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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보안관 Aug 19. 2020

정말이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구나

퇴사 후에 비로소 알게 된 것들 


완벽하고 싶었던 워킹맘의 그늘 


워킹맘의 일하는 환경이 이전보다는 훨씬 많이 개선되었다고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책임져야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부담인데, 그 누군가는 하루 24시간 온종일 사랑스러운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거참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까다롭고 유난스러운 나의 성격은 아이를 키우는데서도 고스란히 비춰졌다. 

특히나 어떤 면에서든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가장 싫었고, 그러다보니 매사 잘하고 싶었다.

센스있는 엄마, 일 잘하는 직원,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내, 속 깊은 딸과 며느리. 이 모든 역할을 다 잘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었다.

그리고 각 역할에 대한 '칭찬'에 목마른 삶을 살았다. 


완벽한 워킹맘을 추구하다보니, 자연스레 돈도 많이 썼다. 

챙길 사람도 많아지고, 나 스스로도 누구에게도 추레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쓸데가리 없는 곳만 골라서(?) 돈을 썼다는 사실에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1. 백화점 쇼핑 중에 아이에게 잘어울리는 옷이 있으면, 작은 고민(?) 끝에 결국 사줬다.

2. 나는 피부가 정말 예민하고, 안좋은데 이걸 감추려고 백화점 1층의 화장품 코너에서 안 써본 브랜드가 없다.

3. '남편 행색이 저게뭐냐' 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한섬닷컴'을 들락거리며, 타임옴므와 시스템옴므에서 남편옷을 사다 바쳤다.

4. 남편 정기휴가 때 떠나는 해외여행은 인스타 업로드용으로 하룻밤에 사십만원이 넘는 풀빌라가 있는 곳으로 떠났고, 심지어 앞으로 언제 탈지 모르는 비지니스 클래스로! 왕복했다.


참, 뭘하고 살았었던건지 지난 날을 웃프게 반성한다. 


그렇지만, 이런 완벽한 겉치레를 뒤로하고 '멍청한 덴 답도 없다'는 사람이 내 팀장이 되었고, 몇년째 억눌려 있던 나의 감정들은 '멍청한' 팀장과 갈등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그 팀장과 같은 팀을 한 지 삼개월이 조금 넘었을 때 회사에서 유래없는 수시 인사발령이 났었고, 그로부터 삼개월 뒤 나는 사직서를 던졌다. 


사직서가 뭐 별건가. 

'나 이제, 니 밑에서 일 안해.' 라는 공식문서. 

셀프로 사직서 품의를 올렸고, 그 때서야 비로소 완벽하고 싶었던 워킹맘의 그늘이 끝이났다. 



망가져도 너무 망가져버린 내 몸뚱아리 


나는 소싯 적, 주변에서 몸매 원탑(?)으로 통했다.

얼굴이 예쁜 건 아니었지만, 키에 비해 길고(?)가는 팔다리와 글래머러스한 에스라인으로 여자들의 부러움을, 남자들의 뜨거운(?)시선을 받고 살았었다. 

그런데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하면서, 퇴사 전까지는 끊임없이 일을 했다. 그런데 내가 하던 일이 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 보고서를 위한 백데이터를 만드는 일인지라 업무시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척추와 목에 무리가 왔고, 그 무리는 삼십대 초반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디스크'로 자리잡았다.

잘나가던 내 몸매는 출산과 디스크로 한 방에 무너졌고, 안예쁜 부위에 살이 찌면서 그야말로 최악이 되었다.

그런데 회사 다니면서는 이 몸매의 근본적인 개선(운동)을 할 엄두도 못냈고, 찐 살을 가리기 위해 더 좋은 브랜드의 더 펑퍼짐한 옷을 입으면서 부랴부랴 괜찮은척 했었다. 


사실 홈트다 뭐다, 회사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은 셀 수없이 많다. 

그런데 다들 알겠지만 뭐든 '실행'이 중요한데, 일하면서 애를 키우고, 살림도 하다보니 짬이 나면 눕고 싶은게 인지상정.

운동할 마음이 좀처럼 안먹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퇴사하고 자유인이 되고나니, 정말 좋은 것 중 하나가 운동할 마음이 먹어졌다는 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픈 건 똑같았는데 왠지 퇴사하고 나서 보니 몸이 전보다 훨씬 형편없는 것 같았고, 뭔가 규칙적으로 나를 위해 투자를 해야할 것만 같았다. 

망가져도 너무 망가져버린 내 몸뚱아리를 위해 '운동을 시작하자'는 마음이 먹어진거다.

퇴사를 하고나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운동'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종목을 바꾸기는 했지만,

수영, 산책과 등산, 지금은 발레로 넘어와서 어쩌다보니 일년 가까이 운동을 계속하고 있고, 디스크도 느린 속도로 개선되는 중이다. 

게다가 가장 좋은 점은 결혼식 직전 수준으로 몸매가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의사랑을 듬뿍 받는 엄마 


본래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 아이의 행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도 회사에 묶여있는 동안에는 아이를 돌 볼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고, 이 때문에 온전히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지 못했다. 

이를테면 아이가 하고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살펴보고, 시간 맞는 곳에서 아이가 그것을 배울 수 있게 했던 식이다. 아니면, '남들은 다들 뭐라도 하던데'라는 조바심에 아이가 이것저것 찔끔찔끔 시도하게 했거나.

