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엄마의 보호자
"이 정도면 수술해야 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마 전부터 어깨가 아프다고만 했지,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줄은 몰랐다.
생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수술 이야기에, 엄마는 몹시 불안해 보였다. 내 마음도 무거웠다. 엄마의 손에 내 손을 조심히 포갰다.
"괜찮을 거야, 엄마."
어느새 나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어릴 때 나의 보호자는 엄마였는데, 세월이 흘러 이렇게 바뀌었다. 어깨 수술을 받은 이후로도 엄마는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약을 먹고 있던 엄마, 이제는 내가 엄마를 지켜주어야 할 때다.
어릴 때 배가 아프면, 엄마의 작은 손으로 배를 살살 문질러주었다. 조금은 거칠지만, 엄마의 그 따뜻한 온기는 언제 생각해도 고맙다. 하지만 지금 나는 엄마를 위해 딱히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 '괜찮을 거야, 엄마' 고작 이런 립서비스가 전부라니, 얼마나 힘없는 보호자인가.
어느 날 새벽 1시경, 아이의 팔뚝이 내 팔뚝에 맞닿았다. 깜짝 놀라서 일어났는데, 아이의 체온은 이미 38.9도였다. 남편은 출장을 가고 없고, 아이를 돌볼 사람은 나 혼자였다. 자고 있는 아이를 달래서 깨우고 해열제를 먹이려니 아이는 울고불고 떼를 썼다. 뒤로 넘어질 듯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한 번으로는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2시간 간격으로 해열제를 교차 복용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딸아이가 깊은 잠을 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전, 나는 인후염과 몸살 기운으로 약을 먹다.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숙면이 절실했다.
따뜻한 미온수를 커다란 그릇에 담아와서는 아이 옆에 두었다. 수건을 살포시 담가 다시 들어 올려 적당히 짜냈다. 딸의 이마와 얼굴, 발등까지 열감을 쓸어주었다.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이게 바로 엄마의 마음인가 싶었다. 기왕이면 자식이 편한 방법을 먼저 택하는 것. 비록 엄마인 내가 힘들지라도 말이다.
비 내리는 어느 여름, 길에서 달팽이를 발견했다. 한참을 바라보니, 꼭 엄마 같았다.
점점 작아지고 힘없어진 엄마와 닮아있었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달팽이처럼 여리고 느리게 변해갔다. 예전에는 엄마의 걸음이 너무 빨라서 쫓아가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엄마의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
톡 건드리면 움츠러들 것만 같은 달팽이, 하지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마치 오랜 시간 당신을 헌신하며 묵묵히 나를 지켜준 엄마의 모습처럼.
어쩌면 나는 그동안 엄마의 인내와 사랑을 당연하게 여겼던 건 아닐까?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단단하게 걸어가는 엄마의 삶을 나는 언제까지나 응원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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