싶다. 그저 나의 생명을 보호하고 미아방지를 위한 차원에서 아내와 손을 잡고 다니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나서서 "우리가 그렇게 잉꼬부부는 아니랍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사람들의 오해는 깊어만 가는 중이다. 아마 여행지에서도 가족끼리 항상 손을 잡고 다니는 우리들을 보며 참 사이가 좋은 가족이라고 사람들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사이좋은(?) 우리 가족은 여행을 잘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KTX에서는 다행히 모르는 분과 같이 앉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고 편안히 돌아올 수 있었다. 아! 아내와 아이가 "이렇게 편안히 올 수 있는데 아빠 때문에 경주올 때는 너무 불편했다"라고 되뇌이는 잔소리를 제외하면 말이다.      


시각장애인이 무슨 여행이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현명하신 분들은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한다. 방구석에 앉아서 자연을 상상하는 것과 나를 감싸고도는 바람과 자연이란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웅장한 자연의 음악을 들으며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기분이 다르고, 공기가 다르고, 소리가 다르다. 내가 여행 매니아는 아니지만 1년에 몇 번 떠나는 '여행'이란 활동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힐링이 되고 활력을 찾아주는 좋은 시간이다. 비록 아내와 아이의 구박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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