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이 우리의 삶에 가져다 준 의의는 기계를 활용한 “대량생산”에 있습니다.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석탄, 석유와 같은 동력원을 사용하는 설비들 혹은 다양한 기계장치를 한 곳에 모아서 정해진 공정에 따라 제품을 찍어내는 공장, “플랜트”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산업혁명은 플랜트 산업과 함께 시작하고 같이 발전했습니다.
대량생산을 위해 생산기계의 집합체인 플랜트가 건설되고 운영된 것이 산업혁명의 시작이었다면, 산업혁명 이전에는 대량생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까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기계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시대에도 재화의 생산이 필요했을텐데, 모든 제품이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알아도 쓸데없지만 궁금해서 찾아본 산업혁명 이전의 대량생산에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들을 전달 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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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 피람세스 (Pi-Ramesses) 군사 산업 시설
피람세스는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람세스2세가 터를 다진 고대 이집트의 수도입니다. 람세스2세는 피람세스에 대규모 사원, 부두, 창고, 주택 등을 건설했는데, 인류 최초의 생산 공장인 군사 산업 시설도 건설했습니다.
람세스 2세 이전부터 이집트는 히타이트라는 신흥 강대국과 대립 중이었다고 합니다. 주변 국가들을 끊임없이 정복하면서 뛰어난 무기를 갖추고 전투의 만랩으로 성장했던 히타이트와 다르게 오랫동안 평화와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이집트는 덜떨어진 무기로 히타이트에 맞서다가 참패하게 됩니다 (기원전 1200년 경)
야망이 넘쳤던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로부터 이집트를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주변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해서라도 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군사산업시설이 필요했고, 람세스가 건설한 인류 최초의 공장에서는 당시로서는 첨단 무기인 활 (화살 속도가 시속 320km 정도였다고 합니다)이나 전차를 대량으로 생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로마 – 납 파이프의 대량생산
로마의 지하 수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만큼 유명합니다. 로마는 광물자원을 대량으로 채굴했고, 채굴된 광물 중 납으로 만든 금속 파이프를 도시 전체에 매설해서 상수도 시스템을 만든 최초의 문명입니다.
당시의 로마는 다른 문명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하수도 시스템을 이용하는 최첨단 사회였지만, 환경오염도 1500년~2000년 앞서서 맞이했습니다. 납을 채굴하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환경 오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과학자들이 로마시대의 대기 오염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몽블랑 산의 빙하를 연구했는데, 로마 시대의 납 오염 수치가 다른 시대에 비해 10배 이상 높았다는 증거를 찾았습니다. 이 수치는 환경오염에 무지했던 1900년대 중반 오염 수준의 1/5, 1/10배 수준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 및 소비 규모가 이전 시대에 비해 폭증했고, 몰지각한 상태에서 중금속이 포함된 화석 연료를 마구 써댔던 것을 생각하면, 로마 시대의 광물자원 채굴규모와 납 제품 생산규모가 어마무시했음을 보여줍니다.
중국 (한나라) – 화폐의 대량생산
동양의 문명도 대량생산을 했습니다. 중국의 한나라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약 120년 동안 280억 개의 화폐 (오수전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을 생산했다는데, 1년에 2억3천만개씩 찍어낸 셈입니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100원짜리 동전의 제조량이 처음으로 연간 1억 개를 돌파한 것이 1979년이었으니까, 엄청난 양의 동그란 금속품을 생산한 것입니다.
학자들은 고대 중국의 금속 가공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대량의 화폐를 만들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 이외의 고대 문명은 망치로 철을 두드려서 철제품을 만드는 ‘단조’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철제품의 대량생산이 어려웠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녹인 철광석을 거푸집에 부어서 철제품을 만드는 ‘주조’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주조는 철광석을 녹이는 용광로 및 송풍기를 제작하고 운용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넘사벽의 최첨단 기술이었습니다. (유럽에서 철제품을 주조로 생산하기 시작한 시점이 14세기 무렵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화폐생산 능력은 계속 발전했습니다. 고려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송나라는 약 80곳의 주전소 (화폐를 제작하는 공장)에서 150년간 3000억개, 평균 1년에 20억개씩 화폐를 찍어냈습니다. 단순히 국내 유통을 위해서 무식하게 많이 화폐를 생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중국 내에 남아돌던 동을 수출하기 위해 부가가치가 높은 화폐로 제작해서 수출하는 방법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송나라의 동전과 철전이 고려, 일본, 베트남 등등 주변 각국에 수출되면서 송나라의 화폐는 무역에 사용되는 국제통화뿐 아니라 주변국의 일상통화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대량생산 능력이 당시 중국의 세계관을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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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는 우리 나라 역사 속의 대량생산 이야기를 전달 드리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