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엄마와 보내는 일상 4/2020.2.29.토
“할머니는 길치시네요. 저는 밖에서는 길치지만 집에서는 길치 아닌데.”
저녁 먹고 할머니 양치를 재욱에게 부탁했는데, 식탁을 한 번 더 닦은 휴지를 손에 들고 어디에 버릴까, 양치는 어디로 하러 가지 하시며 안방으로 들어가는 할머니를 조심히 이쪽이에요 모시고 나온다. “그래, 나는 길치다.”며 엄마는 웃으며 대화를 이으신다. 재욱은 한번 해 본 적 있다고 할머니 이가 위에 몇 개 아래 몇 개 하길래 “조심해서 해 드려라” 했더니 “알아요” 한다. 고맙다, 아들.
지난주 토요일 대전으로 오신 날 양치와 안약 넣기, 약 챙겨 드리기를 내가 했지만 다음날 부터는 아이들이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있다. 특히 하루 세 번 넣어야 하는 안약과 저녁에 드시는 약 챙기는 일은 지아가 도맡아 하고 있다. 오후에 보니 지아는 자기의 옷 정리 바구니 한 칸을 비워 할머니 옷가지와 소모품을 정리해 놓은 게 아닌가. 할머니가 옷가지를 가방으로 넣었다 뺐다 하시는 모습보다 이게 낫다라고 생각해서 정리해 놓았단다. 이쁘다, 딸.
오늘도 거실 창을 바라보며 놓인 ‘꿈꾸는 책상’에 나도 앉고 엄마도 앉아 오전을 보내었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엄마는 엄마의 색칠을 하며 계속 대화를 했다. 살아온 엄마의 시간에 대해 내가 물으면 엄마는 답해 주었다. 엄마의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일게 했고 감동으로 뭉클하게 했다. 이러셨구나, 이런 마음으로 살아오셨구나. 엄마의 삶과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인내하며 살아온 엄마, 당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몇 번을 여쭤봐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씀에 얼마나 찡했던지.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셨구나...
우린, 점심도 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나는 쓰거나 한글 파일 정리를 하였고, 엄마는 계속해서 색칠하는 페이지를 완성해나가셨다. 그러시더니 2시가 좀 넘은 시각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셔서 낮잠을 청하셨다. 대전에 오셔서 처음 주무시는 낮잠이었다. 들어가실 때 컬러링북과 색연필을 덮어 앉으신 자리에 반듯하게 두시곤 말이다.
그때 대전에 살고 계시는 넷째 이모의 전화가 왔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아이들과 어찌 지내고 또 대전에 온 언니는 어떻게 지내나 소식 궁금하여 전화를 주셨다. 이모도 동네에 채소와 과일 사러 나가는 일 말고는 집에서 지내며 조심하신다고, 특히 엄마는 고령이시니 더 조심하라고 한 번 더 당부를 하신다. 다음 주까지 우리 집에 계실 것 같다 했다. 그렇구나, 니가 고생하겠구나 하시며, 오빠가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고생했을지 알게 되겠구나 조심히 말씀해 주셨다. 알지, 이모,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모시고 있지 않아도 그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픈 엄마를 모시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마음 아픈 일인지, 오빠는 그 긴 시간을 어찌 그리 똑같이 모셔 주었는지 더 고맙고 감탄하게 된다고 전해 드렸다.
아주 깔끔하신 성품의 우리 이모도 편찮으셨던 외할머니, 그러니까 이모와 엄마의 사랑하는 엄마를 모셨다. 3년 전 외할머니는 우리에게 많은 슬픔을 남기고 돌아가셨는데 그때 외할머니의 연세는 97세였다. 우리 외가 가족들은 이모에게 진심으로 감사했고, 병세 있는 어른을 집에서 간호하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를 짐작했다. 온 정성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이며 간호하는 사람의 마음과 체력이 상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도. 그러나 이모는 정신력이 강하셨고, 정확하신 분이라 때로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외부의 관심과 방문을 끊어야 할 때는 정확히 전달하셨고, 차분하셨고 강단 있으셔서 외할머니의 간호 중에도 자기 관리를 잘하시어 지금 건강하게 지내신다. 오늘도 엄마는 말씀하셨다. 7남매 중 엄마는 부끄럼이 많고 착하기만 했지만 동생들은 모두 ‘똑 부러지게 똑똑한 동생들’이었다고. 오빠의 안부를 물어오시길래 오빠의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고 전해 드렸다. 한 주 더 오빠에겐 쉬게 하고 먹는 것도 잘 먹도록 자주 전화를 넣으라고 당부도 해 주신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엄마와 아빠와 함께 지내는 오빠의 삶에 희생과 헌신만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하지만 타고난 성품이 엄마처럼 가족에게 깊이 베풀고 자기희생적이다. 이제 생각해보니 큰오빠의 성품은 엄마를 많이 닮았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더 사랑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빠, 엄마의 삶과 오빠들의 삶 그리고 나의 삶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적극적으로 이야기 나누며 지혜로운 방법을 찾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엄마는 지금 배추와 양상추를 구분하지 못하시고, 스파게티와 비빔국수를 구분하지 못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큰오빠와 통화를 하는 중에 건강을 챙기라 하면 하던 일 멈추시고, 자기 몸 돌보지 않고 회사 일과 아픈 엄마를 정성껏 돌보는 아들이 걱정되어 얼굴이 우울해지신다. 멀리 사는 둘째 오빠와 통화를 하다가 바꿔 드리면 너무 바빠 오지도 못하나? 시간 날 때 꼭 들르라며 보고 싶은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신다. 아이스크림을 나도 먹고 있는데도, 엄마 것을 잘라 나눠 먹으라고 계속 권해 주신다. 색연필을 손에 꼭 들고 집중해서 색칠하시다가도 점심 준비하러 부엌에 들어가는 사위 소리가 나면 “은영아, 니가 가서 해라. 이서방이 할라 하잖아” 하신다.
익히 알던 채소의 이름이나 물건들을 구분하지 못하시고 딸 집의 화장실과 안방의 위치를 구분하지 못하시지만 아직 삶의 중요한 맥락을 잊지 않고 살아가 주시는 엄마가 나는 너무 고맙다. 엄마에게 다가올 앞으로를 변화를 생각하며 미리 걱정하고 속상하고 힘빠져 하기 전에 오늘 당장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런 다짐을 백 번도 더 해 본다. 그렇게 사랑하는 데에 최선을 다할 나에게 마구 응원을 보내본다.
2020.2.29.토
<에필로그>
사랑함에 정답이 있을까? 삶에 정답이 있을까? 착하고 우직한 성품으로 내가 더 손해 보고 살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오신 엄마의 삶에는 속상함과 억울함이 많아 그것을 다 꺼내놓고 풀어야 할 것만 같은데, 엄마는 삶을 두고 ‘잘 살았다’ 하신다. ‘나대로 인내하며 나는 그렇게 잘 살았고, 그렇게 인내하며 살은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흔들리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눈물도 덜 흘리시고, 그렇게 색칠을 이어가신다.
아......., 삶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고, 그러므로 저마다 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오늘도 엄마는 엄마의 하루를 스스로 선택하며 색칠해 가신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