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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샘 Sep 25. 2023

인연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15

<보이지 않아 보게 된 세상>


Chapter15. 인연


어떤 만남이건 그것을 '좋은 인연'으로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의 영역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의 숫자를 헤아리기는 매우 어렵지만 사회학자 솔라 풀의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약 3,500명 정도가 된 다고 한다. 개인차이가 심할 것을 고려해 최대치를 두 배인 7,000명으로 잡아도 세계 인구 80억에 비교하면 대략 110만 분의 1의 인연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이것은 대략 벼락 맞을 확률과 비슷하다. 벼락 맞을 확률이 백만분의 일 정도 된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주위의 사람들이 상당한 귀인인 것 같다. 물론 감정적으로 '귀인'이란 말에 절대 포함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도 떠오르긴 하지만...  하하하.     


 그런 귀한 인연들 이어서일까? 얼마 전 배우 이성민 님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동안 만났던 모든 인연들 덕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좋은 인연이건 나쁜 인연이건 관계없이. "

인터뷰를 들으면서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을 했다. 많은 인연의 힘이 나와 그들 간의 사이에 상호작용하여 지금의 내가 있고 그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나의 인연들은 어떠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이란 단어와 결부시켰을 때 가장 먼저 생각이 난 분은 바로 '어머니'였다. 비단 나뿐만은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면서 가장 홀대하는 인연이 바로 '부모님'인 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그 연배의 어머니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본인의 자식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분이셨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애정 1순위 TV프로그램인 '아침마당'에 가끔 장애가 있는 분들의 사연이 나오거나 하면 나에게도 글을 써보라고 말씀하고는  하셨다. 물론 그럴 때마다 어머니한테 내가 그 정도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해야 했다. 대게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언젠가는 한번 해보자.'라는 어머니와 나 상호 간의 협약 체결로 마무리가 되곤 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다시 한번 어머니의 말씀을 돌아보며 이 글을 적게 되었다. 무슨 위인전을 적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나의 소소한 이야기를 적는 것이니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이렇게 브런치에 올라온 나의 글을 보았다면 참 많이 좋아하셨을 텐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역시 인간은 후회의 동물인가 보다.     


 그리고 나서 '악연' 중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20살도 되기 전 나의 눈 수술을 잘 못 하여 결과적으로는 지금의 상황에 놓이게 한 의사이다. 티비에 나와서 강연을 하시거나 위인전이 나올 정도로 훌륭하신 분들은 그런 악연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시고는 하던데... 나는 그렇지는 않다. 하하하. 다만, 죄책감도 갖고 있지 않을 그 사람에 대한 신경을 쓰며 나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별로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는 관련된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의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감사하지 못했을 많은 것들에 감사하게 되었고, 내 상황이 달라졌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아내와 만날 수 있었고, 아내와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 딸도 없었을 테니 현재의 나를 있게 해 준 공로가 어느 정도는 인정된다. 하지만 그 공로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살아오면서 만난 수많은 인연과 살아가면서 만날 인연들 그 인연들은 모두 '귀인'일 수 있다. '선한 인연'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악연'까지 귀인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나의 일을 방해하는 것 같고 내 인생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될 것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인연의 영향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모르고, 설사 정말 최악의 인연이라 좋은 일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그것을 '반면교사'삼아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름의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혹자는 그 '난관', 혹은 '나쁜 인연'을 만났을 때 슬피 울며 이를 가는데 힘을 기울이고 다른 누군가는 그것들을 내 삶의 밑거름으로 삼아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동력으로 사용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결국 누구에게나 좋고 나쁜 사건들이 고르게 일어나지만 그것을 삶에서 의미 있게 바꾸는 것은 '나 자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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