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엄마와 보내는 일상 7
쇼파에 앉으신 엄마께 안약을 넣고 돌아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서울에 살고 계시는 엄마의 첫째 동생, 나의 둘째 이모셨다.
“안동에 코로나 확진자가 많다는데 엄마는 혹시 밖으로 혼자 나가시지는 않는지 걱정 돼서...계속 전화를 안 받으시고.., 그래서 너한테 했다. 잘 지내지?”
“이모, 저야 말로 먼저 안부 전화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잘 지내고 있어요. 이모도 잘 지내시죠?”
엄마는 지난 22일에 대전으로 모시고 왔고, 여기서 잘 지내고 계신다고 전해 드렸더니 마음놓아 하셨다. “니가 고생이 되도 계시는 동안 딸이니 잘 모셔 드려라”며 고맙다 하셨다. 엄마가 통화하실 수 있게 스피커 폰을 꼈다. “엄마, 정순이모야”
“네, 잘 지내지요?” 말을 높이는 언니에게 이모는 “정순이야”라고 몇 번을 말씀 하는데도 엄마는 경어체로 대답하며 대화를 이었다. 재욱이와 지아도 거실로 나와 이모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중 3이 되었다 하니 많이 컸겠다며 안동 할머니와 지내는 동안 불편한 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너희가 있어 할머니가 즐거우실 거라 말씀해 주시니 재욱이는 전혀 불편한 건 없어요 한다. 이모는 지아에게 집에만 있어 힘들겠지만 식구들이 많아 좋겠다 하시니 맞아요 한다. 엄마 여기에 계시는 동안 즐겁게 잘 지낼 수 있도록 할께요 하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 정순 이모였잖아.” 했더니 “정순이라고? 나는 또 누구라고, 다시 전화 걸어줘 봐” 하신다. 그제야 기억이 나신 모양이다. 다시 전화를 넣으니 “정순아, 아까는 닌줄 모르고 말을 했네. 이제 알겠다.”라며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뒤로 갈수록 다시 경어체를 쓰고 끊으며 “잘 지내셔요” 한다.
“옥련이 고모지?” 그때 거실에 모여있던 우리 셋은 웃음이 빵 터졌다. 내게 쓰윽 안기며 지아는 "데자뷰인가.."
“아니, 정순 이모였어.” “아, 그래? 난 또 누구라고. 다시 전화 넣어 주면 안되나?” 다시 전화넣어도 또 반갑게 받을 이모시지만 나는 엄마를 보며 씽긋 웃었다. 엄마도 나에게 쌩긋 웃으시더니 다음에 걸자고 하신다.
“엄마는 극한 직업이시네요.” 재욱이가 키넥트스포츠를 켜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만한다.
했던 말 또 하고, 똑 같은 거 또 물으시고, 답하면 또 똑같은 거 물으시고, 똑같은 거 물어와도 짜증없이 또 대답해 주시고.., 아들 눈에 '극한 직업'의 일로 보였나보다.
그렇구나, 아들, 그래도 괜찮아. 우리 엄마니까. ^^
엄마는 오늘도 색칠을 많이 하셨다. 엄마가 칠한 색으로 가득 채워진 그림책을 넘기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오빠들에게도 보내고 이모들께도 보내드렸다. 잠시 후 엄마의 막내 동생, 나의 꼬마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특수학교 교사로 근무하시는 이모는 오늘 출근하셨다가 막 퇴근한 길이라고. 겨울 방학 동안 석면 교체 작업을 한 교실을 정리정돈 하고 돌아오는 길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가 비상인데 안동에 전화를 넣어야지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엄마 영상과 소식 전해줘서 고맙다고. 엄마와 먼저 통화하시고 나와도 한참을 통화했다. 엄마 이야기, 재욱이와 지아의 소식, 신랑의 소식까지 그리고 이모의 멋진 아들과 딸의 이야기도 전해 들으며 서로 착한 아들, 딸이 있어 좋겠다고 마무리하며 전화를 끊었다. 여섯시가 넘었다. 오늘 저녁은 오징어 국수와 오뎅탕이다. 매운 양념에 어슷 썰기한 파와 풋고추, 우동면과 오징어를 듬뿍 넣었다.