그리고 그 땐 유일하게 남편과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저녁시간을 아이에게 방해받기 싫어서 아이에겐 유튜브를 손에 쥐어줬었다. 수십일을 유튜브를 보며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 혼자 '유튜브 끊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발동. 아이에게 간단한 통보로 유튜브를 끊고. 아이는 하루이틀 울고불고 떼쓰고.

뭐 이런 삶을 반복하며 살았었다. 

시시때때로 내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워지는지도 모른채.


남편과는 서로의 직장상사 까대느라 순번을 정해서 말해야할 정도였고, 그 외에도 직장동료가 열받게 한 일들.

그러니까 남 욕하는 시간이 우리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그런데 내 퇴사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역사상 유래없는 전염병인 '코로나'가 찾아왔다.

코로나와 퇴사의 시너지는 온전히 아이를 들여다 볼 시간을 줬고, 덕분에 나도 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눈만 뜨면 마스크를 끼고 탄천에 나가서 자연관찰을 했다. 풀과 꽃, 물소리를 아이에게 들려줬고, 햇빛을 쬐었다.

어떤 날은 오전에 나가서 남편 퇴근하는 시간까지 여섯시간이 넘게 햇빛을 쐰 적도 있다.

오월까지는 비가 오지 않으면 매일 만보씩 걸으면서 아이와 수많은 이야기를 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충분한 시간동안 거품목욕을 했다. 

직장상사 까대기는 한 명이 하는 걸로 족해졌고, 그마저도 남편이 부서이동을 하면서 마음이 꼭맞는 상사를 만나서 회사이야기 할 게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 시간은 자연스레 '아이와 가족의 미래'라는 주제로 채워졌고, 대화는 전보다 훨씬 경쾌하고 풍성해졌다. 


엄마가 제 비위를 다 맞춰주며 하고싶은 바깥놀이도 맘껏 하게 해주니 아이는 전보다 훨씬 더 나에게 완전히 빠져버렸고, 조급해하며 짜증 푸느라 여념없던 와이프가 함께 미래를 고민하고, 남편의 청사진에 맞는 삶을 살아가니 남편은 원래도 많던 주접이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ㅎ 


삶이 즐겁다는 게 이런걸까


안맞는 사람하고는 한없이 안맞는 나였는데, 이제 안맞는 사람은 안만날 수 있게 되버렸다.

업무보단 사람이 스트레스였는데, 싫어하는 사람을 안볼 수 있게 되니 정말로 삶이 즐거워져 버렸다. 

그리고, 퇴사를 하고 나서 비로소 '나'를 가꾸고 싶어졌다.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울을 봤는데, 삼십년 넘게 보던 내 얼굴이 너무 못생긴 게 아닌가.

눈은 작고 째지고, 원래도 까만 얼굴에 얼룩덜룩한 여드름 상처.

싹 다 없애고 싶었다.

마음속에만 있던 쌍커풀 수술을 단행했고, 세상에나. 붓기도 쭉쭉 빠지고 수술이 정말 잘됐다.

그리고, 한두 번으로 끝날 수 없는 피부과를 공들여서 다니기 시작했다.

벌써 육개월이 넘게 피부과를 다니고 있고, 덕분에 피부톤도 많이 개선되었다. 

눈수술도 마음에 들게 잘되고, 피부도 날이갈수록 좋아지니 자연스레 셀카도 찍게되었고, 비비크림만 바르고도 외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얼굴에 자신감이 생기니, 왠지 모르게 뭐든(?) 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남편이 항상 외모에 자신감이 넘치는데, 왜 그랬는지 나도 이제 조금은 알겠고.?ㅎ)

외모의 변화도 놀랄만한데, 내 몸에 삼십년간 자리잡았던 조.바.심.이 없어졌다. 


"빨리빨리", "얼른",그러면서도  "잘"을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마음의 여유와 물리적인 시간이 함께 생기다 보니 조바심이 훨씬 줄어들었다. 

잠을 잘 못들까봐 불안해서 수면제를 먹어야 했지만, 지금은 잘 못자면 '내일 잠깐 눈을 붙여보지뭐'라고 생각하고 만다. 

아직도 유치원 등원시간이 긴 우리집 강아지를 보면서 잔소리를 하기는 하지만, 꼬박꼬박 아침 간식을 준비하고, 천천히 다 먹을 수 있게 기다려준다. 

유치원 끝나고 발레를 가는 날엔, 전같았으면 하원하면서 발레 시작 전까지 '빨리빨리'를 달고 살았을텐데, 

요즘은 평소보다 십오분 정도 일찍 하원해서 아이를 다그치지 않는다. 


요리할 때도 뜸을 더 많이 들이고, 야채를 볶는 시간도 충분히 가지게 되니 음식에 깊은 맛이 난다. 

아등바등 경력단절이 두려워 숨막히던 시절이 지나가니 이토록 삶이 재미있어졌다. 


한 때는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는 말을 비난했었다.

" 야, 솔직히 멈출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나 멈추는거지.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찬데, 뭘 멈추긴 멈추냐. 나도 좀 멈춰서 보고싶다." 


그런데 나에게 멈춤은 '퇴사'였고, 퇴사를 하고 나니 비로소 인생이 다시 보인다.


회사에서의 정년이 아니면 삶이 끝나는 줄만 알았던 불안감도 없어졌고,

삶을 즐기면서 사는 것에 꼭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 꼭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아이도 가끔 이야기 한다. 

"엄마, 회사를 안나가도 돈을 벌고는 있는거지? 돈 벌어서 나비뽑기 한 번 해주기로 했잖아!"

아직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해서 뽑기는 못 해주고 있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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