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는 단어
<팥빙수의 계절>
어릴적 아버지의 모습에 답답했다. 피자빵을 두고, 소세지 빵을 무시하고, 생크림빵을 피해 팥빵을 집으시던 선택.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모습. 그토록 팥빵과 양갱에 집중하시던 아버지를 이해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팥을 찾아 다닌다. 심지어 부산을 떠나지 않는 이유중 하나도 부산은 팥빙수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잊지못하는 해운대의 팥빙수. 얼마나 좋던지 팥을 리필하며 옆에 있는 사람들 신경 쓸수 없이 집중 하던 나.
이후 용호동에서 만난 팥빙수. 시장속까지 들어가 찾아나선 그 빙수집은 결국 6살된 하늘이를 데리고 다닐 정도로 팬이 되었다.
거기에 멈출수 없어 남천동의 녹차 팥빙수를 경험하러 하염없이 걷다가 발견한 이국적 분위기에 엄청난 맛.
그리고 오늘. 사직에서 발견한 보물같은 팥빙수집. 들어가자마자 동네 사람들이 가득해서 딱 한자리. 그것도 옆 테이블과 딱 붙은 자리에서 나는 팥빙수를 먹었다.
식사할때 나의 기본적 태도는 함께 먹는 사람들이 무안하지 않게 속도를 맞춰 먹거나, 혼자 먹을때는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먹는다.
그러나 나는 빙수 앞에서 언제나 무례해 진다. 빙수에 집중하고 또 본능에 숟가락을 맡긴다.
나는 떠먹파 이다.
빙수를 섞어 먹는 것은 정말 슬픈일이다. 특히 팥빙수는 떠먹어야 팥을 온전히 느낄수 있다. 토핑은 팥으로 충분하다. 만약 얹는다면 연유 조금과 미숫가루정도?
사직에서 경험한 빙수는 나에게 백점만점에 백점이다. 그럼 해운대 빙수는? 당연히 백점, 남천동, 용호동, 동래, 중앙동 빙수 모두 백점.
나에게 부산의 팥빙수는 절대평가이다. 팥빙수에 있어서 늘 후한 평가가 나온다. 이것이 빙수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태도.
오늘 사직에서 먹은 팥빙수는 일단 팥이 정말 부드럽다. 목넘김이 좋고 단맛도 적절하다. 팥만 퍼먹어도 기분 좋을 기본에 충실한 맛. 간단한 연유와 미숫가루도 궁합이 잘 맛는다. 평균 연령대 60대 후반의 고객분들이 가득하고, 팥 칼국수와 팥죽을 드시는 분들이 가득한 것도 이곳의 위엄을 말해준다.
이제 점점 팥빙수의 계절이 지나간다. 그러나 나에게 팥빙수는 4계절 모두 가능하기에 여름에 먹는 빙수의 맛이 아쉬울뿐.. 가을에 또 겨울에 먹는 팥빙수가 기다려진다.
팥빙수의 고장. 부산에 사는게 자랑스럽다. 나에게 밥먹고 커피나 차마시자는 것도 좋지만 팥빙수 먹자하면 나는 아마 미소를 숨기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 바로 오늘이 기쁘고 즐겁게 팥빙수 먹기 가장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