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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을 기다리며 Mar 08. 2020

행복한 윷놀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엄마와 보내는 일상 5/2020.3.1.일

오후에 어머님이 오셨다. 오전에 출근했던 신랑도 일찍 돌아왔다. 재욱이는 당장 윷놀이판을 가지고 나왔다. 어머님이 지아에게 카톡으로 온 파일을 다운 받는 방법을 잠시 배우는 동안 재욱이는 말을 그렸다. 말은 번호로 77과 71이었다. 엄마, 나, 신랑이 한 팀이고 우리 말은 77번, 재욱이와 지아 어머님이 한 팀이었는데 그들의 말은 71번이었다. 재욱이의 생각이었는데 팀에서 가장 많은 나이를 말의 이름으로 정하자고 해서 재욱이가 쓰고, 동그랗게 예쁘게는 내가 오렸다. 

시작했다. 엎치락, 뒤치락 윷놀이가 다 그렇듯 실력이 아니라 운이므로 앞서서 잘 나가던 말들이 한 순간에 잡히고 말거나 뒤에 오던 말이 짧은 경로로 먼저 들어가기도 한다. 첫 판도 그랬다. 우리팀이 다 이긴 경기였는데 막판에 뒤집혀 졌다. 

재욱이는 다시 팀을 짜자고 제안하고 조그마한 종이에 같은 숫자를 2개씩 써왔다. 나와 어머님, 신랑과 엄마, 지아와 재욱이가 팀이었다. 선을 정하는데 윷가락 하나씩을 던지기로 했다. 시작 소리와 함께 날아오른 세 가닥의 윷가락이 공중에서 제비를 돌고 착지하는데 아뿔사, 누가 누구 것인지 도통 알 재간이 없어 우리는 한꺼번에 까르르 웃었다. 자, 다시 이번엔 한 명씩 던져 보자. 아싸, 이번에도 나의 팀이 1등이다. 당연히 세 번째로 하기로 했다. 시작도 좋았고, 이번에도 엎치락 뒤치락 잡고 잡히면서도 1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간신히 도망가도 잡히고 막판에 말에 말을 업고 달려온 팀이 결국은 승리를 한다. 거기에 엄마는 연신 ‘윷’과 ‘모’를 던지고, 지아도 궁지에 몰린 말들을 연거푸 윷을 던져 살려내어 우리 모두 운수 대통할 거라 해 줬는데 그렇게 두 번째 판은 지아의 운으로 그들이 1등을 했다. 늘 똥손이라며 자신의 팀은 질 거라고 먼저 설레발 치던 재욱이는 신이 났다. 그 기세를 몰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자 하여 또 편을 짰다. 지아와 나, 엄마와 신랑은 운명처럼 또 한 편이 되었고, 재욱은 어머님과 한 편이 되었다. 

우리는 이 마지막 판을 하는 동안 웃을 일이 더 넘쳐났다. 역시 엎치락 뒤치락이다. 내 차례에 ‘걸’을 던져 우리 말을 옮기니 “아니 왜 남을 말을 옮겨, 우리 말 얼른 나야지” 하며 정색을 하신다. 까르르, 아까 한 팀이어서 어머님이 착각을 하셨다. 그래도 너무 정색을 하셔서 어머님의 승부욕이 대단하다는 걸 모든 이가 다 알게 되었다. 재욱은 제발 제발 윳나와라 하며 던진 윷가락들이 공중 제비를 돌고 돌아 윷이 되기 직전인데 한 가닥이 또르륵 굴러가다 매트 밖으로 나가 낙(落)이 되었다. 아이쿠야, 이 순간 도망가야 되는 말인데 그저 주저 앉아 있다가 다음 번 말에 영락없이 잡혀 버렸다. 그래서 다음 번에 재욱이가 기도하며 할라치면 어머님은 “낙(落)이나 하지 마세요”해서 우리가 또 한참을 웃었는데, 마지막 잡히냐 잡느냐의 순간에 던진 어머님의 윷이 낙(落)이 되는 순간 우리는 다 같이 배꼽을 잡고 구를 신세가 되었다. 마지막 판은 정말 운이 좋게 마지막으로 막내 말을 보낸 나와 지아팀이 이겼다. 지아는 정말 신나했다. 한바탕 웃고, 떠들고 난 뒤 어머님이 삶아 오신 달콤한 감자와 계란을 둘러 앉아 까먹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맛이 좋다니! 

