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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nswer Apr 16. 2022

자존감 그리기 수업

교사는 남을 가르치는 행위로 자신을 돌보는 직업이다.

최근 며칠 동안 "자존감"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3주 전에 시작했었지만 체육수업을 교실에서만 진행하기엔 심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우천 시 등을 활용하여 운영하는 편이다.

올해 나의 수업 목표는 "자존감", "연대", " 비판"이다. 학생들이 나 자신을 이해하고 어떤 일을 겪고 낙담할지언정 포기하지 않는 자기애를 바탕으로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것이 합당하지 않을 때 주변 사람들과 연대할 줄 아는 역량을 기르고 싶은 게 나의 목표다.

체육수업에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신체활동량을 높여서 체력을 높이고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나 해소시키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체육교육이 신체활동을 매개로 교육활동을 펼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내 말이 엉뚱한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또, 신체활동, 스포츠, 운동 등 체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들이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 온 문화라고 여긴다면 내가 말하는 것이 큰 거부감은 없을 것이다.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되돌아봄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난 그러한가? 되묻고 싶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나는 나를 하찮은 존재로 보지 않는다. 뭐든 해볼 수 있는 존재, 실패해도 큰 문제없이 심적 타격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7반에서 같은 수업을 반복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자존감이 높은가


"항상"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어느 상황에서는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았다. 나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자존감을 높이려고 애쓰는 존재다. 스스로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등으로 나를 위로하며 다독거리는.


한편,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그림을 거의 팔지 못한 채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동생과 나눴던 편지를 읽어보면 심리적으로도 의지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얼마나 자기 자신을 책망하며 살았을까. 한없이 못나 보였던 본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릴 때마다 순간순간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자괴감을 어떻게 이겨냈을지 안쓰럽기까지 하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그의 생을 마감했었지만 무너지는 자존감을 본인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버텨냈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The starry nitht, 1889, Vincent van Gogh

자존감에 관한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보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가끔, 아니 자주 학생들에게 전해줄 메시지가 나를 더욱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실천하지 못했던 것에 용기를 내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교사란 직업은 남을 가르치는 행위를 통해 나를 돌아보도록 하는 "성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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