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목소리
"들리니? 외할머니가 막 돌아가셨어."
엄마였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너무 울어서 쉰 목소리였다.
2015년 2월의 어느 추운날, 아흔네 살이 된 외할머니는 큰 이모 댁에서 돌아가셨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말씀을 나누고, 모든 소리를 들으셨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밤사이 숨을 거두신 것이다.
하루 전, 유난히 엄마는 외할머니를 보고 싶어 했다. 2주 전에도 다녀왔는데, 외할머니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그러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안양에 계신 큰 이모 댁으로 서둘러 향했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외할머니 옆에 누웠다. 그리고 잠을 청했다. 새벽에 깨서 화장실을 다녀온 엄마는 어둠 속에서 외할머니를 바라보았다고 했다. 구부정한 허리 때문에 바닥에 등을 대고 남들처럼 누울 수 없었던 외할머니는 그날도 옆으로 웅크리고 주무셨다고.
조용히 잠든 듯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때 엄마는 조용히 다가가 외할머니의 손을 만져보았다.
엄마는 놀랐다. 검버섯 핀 하얀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 했다. 그런 날이 언젠가 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그날이 그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 돌아가셔서 다들 호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런 말조차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예순 중반인 딸에게도 여전히 엄마가 필요했다. 가슴을 강하게 내리치는 슬픔이었다. 얼굴이 붓고, 눈물이 더 이상 고이지 않을 것 같았지만,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곤 했다.
하루하루 작아지는 엄마를 볼 때마다 나는 벌써 엄마가 그립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참 많이 보고 싶겠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쩌면 지금도 외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켜켜이 쌓아 두느라 온몸이 무겁고 버거울지도 모르겠다.
'그래, 엄마도 엄마가 그리울 거야. 많이 보고 싶겠지. 서럽고 힘든 일 털어놓고. 울고 싶을 때 있을 거야.
자식들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가 많을 거야. '
몇 해 전에 발견된 한쪽 가슴에 생긴 혹은, 엄마가 그동안 꾹 참고 참았던 눈물이 굳어진 건 아닐까? 차마 터뜨릴 수 없었던 눈물 덩어리 말이다.
엄마는 앞으로 외할머니를 뵐 수 없어서 너무나 슬프지만, 외할머니가 천국으로 가시는 그 걸음이 외롭지 않도록 마지막 밤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엄마는 여전히 외할머니를 그리워한다. 기쁜 일이 생기면 기쁜 일 덕분에 그리워하고, 슬프면 슬픈 일 때문에 생각하고, 그렇게 외할머니를 떠올리고 찾는다.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이, 언젠가 나도 내 딸아이에게 그렇게 말을 할 날이 오겠지. 어떻게든 밀어내고 싶고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 순간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나는 참 먹먹하다.
"들리니? 외할머니가 막 돌아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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