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술에 배부르면 이상한가
#5 가을, 드디어 첫 경기를 치르다
가을은 자신의 팀이 어느 정도 실력이 갖추었다고 판단하여 옆 동네 팀과 경기를 계획하였다. 그 팀은 이름도 없었고 가을이네와 같은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여유로운 승리가 되겠거니 싶었다. 다만 가을의 마음에 걸린 게 있다면 선수 대부분이 나이가 많다는 점. 성당동 사자들은 기껏해야 5학년이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 상대팀은 어른(?)인 중학생도 있었으니 가을의 팀원들은 처음에는 그들과 경기를 치르는 것이 반대 아닌 반대를 했었다. 가을의 고집스러운 설득에 결국 경기가 성사되긴 했지만 팀원들은 썩 내키는 경기는 아니었다.
드디어 상대방과의 경기가 진행되었다. 성당동 사자들은 그들에게 주눅이 들었던 것 모양이었다. 시작부터 야수들의 실수로 상대팀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심지어 투수의 실투로 홈런도 얻어맞았다. 폭풍과도 같은 상대 공격에 성당동 사자들은 그저 1회 초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 수비할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가을의 동네에서 펼쳐져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작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단추부터 어긋났던 것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서 성사된 경기인데.... 초반부터 이렇게 밀리다니.... 믿을 수 없어.'
사실 이번 친선 경기를 위해 가을은 동네 슈퍼 아줌마와 다른 가게 아저씨들께 양해를 구하여 보다 넓은 공간을 빌렸다. 항상 좁다란 골목에서만 옹기종기 모여 야구를 했던 성당동 사자들에게도 이번 경기장은 타구장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야수들의 수비 범위가 넓어져서 평범한 땅볼 타구에도 허우적거렸고, 본인들의 연습장에서는 외야수들이 달려가서 잡을 수 있는 아웃성 타구나 파울이었던 것이 이곳에서는 홈런이 되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더니..... 우리는 뭐야... 우리 공격일 때 두고 보자!'
가을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지만 1회 말부터는 자신들의 공격이니만큼 타선의 엄청난 폭발력으로 역전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1회 초를 5:0으로 마무리 짓고 1회 말 성당동 사자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삼진, 삼진, 플라이아웃. 세 타자 모두 깔끔하게 아웃. 그렇게 이닝이 강제 삭제당했다.
스윙을 하며 몸을 풀던 가을은 본인 앞에서 공수가 바뀐 것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1, 2, 3번 타자들에게 질책하고 싶은 마음이 무척 컸지만 팀의 주장이었기에 침착해야겠다.
한편, 가을은 성당동 사자들의 안방마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삼성의 이만수 선수 포지션이 포수(Catcher, 2번)였기 때문이었다. 이만수 선수는 “헐크”라는 별명에 걸맞은 활발한 액션으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고, 그는 "홈런타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강타자였다. 가을은 그의 백넘버인 22번을 달고 경기를 할 정도로 그를 좋아했다.
참고로 당시 삼성에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 연속 우승이라는 업적을 남겨 "삼성 왕조"라고 불렸던 시절의 감독인 류중일 선수도 있었다. 류감독의 별명은 "그라운드의 살구꽃"이었다. 유격수(Short Stop, 6번)였던 그는 치열한 그라운드 속에서도 살구꽃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수비력을 선보여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또한, 류중일과 삼성의 강력한 키스톤 콤비였던 강기웅 선수도 있었다. 2루수(2B, 4번)였던 그와 유격수였던 류중일의 환상적인 콤비네이션은 리그 최강이었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그밖에 삼성에는 185cm의 큰 키를 활용하여 어느 수비 포지션에서도 제 역할을 했던 김성래 선수, 조금 앞선 시대에는 삼성 좌타자 계보의 시조인 교타자(컨택 능격이 뛰어나 타율이 높은 선수를 일컫는 용어) 장효조와 투수(Pitcher, 1번) 김시진 등이 있었다(참고로, 1루수(1B)는 3번, 3루수(3B)는 5번, 좌익수(LF)는 7번, 중견수(CF)는 8번, 우익수(RF)는 9번으로 포지션별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가을은 삼성 리틀 야구단에서 정통 야구를 배웠고 성당동 사자들에게 야구 잘하는 법을 전수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5:0. 완패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팀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팀원들을 독려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경기는 가을의 뜻대로 풀리지 않은 채 이닝들이 삭제되고 상대팀과 사전 약속된 5이닝이 가까워지자 가을은 점차 조급해졌다. 성당동 사자들은 상대팀의 노히트 노런(투수가 상대팀을 상대로 안타와 볼넷, 사사구 등을 허용하지 않는 경기르 의미) 대기록의 제물이 될 판이었다.
5회 초 상대팀의 마지막 공격.
마음이 조급한 가을에게 결국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바로 상대팀 타자가 던진 배트에 맞았던 것이었다. 타자는 안타를 치고 나서 너무 기쁜 나머지 배트를 포수인 가을에게 던졌던 것. 사건이 일어난 당시 성당동 사자들의 야수들은 안타의 뒷수습을 하고 있었고 투수는 날아가는 자신의 공을 보며 고개를 떨구며 자책하듯 글러브를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던 상황이었다. 반면 상대팀 선수들은 홈런성 장타로 모두들 기뻐하고 있었고. 그 누구도 가을에게 관심이 없었다. 모두가 다음 공격을 위해 준비하기 위해 그라운드를 정비할 때 비로소 가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점을 알아챌 수 있었다.
가을은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순간 거품을 물고선 기절하였고 친구들은 황급히 집에서 가을의 엄마를 모셔와 친구 등에 업혀 집으로 갔었다. 한참을 기절해 있던 가을은 이내 겨우 눈을 떴고 희미하게 엄마와 동생, 친구들이 보였다. 가을은 일어나기 위해 몸을 일으켰지만 사지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가을은 는 친구인 봄이에게 경기 결과를 물었고, 봄이는 차마 답할 수 없었다. 가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울음을 삼켰지만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진 못했다. 이렇게 가을의 “성당동 사자들” 첫 경기는 완패로 마무리되었다.
#6 가을, 야구를 추억 앨범에 담다
이후에도 "성당동 사자들"은 수많은 경기를 치렀고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었다. 첫 경기만큼의 점수차는 아니었기에 항상 가능성이 가득한 팀이었다. 시간이 흘러 가을을 비롯하여 "성당동 사자들" 멤버들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더 이상 야구를 하지 않게 되었다. 가을 역시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야구공을 던지는 대신 농구공을 던지는 횟수가 늘어났다. 1990년 중반 이후 농구를 소재로 한 미니시리즈 "마지막 승부"가 대히트를 치면서 학교 농구장에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동민(손지창 역)의 터닝슛을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철준(장동건 역)이 성공한 덩크슛을 해내기 위해 점프하는 친구들이 수두룩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언젠가 본인들에게도 다슬(심은하 역)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와 더불어 농구 만화 "슬램덩크", NBA의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농구대잔치 등 농구와 관련된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기에 가을의 또래 친구들이 농구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문화적 현상이 있었다. 가을은 야구를 열병이나 신드롬 같은 현상으로 어릴 적 추억의 한 페이지로만 남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이닝에서 못다 한 얘기는 다음 이닝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