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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을 기다리며 Mar 07. 2020

급함이 느림을 만나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

-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엄마와 보내는 일상2



오늘 아침은 토스트였다. 아들은 계란후라이를 만들고 나는 식빵을 구웠다. 사과잼과 버터까지 골고루 발라 우유와 함께 먹는데 엄마는 “밥보다 맛있다” 하신다. 다행이다. 어제 저녁에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그때도 “이 국수, 진짜 맛있네” 하셨다. 싫어해서 아무리 권해도 평생 안 드시던 토마토였는데, 토마도 소스를 얹은 스파게티 면을 비빔국수처럼 싹싹 비벼 드시며 하시는 말씀에 아이들은 더 말 안하고 씨익 웃었다. 몇 번을 할머니께, 그건 스파게티에요라고 해도 국수라 하시니까. 엄마는 지금 뭐든 잘 드시고, 어떤 일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해 주신다. 안심도 되고 밥 차린 사람 마음도 기쁘게 하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가족과 엄마가 함께 지낸 몇 일을 돌아보니 예전과 달리, 짜증을 내시거나 삐지신 적이 없고 나도 그러하여 감탄하고 있다. 겨우 여섯 날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이런 평온함이 가능할까? 궁금하다. 찾아보건데 그건 아마, 엄마도 변했고 나도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변해야 할 때 변해야 한다는 순리를 우리가 따르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몇 해 전 치매 판정을 받은 엄마를 위해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아들, 딸을 키우며 사는 딸이 도와드릴 수 있는 실제적인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의 사랑을 깊이 고마워하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과 함께 더 빨리 병세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미련함에 대해 후회를 많이 했다. 엄마를 도와드리는 대부분의 일은 함께 살고 있는 큰오빠의 몫이었고, 나로서는 더 자주 전화를 드리고, 더 자주 안동을 찾아 뵙고, 여름과 겨울 방학에 우리집으로 며칠씩 모셔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창대하나 끝이 미약할 때가 많았다. 청소나 설거지, 샤워를 하셔야 하는 상황에서 갈등이 일어났고 그럴 때 한 나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때도 엄마는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 자꾸 여기저기 청소하시고 이리저리 엄마 방식으로 정리하셨다. 내 방식과 다른 것도 싫었고, 일하시는 엄마의 모습도 싫어 가만히 앉아 쉬시라고 했다. 몇 번은 알았다고 넘기시다가 자꾸 반복되면 나에게 화를 내셨다. 알아서 하는데 왜 그러냐고. 끝낸 설거지 그릇을 다시 만지고 이리저리 옮기시느라 부엌에서도 한참을 계신다. 그러지 마시라고, 내 딴에는 마음 상하지 않게 말을 건네도 엄마는 꽁하게, “뭔 잔소리가 많노, 이럴 거면 나는 집에 간다” 하시며 짐을 꾸리곤 하셨다. 몇 번은 그냥 넘기지만 자꾸 또 “간다” 하시면, 나도 “그래요 가셔요” 했었다. 참 속 좁게. 왜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이성적 사고를 전혀 해 보지 않은 사람처럼 말이다. 엄마는 습관처럼 청소와 설거지 활동을 하신 것이었고, 자존감있게 하시는 일에 아무리 딸이지만 말리는 것도 잔소리로 들리실테니 싫으셨던 거다. 

치매를 겪는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상황에 맞는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 치매 판정 이전에 늘 해 오던 일을 그대로 하실려고 한다. 여기가 안동집이 아니라 딸네 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더라도 딸의 청소방식과 자신의 청소방식의 차이가 문제를 야기할 거라는 생각도 능동적으로 하지 못하신다. 그것을 빨리 인지하고, 엄마의 활동이 나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그건 엄마를 모시는 동안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내가 감당할 몫이었다. 상황과 치매에 대한 공부를 해도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안다고 자부해도 힘든 게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고, 주변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일이지 싶다. 그 때 내가 그랬다. 그러니 생각할수록 매일, 엄마를 모시며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한 오빠의 속은 얼마나 깊고 넓고 대단한 것인가. 그러면서 또 그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오빠의 마음도 어루만짐이 필요할 때이다. 

엄마의 진행속도가 느리다고는 하지만, 혼잣말로 마음을 푸시고, 약으로 뇌와 신경을 안정시켜 도움을 받는 것이 있지만, 병은 진행 중이다. 살아온 날들 동안 엄마 마음에 쌓여 있던 많은 속상한 감정들을 여쭙고 들어드릴 수 있어야 한다. 기억이 뒤섞이는 그 순간들을 만나면 좋은 일에는 지지와 격려로, 억울하고 속상했던 일에는 한없는 공감으로 안아줄 수 있는 일을 가족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렵더라도 배워가며, 주치의와 약의 영역과는 별개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할 때, 엄마의 화와 짜증은 줄어들고 감정 변화의 기복이 줄어들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 엄마의 좋은 성품도 병의 진행을 느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당장, 나도 출근을 하게 되면 이 모든 일상에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하라 했으니,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며 엄마와 지낼 것이다. 


