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엄마와 보내는 일상 3
반배정 발표가 나던 날, 지아는 학교에서 꾹 참았던 눈물을 현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터뜨렸다. 망했어. 그 한마디를 북받쳐 오르는 슬픔에 실어 뱉어내고 쇼파에 엎드려 한 시간을 울었다. 친한 친구들 중 자기만 다른 반이 되었다라는 사실은 내가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생의 큰 시련이다. 6학년을 앞둔 지아에겐. 그래서 나는 딸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그저 곁에 있기만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얼마나 속이 상했던가. 어디 반편성만 그러한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도 그랬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 때도 그랬다.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좋아했던 친구없이 학급생활을 하거나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어서 2월쯤이면 얼마간은 하늘이 무너지곤 했었다. 그러나 살아보면 다르다. 지금까지 오랜 삶의 친구로 이어지는 내 좋은 친구들은 운명처럼 몇 년을 같은 반에서 지냈다기보다 딱 한 번 같은 반에서 지낸 친구이거나 동아리를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한 번도 같은 학교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이 고입 체력장을 하러 간 다른 학교의 운동장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도 내겐 있다. 딸의 울음이 조금 그쳤을 때 이런 나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물론, 그 이야기도 큰 위로는 되지 않았다.
“엄마, 내가 방탄 콘서트에 당첨되던 날, 나의 운을 다 써 버려서 그런거야? 오류겠지? 선생님이 나에게만 스티커를 잘 못 붙여 주신 거겠지? 그럴 거야. 3월 2일에 학교에 가면 나도 그 친구들과 같은 반에 편성된 이름표가 다시 붙어 있을 거야. 그치? 오류 맞을 거야.” 백 번도 더 넘게 반을 알려주는 스티커가 잘못 붙혀진 것일 거라며 기도하듯 진지해졌다가 웃었다가 다시 슬퍼졌다 하는 표정으로 2박 3일을 꼬박 보낸 뒤에야 마음이 안정된 듯 “이제 괜찮아”라고 말해 주었다.
한 번은 “니가 슬프니까 엄마도 슬프잖아” 했더니, “아니야, 엄마는 엄마의 기분으로 살어. 나의 속상함을 엄마는 들어주기만 하면 돼. 엄마까지 슬퍼질 필요는 없어.” 했던 지아였다.
며칠 전 지아의 책상을 정리해주다가 정성껏 쓴 지아의 소원 딱지를 발견했다.
[**와 꼭 한 반이 되게 해 주세요]
5년간 같은 반이었던 친구니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에서도 운명처럼 같은 반이 너무나 되고 싶었겠다 싶었다. 하지만 지아도 알게 될 것이다. 삶을 관통하며 좋은 친구란 한 번을 만났어도 그 관계가 이어지며 서로의 마음과 영혼을 반짝이게 해 줄 것이며,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오래오래 벗으로 지낼 수 있음을 말이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우리 가족도 모든 외부 스케줄을 만들지 않고 집콕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집에만 있어도 나름 스케줄표 대로 움직이며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던 딸은 오늘 아침 다시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운을 다 써가며 당첨된 방탄콘서트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몇 일 전에는 1시간의 포기 않는 노력으로 인터파크 티켓팅에도 성공하였던 지아였다. 반편성에서 가장 최악이었으나 ‘아직 운이 있군’ 이런 마음으로 되살아난 지아를 다시 무너지게 한 소식이 코로나 19 확산의 무거움과 함께 콘서트 취소의 소식이 도착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신종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세상이 온통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지금, 엎드러 우는 지아를 달래며 4월에 있을 콘서트를 방탄 측에서 취소한 건 잘 한 일이라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지아도 동의하며 마음을 빠르게 추스렸다.
자기 방에서 오빠 못 들어오게 문을 콕 잠그고 엄마와 단 둘이 있으면서 울음을 그쳐간다. 얼굴 말갛게 되려는 지아에게 더 물었다.
“겨우 6학년인데 이런 큰 시련들이 너에게 와서 힘들어?”
“응..., 겨우 6학년인데..., ”
“그렇구나. 그럼 중 3이나 고 3쯤에 왔으면 좋았으려나?”
자신이 진심으로 바랬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슬픔, 더 커서 겪는 게 나을까 싶어서 툭 던졌는데, 잠시 생각한 지아는 두 손으로 눈을 쓰윽 닦더니 이렇게 말한다.
“ 음.., 아니, 고 3은 안되지, 중 3도 안되지..., 어.., 그러면 차라리 6학년 때 겪는 게 맞나? 이렇게 겪으면 앞으로의 시련은 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딸이 반배정으로 온통 힘들어하던 그 시기 나도 힘들어 먼저 딸키운 친구에게 하소연하던 나에게 친구가 똑같이 해 주던 말이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고. 온통 속상함을 쏟아 내는 그때는 지아의 말을 그저 들어주기만 했었는데 어느새 스스로, 비슷한 생각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며 힘듦을 이겨나간다.
“넌, 감당할 수 있는 아이라 그래. 이런 어려움을 너의 지혜로 충분히 헤쳐나갈 것이란 걸 알으신 거지. 닥쳐오는 순간순간의 문제들을 누가 다 알겠니? 맞딱드리며 아무도 아프지 않거나 덜 아플 수 있게, 잘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우며 나아가는 거지. 너는 진짜로 멋진 6학년을 보낼 수 있을 거야.”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부엌에서는 재욱이가 비빔밥을 해 놓았다. 먹으러 나가며, 지아는 말한다.
“엄마, 지금 시련이 있으니까 앞으로 내게 행복이 오더라도 불안하지 않을 거야.”
이야, 배운다, 엄마는. 오늘도 너에게. 맞아.
아침밥을 일찍 먹었더니 덩달아 점심 먹는 시간을 당기는 재욱이다. 12시도 안되었는데 계란후라이에 파김치 쫑쫑 잘라 참기름과 함께 비벼 놓은 양푼이에서 한 그릇씩 덜어 먹는다. 이야, 맛있다, 이 비빔밥. 아들이 해 준 거라 더 그런거겠지?
2020.2.28.금
<에필로그>
오전, 내가 지아방에 들어간 사이, 엄마는 씽크대 위에 올려둔 양상추에 참기름이랑 아침에 끓인 김치찌개 남은 국물을 넣어 간을 하셨다. 마늘은 없나? 마늘이 없어 맛이 덜 나네, 하시며 몇 번을 맛보신다. 충분히 맛있어, 하며 두껑 있는 반찬 통으로 옮겨 담아 냉장고에 넣었더니, 뿌듯한 말투로 반찬 되지? 하신다. 그럼!
햐아, 엄마는 씽크대에서 참기름을 어떻게 찾았을까.
오후, 조용히 오시더니 책상에 앉은 나에게 아이스크림 반 개를 건네준다. 더워서 냉동실에서 카페오레 하나 꺼냈다고, 칼로 자른 반은 엄마가 입에 넣으셨고 막대 있는 반 쪽을 내게 건네시는데 한입 베어 물며 나도, 엄마도 빵 웃음이 터졌다.
마침 오늘, 재욱이가 아이스크림을 사 온 걸 엄마는 어찌 아셨던 것일까.
오늘도 설거지도 하시고, 거실에 보이지 않는다 하시면 어김없이 청소중이셨다. 그리고 냉장고와 냥동실도 열어보시고, 그림 색칠도 하시고. 전국노래자랑 시청하시며 연신 웃으시기도 하시고. 사람은, 부지런히 살아야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