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그리고 한결같은 야구는 가을의 마음속에
가을은 잠실에 위치한
신전에서 열리는
신들의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예복을 갖춰 입는다.
가을은 푸릉푸릉색을 무척 사랑하여
겉치장은 물론 혈액마저
푸른색으로 수혈할 기세다.
가을은 잠실 신전에 도착해서는
경배를 위한 소소한 음식을 마련한다.
이내 그는 신들의 잔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오른다.
드디어 신전 입구에 들어선 순간!
여느 바람과 다른
가을바람이 강하게 불어온다
가을을 압도한,
그리고 웅장한.
신전 내부는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
수많은 신도들이 자신의 신께 경배를 들이기 위해 준비한다.
가을 역시 신전 한편에 앉아 짐을 푼 후
신전을 찬찬히 둘러본다.
가을이 앉은 쪽에는 푸른빛으로,
반대편은 하얀, 검정, 노란, 빨간의 조화로운 빛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차츰 신들의 잔치를 위한 시간이 임박해 옴에 따라
신도들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드디어,
신들이 신전에
모습을 드러낸다.
둥!둥!둥!
가을의 심장이 멎을 만큼의 크고 우렁찬 소리가
온 신전에 울려 퍼진다.
가을은 온몸으로 느낀다.
신들도 신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옷으로 치장했다.
한편엔 흰색과 푸른색의 조화로운,
마치 가을 하늘을 연상케 하는
푸른 물결의 주인공들이,
다른 한편엔 흰색의 검은색 줄무늬,
노란색과 붉은색의 조화가 인상적인
이곳의 쌍둥이 주인장들이.
신들과 그들의 신도들은 색으로 하나 된다.
특히 신도들의 그것은
신들을 향한 존경심의 표현이자
정체성의 상징이다.
한편, 가을은 혼자 신들의 잔치에 참석했지만
혼자가 아님을 직감한다.
그는 마치 드레스코드를 맞춘 듯
옆 사람들과 같은 색으로 치장했고,
함께 푸른색의 신들을 응원할 수 있다는 점
투게더
그의 마음을 안정케 하는 관계망이다.
신전 밖 세상은 각박하기 그지없으나
이곳은 다른 차원의 문을 지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전혀 새로운 세상이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온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한
그들의 마음이 가을에겐 무척이나 낯설지만 포근하다.
드디어 신들의 잔치가 펼쳐진다.
잔치 시작부터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신도들을 자극한다.
그들은 신들의 동작 하나, 표정 하나에도
요동친다.
신전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
가을은
시간을 거슬러
뜨거운 여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연결고리.
이곳을 더욱 신성하게 만드는,
신도들과 신을 연결시켜 주는 자들이 등장한다.
가을의 가슴 뛰게 만드는 우렁찬 목소리와 힘찬 몸짓의 소유자들.
그들은 잔치가 마무리될 때까지
가을을 포함한 신도들과 함께 한다.
인도자는 신들의 향한 마음을 담은 음악과 율동을 곁들인다.
신들은 신도들의 즐겁고 활기찬 모습에 더욱 힘을 낸다.
단,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다른 신도들이 잔치를 즐기고 있을 때,
다른 한편의 신도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잔치를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이 신전의 룰이다.
이 규칙은 상대 신과 신도들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의식이다.
가을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푸른색의 신도들과 점차 광기에 가까운 믿음으로
인도자를 따라 신들과 함께 호흡한다.
잔치가 거듭될수록
푸른색의 신들은 잔치에서 지친 기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신도들은 지치지 않아야 한다.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더욱더 힘차게 이 잔치를 즐겨야 한다.
잔치가 절정에 다다를 때,
신도들은 각자 갖고 있던 일상의 번뇌를 벗어버리고
자신과 신의 하나됨을 느낌으로써
무위와 무소유의 경지에 오른다.
신도들의 고민과 스트레스, 걱정, 근심을
신전 밖으로 날려버린다.
이내 신들의 잔치는 푸른색과 줄무늬가 섞여
가을 하늘 같은
높고 푸른색으로
혼합된다.
경배가 끝이 났다.
결과에 상관없이 신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쉬움을,
기쁨을 만끽한다.
이윽고 신전을 나설 때
가을은 물론 신도들도
저마다의 근심과 걱정은 사라져 있다.
신전의 문은
일상의 문으로
변화된다.
그 사이 일상은 변한 게 없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오늘을,
내일을,
.
.
.
신도들은
사뭇 다른 일상을 맞이한다.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하듯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
- 2013년 가을의 성찰일기 중에서 -
비웃음과 조롱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 어떤 신앙에 못지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행복하다는 외침은
행복해야 한다는 절규였습니다.
절규는 믿음이 되었고,
믿은 기적을
그리고, 기적은 곧 현실이 됩니다.
(중략)
여러분, 한 시즌 행복하셨습니까?
(생략)
- 2025년 KBS 아나운서 권성욱의 오프닝 멘트 중에서 -
가을은 2025년 9월 27일 KBS 캐스터 권성욱의 오프닝이 퍽 인상적이었다.
한화를 두고 한 의미 있는 멘트였다.
그들의 응원가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곡에서 영감을 얻은 듯했다.
가을은 이날 오프닝 멘트에서 "신앙"이란 단어가 와닿았다.
그리고 지난 2013년에 쓴 "야구와 종교"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위 글은 아래와 같은 구성으로 써 내려간 것이었다.
