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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elboso Jan 28. 2021

[플랜트 산업 쉽게 접근하기] 석유 산업의 역사 -3

#3. 미국이 장악한 석유 패권과 칠자매

지난주에는 석유 산업의 중심 무대가 된 중동과 그 무대 위에서 석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세력들의 움직임에 대해 전달드렸습니다. 오늘은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사우디 아람코의 탄생과 함께 미국이 어떻게 석유 패권을 손에 쥐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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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5의 위기 (1929~1931)


빅 5가 체결한 아크나캐리 협정(Achnacarry Agreement)은 석유 산업을 독점해서 시장을 독식하려는 불법적인 담합 행위였습니다. 더 나아가, 뉴저지 스탠다드는 1929년 자신들과 빅 5의 미국 측 멤버인 뉴욕 스탠다드 오일, 걸프 및 미국 내 석유업체를 포함한 석유수출협회(Export Petroleum Association)를 만들어서 미국 석유기업의 석유 생산량을 동결하고 해외 수출을 제한하는 방법을 통해 미국 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반독점법에 위배되는 불법적인 담합 행위를 승인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갖은 로비에도 석유수출협회를 통한 석유 생산 통제가 미국 정부에 의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뉴저지 스탠다드를 비롯한 석유산업의 기득권 세력들은 독점적 지위를 잃고 석유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동부 텍사스의 어느 유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일

게다가, 같은 해인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극심한 경기 침체에 의해 석유 수요가 급감하였고 1930년에는 동부 텍사스 전역에서 미국 최대 규모의 유전이 연달아 발견되면서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시간마다 새로운 유정이 만들어질 정도의 엄청난 규모였는데, 텍사스에서 새로 발견된 유전들에 의해서 하루 34만 배럴이었던 생산량이 1931년 4월에는 하루 100만 배럴까지 치솟았습니다. 당연히, 대공황과 텍사스의 신규 유정에 의해 석유 가격은 1930년 1.19 달러에서 1931년 65센트로 거의 반 값으로 폭락했습니다. 석유 산업이 붕괴될 정도의 위기였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 (1932)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로 바뀌었습니다. 폭락한 석유 가격과 대공황 등의 불안한 정세는 석유 기업들이 시장 통제를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줬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 석유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취해졌습니다.

①     수입 석유에 대한 배럴당 21센트의 관세 부과 (1932년 6월) – 석유 가격 통제

②     미국 각 주별 생산량 할당제도 시행 – 석유 생산량 통제

③     석유 수출 가격을 동부 텍사스의 가격에 연동, 텍사스 플러스 (Texas-Plus Price) – 석유 가격 통제


특히 텍사스 플러스는 석유의 생산 지역과 상관없이 동부 텍사스의 가격에 운임을 더한 가격을 글로벌 시장에 유통되는 가격으로 확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동에서 아무리 값싼 석유가 수입되더라도 소비자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비싼 석유와 동일한 가격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석유 시장, 새로운 도전자의 등장 (1933~)


레드라인 협정, 아크나캐리 협정, 텍사스 플러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공정하고 간사하게 석유 시장을 장악한 석유 카르텔의 다양한 규정들은 석유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정책들이었지만 반대로 카르텔에 속한 업체들이 능력껏 시장을 개척할 수 없게 만드는 제한 사항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는 강력한 카르텔의 빈틈을 비집고 카르텔의 제한을 받지 않는 업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후에 쉐브론(Chevron)이 되는 SOCAL(Standard Oil of CALifornia)입니다.


당시 시장 점유율 유지, 생산 시설 확충 제한과 같은 카르텔의 규정을 따를 필요가 없었던 SOCAL은 1928년 바레인의 유전 개발권을 따내고, 4년 뒤 유전을 발견했습니다. 바레인 유전 개발은 원래 카르텔 멤버인 뉴저지 스탠다드와 걸프에 제시됐었지만 뉴저지 스탠다드는 공급 과잉을 우려해 스스로 포기했고, 걸프는 개발 의사가 있었음에도 카르텔의 반대로 바레인 유전을 포기했습니다. 