“할머니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어느 동생이 제일 좋아요?” 맛있게 밥을 먹던 지아가 묻는다.
“누가 제일 좋으냐고? 할머니는 다 똑같이 좋아.” 젓가락으로 밥 한 술 뜨시며 엄마가 대답한다.
“아니, 비밀 지킬게요. 누가 제일 좋아요?”
“그거 진짠데, 곤란하잖아. 하하. 나는 다 좋아”
씨익 웃던 지아는 다시 나에게 물음을 던진다.
“엄마는 어느 오빠가 더 좋아?”
생각해보니 나도 정말 그랬다.
“엄마도 오빠 둘이 다 똑같이 좋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네. 오빠 하나인 나로서는. 정말 그럴까? 후훗"
맛있는 밥을 먹고 있으니 큰오빠는 밥을 어찌 먹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오전에 알려준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샀는지도 궁금하여 전화를 했더니 연결음이 한참 울린 뒤에 받는다. “반찬 샀어?” 오빠는 오늘이 할머니 기일이라 고기며 생선으로 몇 가지 제사 음식을 했으니 그거 먹으면 된다 하는데,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다. 오늘이구나..., 할머니 제사가. 고마워하며 전화를 끊는데, 엄마는 또 음식을 드시다 말고 궁금해 귀를 기울이셨다. 오빠는 어떻게 밥을 먹는데? 응, 오빠도 이것 저것 반찬해서 저녁 잘 먹었대.
세 식구가 아직 밥을 먹는데 쓸 거리가 생각나 먼저 일어날게 양해를 구하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보니 어느새 설거지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엄마가 고무장갑도 없이 설거지를 시작하고 계셔서 내가 할게 하며 뛰어 갔는데 기어이 오늘 설거지는 엄마가 하시겠단다. 이미 팔 걷어 부치고, 세제 묻힌 수세미로 그릇을 정성껏 닦고 계셨다.
“엄마도 할 수 있지. 이것도 못할까 봐, 오늘은 내가 한다. 니는 가서 니 일, 영글게 해라.”
세상에나, 신난다. 고마워, 엄마.
이번에 오셔서 설거지는 처음으로 하신다. 엄마가 잘 하시는 일이니까, 이쁜 딸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하시는 걸 아니까, 방법을 잊지 않고 스스로 하실 수 있을 때까지 즐겁게 하는 일이니까 그런 엄마를 보며 나도 오늘 저녁엔 엄마의 설거지를 기쁘게 생각하기로 했다.
2020.3.3. 수
<에필로그>
“은영아, 마른 행주는 어디 있니? 이거 닦아서 넣야 하는데..”
안동에서 엄마는 제사가 끝나면 씻은 제기들을 꼭 마른 행주로 닦아 그릇장에 다시 넣으셨다.
“엄마, 이건 닦아서 넣지 않아도 돼.”
씻어 씽크대에 올려 놓은 그릇을 설거지 건조대에 엎어 놓는데 세트 그릇 예쁘다고 하신다. 안동에도 사 드릴까 했더니 아니다 내가 사면 되지하며 값을 물으시길래 대충 20만원이라 했다. 안 되겠단다. 20만원은 비싸서 할머니가 싫어하실 것 같다고.
“엄마 이젠 할머니 돌아가셨으니 괜찮지 않아?” 했더니 그제야 그렇네 하신다. “엄마, 우리 할머니도 엄마가 며느리라서 정말 좋으셨을 거야.”
“그럼, 착하다고 좋아하셨지.” 할머니의 기일을 아시는지 엄마는 그렇게 먼저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셨다. 엄마 마음이 할머니에게 사랑받은 며느리였음을 기억하고 있어 주어 정말 고마웠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