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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배꼽 Oct 26. 2024

새콤한 오이지

이것 좀 먹어봐, 진짜 맛있다

    남편이 2주 간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었지만, 본인만 좋은 호텔에서 자고, 본인만 맛있는 것 먹고 와서 미안해하는 오죽이나 착한 남편이다. 워낙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서 업무를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것이 힘들다고는 했지만, 그렇게라도 나는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저 멀리 공기를 한가득 마시고 오고 싶었다. 

    나의 그 부러운 마음이 남편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걸까?

    그런 남편이 출장을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장인어른, 장모님께 맛있는 것을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 어느 멋진 레스토랑으로 친정 부모님을 모셨다. 



    두 돌도 안 된 딸이 아장아장 걷다가 행여 넘어질까, 모서리에 머리라도 쿵 하고 부딪힐까, 매시간 가슴을 졸이던 나에게는 감히 꿈꿀 수도 없는 화려한 외출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우리들은 여느 때처럼 신랑에게 메뉴 결정을 맡겼다. 나를 비롯한 친정 부모님은 이것도 좋은 것 같고 저것도 좋아서, 쉬 결정을 못하는 갈등이 많은 유형이다. 그에 반해 신랑은 주문도 척척 재빠른 유형이다.



    고소한 냄새가 폴폴 나는 '카르보나라 스파게티'가 식탁 위에 올려졌다. 꿀을 찍어 먹어야 더 맛있는

'고르곤졸라 피자'가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차 하면 쓰러질 법한 높다랗고 낯선 검은빛의 '수제 햄버거'도 이어서 등장했다. 내가 좋아하는 '치킨샐러드'도 반기고 있었다.



    엄마는 가끔 횟집에 가도 메인요리인 회보다 소위 '스께다시'에 관심을 가지는데, 그날도 역시 변함이 없었다. 묵직하고 비싼 음식보다 따라 나오는 작은 음식에 더 마음을 두는 친정엄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마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양쪽 손등에 검버섯이 내려앉은, 45킬로그램의 여린 소녀가 무언가를 드시더니 바로 나에게 권한다. 

    “희진아, 이것 좀 먹어봐 진짜 맛있다, 오이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엄마가 방금 나에게 오이지라고 했나? 여기 레스토랑인데?’



    남편이 딸아이를 어르며 장인어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엄마에게 나직이 말했다.  

    “엄마, 여기 레스토랑인데. 오이지?”

    “응 먹어봐 이거 오이지, 정말 새콤하고 맛있어”

서둘러 엄마의 포크가 머문 곳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멈추었다. 그리고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왼손으로 살짝 입을 가리고 맞은편 엄마에게만 들릴 듯 말했다.

     “엄마도 참, 이거 피클이잖아. 오이지 아니고..”

     “아 그렇지! 삐클이지, 삐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작은 소녀가 손뼉을 마주치며 활짝 웃는다. 나도 엄마와 함께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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