Max Steineke - CASOC의 수석 지질학자 . 담맘 No.7의 성공에 큰 영향을 준 인물.


SOCAL은 바레인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33년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왕과 유전 개발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CASOC(California Arabian Standard Oil Co.)을 설립했습니다. 석유 시추에 어려움을 겪던 SOCAL은 1936년 레드라인 협정의 멤버 중 하나인 텍사코(The Texas Co.)에 지분의 절반을 매각하면서 텍사코와 공동으로 사우디의 유전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1938년 사우디 다란(Dharan, Dammam No.7)에서 시장에 유통이 가능한 원유의 생산에 성공합니다. 


미국 정부와 SOCAL, 텍사코의 딜 (1943)


대규모 유전을 발견하고 석유 시추에 성공했지만, 어마무시하게 생산되는 사우디의 석유를 시장에 그대로 유통시키면 물량만으로도 유가가 폭락할 수 있고, 카르텔에 속한 업체들과 치킨게임도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SOCAL과 텍사코가 찾은 해결책은 사우디산 석유를 장기 계약으로 미국 정부에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제안은 석유의 전략적인 확보가 필요했던 미국 정부의 이해와 맞아떨어졌고,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딜을 진행하기로 협의합니다.

①     미국 정부가 4000만 달러에 CASOC의 지분 3분의 1을 매입 

②     평화 시 사우디 석유의 51%, 전시에는 100%를 미국 정부가 우선 매입할 권리 

③     국가 안보 침해 세력으로 간주되는 제3자에 대한 석유 판매를 미국 정부가 반대할 권리


Harold LeClair Ickes - SOCAL, 텍사코와 딜을 추진했던 미국 내무부 장관. 


하지만, 미국 정부와 SOCAL & 텍사코의 협의는 계약서에 서명하기 직전에 무산됩니다. 미국의 뉴저지 스탠다드와 소코니(레드라인 협정에 서명한 두 회사. 후에 엑손모빌로 합병)는 석유 산업은 민간기업이 해야 한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고, 정부가 석유 사업에 손을 대면 값싼 외국 석유가 들어온다는 이유로 텍사스 등의 중소 석유기업들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미국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국가의 안보나 민생보다 강력한 로비를 할 수 있는 돈과 힘을 가진 민간 기업의 이익이 우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계 최대 석유 기업 아람코를 삼킨 미국 (1944~1948)


엄청난 양의 사우디 석유를 카르텔 vs 비 카르텔의 치킨게임에 의한 석유 가격의 폭락 없이, 무엇보다도 석유 카르텔의 기득권을 지키면서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카르텔에 속하지 않은 SOCAL과 텍사코를 석유 카르텔에 끌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SOCAL과 텍사코가 카르텔에 가입하면서 빅 5는 빅 7이 되고, 칠자매(Seven Sisters)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SOCAL이 주도했기 때문에 사명에 캘리포니아만 들어가던 CASOC(California Arabian Standard Oil Co.)도 1944년, 아람코(Aramco, ARabian-AMerica Oil COmpany)로 사명을 변경합니다.

CASOC(California Arabian Standard Oil Co.)에서 Aramco(ARabian-AMerica Oil Company)를 거친 현재의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는 2018년 순이익 1,111억 달러 (애플 순이익+구글 순이익+엑손모빌 순이익++++), 2019년 상반기 순이익만 469억 달러이고 기업가치는 1 경원 정도로 추정되는 거대 기업입니다. 미국 자본에 의한 완벽한 미국 회사로 시작했지만, 중동 지역의 자원 국유화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사우디 정부가 아람코의 지분을 지속적으로 국유화하여 1980년에 100% 국영 회사가 되고, 1988년에 현재의 이름인 사우디 아람코가 되었습니다.

