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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elboso Feb 26. 2021

[플랜트 산업 쉽게 접근하기] 석유 산업의 역사 -7

#마무리 – 영미 석유 패권에 대한 반격, OPEC

지난 6주 동안 석유 산업의 태동부터 석유 패권의 시장 장악 과정과 그 폐해에 대해 전달드렸습니다. 오늘은 석유 산업의 역사 시리즈 마지막으로, 칠자매를 비롯한 석유 카르텔의 횡포에 대항하여 새로운 석유 시장 질서를 만든 OPEC (석유수출국 기구,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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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자매에 대한 대항 세력의 등장


OPEC의 설립 이전에도 석유 카르텔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OPEC이 칠자매 등 석유 패권에 대항하여 석유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석유 수출국 기구라면, ENI(Ente Nazionale Idrocarburi)는 석유 카르텔의 횡포에 강력하게 맞섰던 석유 수입국, 이탈리아의 국영 석유회사였습니다. 


특히 ENI의 회장 엔리코 마테이 (Enrico Mattei)는 석유 패권 저항군의 수장 격 인물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기름 유화제 생산공장을 차려 사업을 시작한 마테이는 이탈리아에 민주 정부가 들어선 1945년, 이탈리아 국영 석유회사 아지프(Agip, Azienda Generale Italiana Petroli)의 사장이 되고, 1949년에는 소규모였지만 이탈리아 북부 포 밸리(Po Valley)에서 유정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1953년 이탈리아의 다른 석유회사를 합병하고 국영 석유회사 ENI를 설립한 마테이는 본격적으로 칠자매에 대항하기 시작합니다 (Seven Sisters는 마테이가 미국과 영국의 석유 카르텔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도 합니다.)


이탈리아의 석유 산업을 일으킨 엔리코 마테이 (Enrico Mattei)


시작은 이란이었습니다. 마테이는 미국 주도의 쿠데타로 이란의 정권을 잡은 팔레비 국왕에게 당시 이익 분배의 암묵적인 룰이었던 50:50을 깨고 75:25의 수익 분배를 파격적으로 제안하여 석유 개발권을 따냅니다. 분노한 칠자매는 세계 각지에서 ENI의 석유 판매를 차단했지만, 마테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행보를 보입니다.

냉전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소련에 현금 대신 대규모 송유관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에 의해 수출이 제한된 소련의 석유를 수입 – 미국 정부 자극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운동을 지지하여 알제리 유전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 작업, 또 다른 프랑스 식민지인 튀니지, 모로코와 50:50 수익 배분 조건으로 석유 개발 협정 체결 – 프랑스 정부 자극

영국 보호령이었던 이집트의 대통령과 석유 개발 조약 체결 – 영국 정부 자극


공중폭발 후 추락한 엔리코 마테이의 비행기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었을까요.. 1962년 10월 27일, 자가용 비행기로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밀라노로 가고 있던 마테이는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합니다. 당시에는 사고사로 발표되었지만, 추후에 비행기에 폭발물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회개한 이탈리아 마피아 보스, 토마소(Tommaso Buscetta)는 미국의 이익에 반대되는 마테이를 죽이라고 미국 마피아가 시칠리아 마피아에 사주했다고 폭로했습니다. 마테이의 죽음에는 칠자매가 개입되었다는 루머가 신빙성이 있는 이유는 마테이의 반(反) 석유 카르텔 행보에 의해 가장 큰 손해를 본 회사가 칠자매의 한 축인 미국의 엑슨(Exxon, 前 뉴저지 스탠다드 오일)이었기 때문입니다.


OPEC의 창설


마테이가 석유 카르텔의 미움을 사서 살해당하기 2년 전, 석유를 생산하는 산유국들도 더 이상 칠자매의 횡포를 참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산유국들이 스스로 국가 핵심 자산인 석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석유 패권에 맞서는 산유국 연합 기구인 OPEC을 창설합니다.


