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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elboso Nov 26. 2020

[플랜트 산업 쉽게 접근하기] 산업혁명 이전 대량생산2

한국사

서양과 중국의 산업혁명 이전 대량생산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드렸던 지난주에 이어서, 우리나라 역사에서 찾은 대량생산 이야기를 전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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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고려청자의 대량생산, 전남 강진


시대의 예술품인 고려청자를 현대의 개념처럼 기성품을 찍어내듯 대량생산을 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고려청자의 생산과정을 체계화해서 품질까지 관리했다는 사실이 작년에 발굴된 가마터 (전남 강진)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강진에서 확인된 고려청자의 생산 시설은:

①     치소: 고려청자의 생산을 관리하는 관청

②     대구소: 최고급 고려청자를 생산하던 공방

③     가마: 연소실, 요전부 (작업장), 번조실 (그릇을 두는 곳)

④     그 외 도로 및 폐기장

전남 강진의 대구소 치소 추정 건물터 유적 - 문화재청 보도자료

강진에는 지금까지 모두 188개의 가마터가 발견되어, 고려시대 당시 귀족들의 잇아이템이자 수출 효자품목이었던 고려청자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품질이 관리되었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고려청자는 고려시대 당시, 현재 반도체 급의 초고부가가치 상품이었고, 고려청자 제작 기술은 그 시대의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지금도 흉내 내지 못하는) 신기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삼성반도체 평택사업장 = 고려청자 강진 사업장”으로 비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조선 – 책의 대량생산, 인쇄 기술의 혁명


조선시대에는 책의 대량생산을 위한 시스템이 존재했습니다. 금속활자를 이용해 책을 대량으로 찍어냈었는데, 책의 대량생산은 금속활자를 발명한 고려시대가 아니라 세종대왕의 집권 시기에 이뤄집니다.

세종대왕 기념관에 전시된 주자소도(鑄字所圖)

세종대왕 이전의 금속활자는 

①     구리로 만든 조판틀에 밀랍을 녹여 붓고 

②     활자를 심어 고정시킨 상태로 

③     먹을 바르고 인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밀랍에 의해 고정된 활자가 쉽게 흔들렸기 때문에, 인쇄 후에 활자가 비뚤어져서 하루에 10장 정도밖에 인쇄할 수 없었습니다. 빠르게 인쇄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금속활자의 목적은 나무 활자보다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책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을 진두지휘하여 활자가 정확한 사각형을 이뤄서 매끈하게 가공될 수 있도록 주조 시스템을 개선했습니다. 기존 인쇄방식을 개혁하면서 개량 이전에는 하루 10장 미만의 인쇄가 가능했으나 개량 후에는 40장 이상으로 인쇄 물량이 대폭 증가했습니다. 

 “하루 40장이 대단한가?” 싶을 수도 있지만, 당시 중국이 사용하던 동으로 만든 활자는 목판보다 생산성도 떨어지고 비용은 더 많이 들기 때문에 다시 목판 인쇄로 퇴보했고, 섬나라 원숭이들은 금속활자 자체를 몰랐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이 개선한 인쇄 기술은 결국 조선의 문화적 성숙을 가져왔습니다. 금속활자로 중앙정부에서 엄청난 양의 책을 찍어내면, 금속활자가 만들어 낸 인쇄본이 지방으로 전해지고, 지방에서는 인쇄본을 바탕으로 목판을 새겨 다시 책을 인쇄하면서 책 생산량은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종대왕이 개량한 인쇄술은 이 후로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고, 조선이 망할 때도, 활자를 활자 틀에 심고 먹을 칠하고 솜뭉치로 두드려 한 장 한 장 떼어내서 책을 묶는 방식의 인쇄술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조선 – 무기의 대량생산, 체계적인 개발과 품질 관리


조선 시대에는 모든 무기의 생산과 품질을 관리하는 ‘군기감’ (세조 집권 시, ‘군기시’로 확대 개편되었습니다)이라는 중앙 기관이 있었는데, 현재의 방위사업청 및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등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즉, 약 600년 전에도 무기를 대량 생산하기 위한 생산시설, 연구소, 엄격한 품질과 규격이 모두 존재했습니다. 


특히 책의 대량생산으로 문화부국을 이룬 세종대왕은 무기의 체계적인 대량생산을 통해 조선을 현재의 미국과 비견되는 최첨단 국방과학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세종대왕의 국방과 관련된 업적은;

①     총통등록 완성: 화포를 개량하고 화기의 성능을 담보하기 위한 표준화. 규격화 사업

②     총기류 개발: 세총통(소형 권총), 사전총통, 팔전총통, 천자총통, 지자총통, 

③     로켓(?) 개발: 중신기전, 대신기전(2단형 로켓, 길이 5.6m, 무게 4~5kg, 비행거리 1km),

영화 신기전의 한 장면, 버섯구름..??

④     다연장 미사일 개발(??): 화차

미국에서 재현한 조선시대 화차


이러한 성과는 다음과 같은 생산 체계 및 품질 관리 덕분이었는데,

①     전국의 생산시설에 통일적인 설계도면과 엄격한 기술 규정, 제품 검사 체계를 적용

②     각종 화약병기의 설계에 사용된 치수의 가장 작은 단위가 0.3mm (‘리’)

③     무기 제조 공정의 세분화, 분업화 및 월과제 (현재의 성과제도) 도입

④     화약병기의 철저한 사후관리 (제작 연도, 무게, 화약의 양, 감독관, 제작 장인을 각인)


이처럼, 현재의 생산체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시스템을 갖추고 조선의 국방력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생산능력까지 끌어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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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걸쳐서 산업혁명 이전에는 어떻게 대량생산을 했는지, 역사를 더듬어 전달드렸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알아본 역사를 통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계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시대에도 대량생산이 가능했고, 지금의 혁신 속도보다는 느리지만 분명한 혁신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후변화로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존의 플랜트에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한 지금, 우리가 쌓아왔던 과거로부터 현재의 기후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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