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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배꼽 Oct 27. 2024

짙은 본드 냄새

어두운 지하실에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오빠와 나는 신나게 밖에서 뛰어놀았다. 네 살이나 많은 오빠지만, 나는 오빠와 함께 뒷산 공터에서 공차기도 하고, 가끔은 오락실에 같이 가기도 했다. 그렇게 놀다 보면 금세 배가 출출해졌다. 그런데 정작 호주머니에는 동전 하나 없었다.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는 엄마가 일하는 공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내려갔다. 오빠와 나는 자세를 낮추고 구부정한 자세로 조용히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또 다음 계단을 밟았다. 엄마가 일하는 공장 문 앞에 다다르자, 걱정이 앞섰다.

    '다른 아줌마들과 먼저 눈이 마주치면 어떡하지?'  

    삐그덕-

굳게 닫혀있는 문을 조심히 열어젖혔다. 안에서부터 짙은 냄새가 새어 나왔다. 본드 냄새였다. 

순간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러웠다. 



    열린 문틈 사이로 저 멀리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다른 아줌마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손은 계속 무언가를 만드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본드 냄새가 이렇게 심한데, 어떻게 엄마는 웃으면서 일을 할 수가 있지?'

엄마의 그 모습이 이상하기도 했고, 어쩐지 슬펐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엄마가 우리 쪽을 봤다. 엄마는 손에 있던 장갑을 빼고 일어나더니 성큼 다가와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돈을 꼭 쥐여주었다. 엄마는 자식들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엄마가 일하는 곳은 장난감 공장이었다. 엄마는 제약회사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해서 상도 받고 재미있게 일했지만, 아빠를 만나고 나서부터 경력이 단절됐다. 한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던 엄마가 다시 일을 하게 된 건, 아빠의 이어지는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엄마는 이것저것 안 해본 장사가 없다고 했다. 가끔 엄마는 인형 눈을 붙이는 일감을 받아왔는데, 호기심에 나도 방바닥에 앉아 인형의 눈을 붙여보곤 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똑같은 걸 계속하고 있으려니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키워야 했고,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를 보살피려면 먼 곳에서 일할 수 없었다. 엄마의 고단하고 힘든 삶이 짙게 스며든 것처럼, 장난감 공장은 유난히도 어둡고 습했다. 



     "엄마, 나 정말 미술하고 싶어."

이기적인 나였다. 엄마의 고생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정말 미술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고3이 되던 그해 3월에, 나는 정식으로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당시 나는 미술만 하면 아주 많은 돈을 버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딸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동안, 엄마는 짙은 본드 냄새와 매일 싸워야만 했다. 그렇게 번 돈은 전부, 내 학원비로 들어갔다. 꼬박 10개월을 엄마는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렇게...



    외형적으로는 가난했고 불편한 것들이 많았지만, 마음까지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가진 게 없으니 더 꿈이 컸고, 이루어놓은 게 없으니 더 꿈을 향해 달렸다. 

제나 꿈으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가난을 통해 더 치열하게 더 악착같이 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대학입시를 마칠 때까지 장난감 공장에서 일을 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십여 년 이상을, 일을 한 것이다. 

가끔 엄마를 떠올릴 때면 그 시절 공장 안의 공기도 같이 떠오른다. 핑, 돌게 했던 본드 냄새도 떠오른다.

유난히도 젊었던 엄마,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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