코로나 19로 집콕하는 가운데 휴일인 오늘, 온가족이 거실에 모여 앉아 2시간을 깔깔깔 웃으며 건강한 시간을 보냈다. 한 번씩 생각한다. 곧 만나게 될 학교 아이들도 티비나 유튜브의 영상을 장시간 시청하는 것 말고 나름의 건강한 실내 놀이를 발견하여 참여하고 사색이나 독서, 가족들과의 따뜻한 대화로 눈도 마음도 건강하게 보내고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게 어디 쉬울까 마는 규칙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습관을 주도적으로 해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면 가능하겠다 싶은 생각에 이르고 보니, 개학하고 나면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교사의 책무성은 또 얼마나 커야 하는지에 대해 덤덤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실에서는 진지함과 더불어 유쾌함도 넘쳐나야 한다는 것을. 

오늘은 윷놀이를 좋아하고 윷놀이 하자고 제안하는 재욱이가 있어 즐겁고 고마웠다. 스스로 윷놀이에 참여하게끔 사람들을 모으고, 팀을 짜 주고, 말을 종이에 그려 오리고 하는 과정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재욱이다. 배움이란 이런 게 아닐까, 느리게 가는 걸음이지만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도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윷놀이는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운으로 하는 것이지만 한 번씩 던질 때마다 얼마나 간절한 기도를 하는가, 그래서 ‘모’가 나오면, ‘모’가 아니어도 타이밍에 맞는 적절한 수(手)만 나와도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진 듯 기뻐하는 경험을 몇 번씩이나 가져보게 된다. 짜릿한 성취감도 있고, 말을 쓰며 전략도 써본다. 남의 말이라도 가장 지혜롭게 전략적으로 옮겨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니가 이기고 내가 지면 어떠랴 우리가 함께 즐거우면 되지, 이런 마음과 함께 하는 윷놀이는 그 어느 보드게임보다도 재밌는 가족 놀이가 됨을 모두 알고 있지 않는가. 


2020.3.1.일


<에필로그>


엄마는 오늘 또 한 페이지에 그림을 끝내셨다. 오후엔 어머님이랑 이어폰을 나눠끼고 계속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낮에 우동과 쌈밥을 맛있게 드셨고, 저녁엔 양념치킨과 후라이드 치킨을 잘게 잘게 잘라 밥과 함께 비벼 맛있게 드셨다. 예약해 준 밥솥 두껑을 몇 번을 열으셔서 몇 번을 다시 닫고 "밥은 내가 할게" 했다. 저녁 드시고 지아가 할머니를 모시고 양치하러 가는데 길이 길었다. 걸으시다 잠시만, 하시며 바닥을 한 번 닦고, 또 발걸음 옮기시다가 현관에서 신발을 정리하시고 그 다음에야 양치를 하실 수 있었다. “엄마, 할머니는 정말 정리정돈 하시는 걸 좋아하시나 봐. 낮에 내 딸기씨를 심은 화분들이 없어진 거야. 어디 있을까 찾아봤더니 책상 밑에 내 상자 놓아두는 공간 알지? 거기로 옮겨두신 거 있지. 하하” 속상하진 않았다고, 할머니 그러시는 거 안다고 하는 지아에게 고마웠다. 할머니 드실 치킨을 앞접시에 옮겨 놓고 가위로 잘게 잘라 드리는 것도 지아가 한다. 안동에 있을 때 나도 오빠도 이가 안 좋으신 할머니를 위해 드실 음식을 늘 잘라 드렸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지아도 커가고, 엄마도 나이 들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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