야구를 신앙에 비유하며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들,
특히 관중의 입장에서 유니폼을 챙겨 입고,
먹거리를 준비하며, 좌석을 찾아 앉고,
응원을 따라 하는 등
야구장에서의 일상을 신앙의 그것으로 표현해 본 것.
원본은 매우 거친 느낌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만큼 글에는 당시 가을이 느낀 감정이
가감 없이 실려 있었다.
가을은 10년도 더 지난 그의 글에서
오늘의 그를 본다.
그의 삶에서 잠시 망각하고 있던
무언가에 대한 열과 성
왠지 알 수 없는 중압감과
해야 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도전했던 것들
그것이어야 했던 자기 합리화.
허나
가을은 야구에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
비록 혁명적 일상은 아닐지라도
소소한 일상의 변화가 엿보인다.
가을에게 야구는,
변화의 시작인 것.
가을에게 야구는,
신앙 못지않은 열정
그 자체.
"있잖아요. 비올라를 연주하는 것이 저에겐 거의 종교나 마찬가지랍니다."
"코믹 스크립을 그리는 일이 나에게 종교와 매우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피넛츠] 원작자 찰스 슐츠 -
한편, 가을은 [피넛츠]를 사랑한다.
그의 어릴 적 추억과 함께 자란 동반자와도 같기 때문.
주인공 찰리 브라운을 무척 아낀다.
그래서 각종 굿즈를 모으기도 한다.
당연히 그를 창작한 찰스 슐츠에도 관심이 간다.
그의 책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이란 책에서는
그의 인생관과 [피넛츠]의 등장인물, 배경,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겨 있다.
그중 <어른이 되지 마>란 책에서 위와 같은 얘기가 나온다.
가을은 야구가 신앙 같다는 그의 생각이 매우 엉뚱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앞선, 권성욱 캐스터의 오프닝 멘트와 가을의 글은 열정이 주제였다.
하지만 찰스 슐츠의 그것은 열정과는 다른 듯 다르지 않다.
신앙심이 깊은 이들은 종교와 삶을 분리하지 않는다.
종교가 곧 삶이며, 삶이 곧 신앙인 것.
그래서 매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마치 종교와 같다고 표현한 것.
최근 아내가 이런 말을 남겨서 짙은 여운을 남겼다.
"야구는 왜 이렇게 오래 해? 몇 달 하고 마는 것 아니었어?"
참고로 아내는 대학시절 야구동아리 매니저였으며 가끔 야구 동아리 얘기를 하는 습관이 있다.
야구는 알다시피 3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포스트시즌까지 합하면 2025년 기준 11월 3일까지 진행된다.
야구를 하지 않는 달은 추운 12, 1, 2월. 고작 3개월뿐이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면 주당 6경기를 소화하여 팀당 144경기를 소화해야만 한다.
이 말인 즉, 매일 한다는 뜻이다.
종교가 곧 생활이듯이
야구 역시 삶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터.
결국 2013년 가을의 생각과
2025년의 그의 마음은
한결같다.
항상 매일, 매일의 하루를 맞이하듯.
그 하루를
열정을
갖고.
다음은 2013년 당시 가을의 체육수업 때 학생이 제출한 과제의 일부이다. 그는 야구와 "00"을 연결시켜 보는 글쓰기 활동을 진행했었다. 야구와 공부, 야구와 축구, 게임, 친구 등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글로 표현했었다. 그중 한 학생이 본인의 신앙과 야구를 연결해서 글을 작성해서 제출하였다. 가을은 학생의 글에서 진심이 느껴졌고 그 마음에 동하여 가을은 잠실에서의 느꼈던 감정을 종교에 비유했던 것. 그가 영감을 받은 학생의 글을 이곳에 옮겨본다. 다소,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문장이 있더라도 이해하길 바란다. 중학교 2학년의 글이란 점을 유념해두길.
‘야구와 종교를 어떻게 엮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둘은 전혀 같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차에 나는 문득 교회 마당에서 야구를 하며 노는 오빠들이 가장 떠올랐다.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써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닌 여럿이 함께 해야만 하는 야구, 이 스포츠를 교회와의 공통점이 무언지 찾아보기로 했다.
첫째, 두 활동 모두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활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서 교회에 간다면 진실된 믿음과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야구도 마찬가지로 훌륭한 성적과 멋진 플레이를 선보일 수 없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두 활동 모두 수동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자기 자신에게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야구와 종교 활동을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두 활동의 공통점인 것 같다. 새로운 룰 플레이와 내가 절제해야 하는 부분, 또 내가 조금 더 뛰어서 채워야 하는 부분. 자신이 맡은 포지션과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 아무것도 모르고 공이 날아오는 것만으로 무섭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야구와 친해지며 나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야구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응원하면서 함께 기쁨을 얻고 아니면 실제로 연습하고 몸으로써 느낄 수도 있다. 교회, 종교도 그런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정해진 룰과 순리에 따라 배우고 말씀을 듣는다. 또한, 그것으로써 자신의 삶의 피난처가 생기거나 자신만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 낸 마지막 공통점은 야구와 종교 모두 갖추어야 할 소양이 있다는 점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야구소양을 칠행도를 통해 그저 몸을 사용하는 육체적인 활동으로만 생각했던 야구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야구를 만났다. 종교도 그렇다. 믿을 가지고 익히는 과정에서 확신을 가지기까지 내가 갖추어야 할 마음의 자세 또는 소양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방면에서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야구와 종교 두 분야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 기쁘다.
- 2013년 중학교 2학년 어느 학생의 어느 글 -
스포츠가 그 자체로만 존재해야 한다면,
그들이 그의 한계를 멋대로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