1960년 9월, 아람코의 국유화를 밀어붙이면서 ‘붉은 셰이크’라는 별명을 얻은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석유장관 압둘라 타리키(Abdullah Tariki)와 생산된 원유의 초저가 판매를 끝내고자 했던 베네수엘라 석유장관 페레즈 알폰소(Juan Pablo Pérez Alfonzo)가 주도하여 OPEC이 창설되었습니다. 사우디, 베네수엘라 외에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등 총 다섯 국가의 산유국 대표가 모였는데, 이들이 주창한 OPEC의 설립 목적은 OPEC 회원국의 수익을 보호하기 위한 각 국가의 석유 정책 조정 및 통일이었습니다.


석유는 악마의 똥이라고 했던 페레즈 알폰소(좌)와 압둘라 타리키(우)


OPEC이 창설된 초기에는 유가가 너무 낮기도 했고, 힘에서도 석유 카르텔에 밀렸기 때문에 OPEC이 석유 시장에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개발도상국에 의해 만들어진 단체 가운데 결국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 국제기구가 탄생했습니다.


OPEC의 부흥과 석유 황제 아흐메드 야마니


1969년, OPEC이 미/영 석유 카르텔을 몰아내고 석유 시장의 주인이 되려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리비아에 진출했던 쉘과 ENI의 생산설비들이 국유화되었고 쿠데타의 영향으로 유가가 인상되면서 OPEC이 “생산량 컨트롤 = 유가 컨트롤”의 공식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1973년 10월,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라마단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세계 석유 산업/시장의 패권을 바꾼 1차 석유 파동이 발생합니다. 전쟁 당시, 사우디와 이란이 칠자매와 협의하지 않고 유가 인상을 결정할 수 있는 “유가 결정 협정”을 체결하고 이듬해 1월까지 3달 만에 유가를 3배 넘게 상승시켰습니다. 곧이어, 이스라엘에 군사 원조를 한 미국에 석유 수출을 금지시키는 “석유 금수조치”를 미국을 압박할 무기로 사용하면서 유가가 폭등하고 서유럽과 미국은 OPEC의 속공에 속절없이 당했습니다. 


OPEC의 석유황제, 아흐메드 야마니(Ahmed Zaki Yamani)


이때, OPEC의 이 모든 움직임을 주도한 인물이 사우디아라비아의 2대 석유장관인 아흐메드 야마니(Ahmed Zaki Yamani)입니다. 야마니의 활약으로 산유국의 목소리가 커졌고 OPEC이 1차 석유 파동으로 칠자매를 비롯한 석유 패권세력을 모두 밀어내고 석유 시장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1차 석유 파동에서의 활약으로 야마니는 '석유황제'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OPEC, 칠자매에 이은 또 다른 석유 카르텔


지금까지 자원을 수탈당한 약소국의 입장에서 석유 산업의 역사 시리즈를 썼지만, 석유를 100%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는 OPEC도 칠자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자원 깡패입니다. 칠자매를 비롯한 미국/영국 카르텔을 답습한 또 다른 카르텔의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1978년에는 2차 석유 파동을 일으켜서 유가가 20달러를 돌파했고, 1980년에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배럴당 20달러이던 유가를 30달러로 폭등 시켰습니다. 다음 해인 81년에는 석유의 무기화를 발표하면서 유가는 40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80년대 후반에는 공급을 수요에 억지로 맞추는 생산량 쿼터제를 도입해서 석유 현물시장의 가격을 조작했고, 그 뒤로도 OPEC 회원국들의 이익에 맞춰서 감산으로 가격을 올리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했습니다. 


2020년, 출범 60주년을 맞은 OPEC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세계 경제 침체 -> 석유 수요 감소 -> 유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도 OPEC은 세 번에 걸친 감산으로 유가를 안정적으로 지켜내면서 OPEC의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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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 동안 자국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힘을 앞세워 약탈하고, 자원을 무기로 타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회를 희생시키는 여러 집단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영광을 보고 부러워하던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석유 산업의 역사 시리즈를 읽으신 구독자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급합니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좋은 연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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