2018년 기준 순이익, 사우디 아람코 vs. 글로벌 기업들


적을 동지로 만들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기존 카르텔 멤버인 뉴저지 스탠다드 오일과 소코니(SOCoNY, 뉴욕 스탠다드 오일)는 레드라인 협정의 멤버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레드라인 협정에 의해 사우디 석유 개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뉴저지와 소코니는 1946년 레드라인 협정을 주도한 영국 정부에 레드라인 협정의 파기를 요청했습니다. 이때 제시한 협정 파기 대가는 뉴저지와 소코니가 영국 이란 석유회사(AIOC)의 원유를 20년간 각각 8억 배럴, 5억 배럴 씩 장기 구매해주는 것이었습니다. AIOC는 영국 정부 외에 판로가 없었기 때문에 영국 정부로서는 레드라인 협정 파기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레드라인 협정이 파기된 후, 1948년, 아람코는 SOCAL, 텍사코, 뉴저지 스탠다드 오일이 각 30%, 소코니가 10% 지분을 가진 미국 석유 메이저들의 공동 소유 형태로 지분 구조가 정해졌습니다. 즉 미국의 여러 석유 메이저들이 사우디의 석유 산업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계획하여 사우디의 석유시장을 통제하는 형태였습니다. 


석유 패권을 장악한 미국, 밀려나는 영국 (1944~)


아람코는 미국 역사상 미국 시민이 개발한 가장 중요하고 값진 해외 경제 자산이다 
Otto N. Miller - 1974년 은퇴한 Chevron(SOCAL)의 전(前) 회장


아람코는 막대한 매장량을 기반으로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국유화되었지만, 오랜 기간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아람코를 통해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 산업을 지배하면서 막대한 돈 이상의 가치를 얻었습니다. 아람코 이전에는 영국이 석유 산업의 패권국에 가까웠지만 아람코 덕분에 미국이 영국을 제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사우디 석유의 막대한 생산량을 통제하면서, 중동 석유 자원을 쥐고 흔들 수 있게 되고, 석유를 통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영국도 석유 산업에서의 힘을 잃지 않기 위해 영미석유협정(Anglo-American Petroleum Agreement, 이란 석유는 영국이 갖고,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는 공유하며, 사우디 석유는 미국이 갖는 조건의 협정, 1944년)을 맺고 전 세계 산유국의 생산량 및 석유 가격을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려 하였으나, 미국 석유업계의 반대에 의해 무산되었습니다. 


석유 패권의 또 다른 축, 칠자매 (Seven Sisters)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칠자매(Seven Sisters)는 지난주의 레드라인 협정부터 이번 주 아람코 설립까지 지속적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석유 산업의 형성과 석유 시장의 움직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7개의 회사입니다.


칠자매의 과거와 현재


1952년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 Federal Trade Commission)가 작성한 보고서 '국제 석유 카르텔(The International Petroleum Cartel)에  따르면, 중동 석유의 99%, 중동을 제외한 동반구 80%, 미국을 포함한 서반구 44%가 세븐 시스터스에 의해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7개 글로벌 석유 회사들의 원유 생산량 (배럴/일)


더욱이, 이들은 원유를 뽑아낸 후에 정유, 수송, 유통까지 글로벌 석유산업의 모든 부문을 장악하고 통제했습니다. 그러니까 세븐 시스터즈는 미국 (혹은 영국) 정부에 붙어서 이득을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부와 각을 세워 대립하거나 협박하기도 했던 석유 패권이 한 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4개의 회사로 축약된 현재도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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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탄생시키고 주도적으로 발전시킨 석유 산업은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를 위한 필수적인 도구였습니다. 석유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군수산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의 피가 되는 아주 중요한 전략물자이며 동시에 미국이 달러로 세계의 금융을 지배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석유는 달러로만 거래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석유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미국 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무시하면서까지 석유 카르텔의 손을 들어주고, 모두가 반대하는 전쟁(두 차례의 이라크 전쟁)도 불사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석유 패권의 횡포와 폐해에 대해 전달드리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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