토스트로 아침을 먹을 만큼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아들에게 “할머니 드실동안 앉아 있을래?” 했다. 우리 아들, 태어났을 때부터 먹는 것에는 얼마나 빠른 아이였던가, 아직도 기억하면 눈물 날만큼 기쁜 일이 엄마 젖을 빨겠다고 입을 쭉쭉 벌리며 엄마 품으로 파고 드는 아이를 안고 수유실로 들어가던 기억이다. 커가며 먹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빨랐다. 배부를 때까지 먹고 나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만 먹는다. 정말 판단이 주도적이었다. ‘더 먹을까 말까’에 대한 고민이 없을 뿐 아니라 ‘살까 말까’, ‘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도 없는 아이다. 보는 대로, 느낌오는 대로 ‘즉시’, ‘빨리’ 결정하고 사든가 말든가, 하든가 말든가, 먹든가 말든가를 실행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가끔 나도 아들이 부럽다. 그러나 결정을 빨리 내리고, 후다닥 실행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아들도 ‘기다리는 일’을 어려워하고 잘 못 한다. 외식하러 가면, 먼저 식사를 끝내고 난 아들은 우리의 몇 숟가락이 남아 있어도, 커피를 뽑아온다. 더 앉아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어른들께 커피 뽑아 드리는 것으로 본인의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는 걸 안다. 생각해보면 밥 먹는 자리에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만은 오늘 아침, 나는 아들에게 그걸 바랬다. 


아들은 방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할머니 옆에 앉았다. 아직 몇 조각 남아 있는 토스트, ‘저걸 다 드셔야 나도 일어날 수 있다, 그래야 내가 영상을 볼 수 있다’ 짐작하건데 그 마음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래도 이쁘다. 다시 앉아 주니. 접시에 놓인 토스트 한 조각을 집어 들더니 할머니의 입으로 넣어드린다. 먼저 비운 접시들을 설거지통에 담그며 그 장면을 보았는데 아차 싶었다. “욱아, 할머니는 천천히 씹으셔. 이가 거의 없어 불편하시거든. 바삐 넣어 드리면 안돼.” “알고 있어요.” 하는데도 자기 밥 먹을 때처럼, 입안으로 한 입 넣고 바로 한 숟가락에 가득 떠 놓듯, 또 한 조각의 토스트를 든 손은 우물우물 씹기 시작한 할머니 입 바로 앞에서 기다린다. 그러더니 삼키기가 무섭게 다시 넣어드린다. 그래서 또 한 번 말했다. “욱아, 천천히.”

아들이 힘들어하는 일 중 하나는 ‘기다리는 일’이다. 앞으로 엄마로서 내가 도와줄 일이 있다면 이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기다림도 연습으로 가능하니까. 


자존감이 강하고, 모든 일에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한 아들은 어느 순간 요리하기를 좋아하여 방학인 요즘 매 끼니 나를 도와 음식을 하거나 재료를 준비해 준다. 마음이 앞서 후닥닥 성급하게 하는 태도로 쌀을 흘리고, 스프를 흘리고, 계란을 떨어뜨리곤 하지만 계속해서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요리란 완성하는 기쁨과 성취감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태도들을 배우게 된다. 그 중 하나가 기다림이다. 아침에 토스트용 계란을 구우면서도, 계란을 볼에 풀고, 젓는 과정을 거쳐 후라이팬에 부어진 달걀물의 뒷면이 익을 때까지 급함은 덜해지고 기다린다. 뒤집개의 모서리를 이용하여 부분 부분 조각을 내더니 수월하게 뒤집어 앞면과 뒷면을 골고루 익혀 토스트용 계란을 접시에 담아온 아들이었다. 

두 번 얘기하고 더는 안 했다. 천천히 씹고 넘기시는 할머니이 속도를 기다려 준다. 기특했다. 다 드신 할머니를 모시고 양치까지 부탁을 했더니,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으시는 할머니 걸음에 자기 걸음을 맞추고는 화장실로 간다. 양치해 드리며 “할머니는 이가 진짜 많이 없으시네요.” 한다. 고맙다고 해 주니 씨익 웃으며 할머니의 그림책을 펴 드리고 방으로 들어간다. 


글을 쓰기 시작한 내 옆에 앉으신 엄마는 초록색과 파란색 색연필로 나뭇잎을 번갈아 칠하시며 재욱이 칭찬을 시작하신다. 

“재욱이도 확 달라졌네... 가만 놔 둬 놓으면 저들 될 대로 잘 큰다니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손주가 말이 느려 딸보다 더 걱정하셨을 그 날들이 떠오른 아침인가 보다. 

"그럼 엄마, 재욱인 최고지." 


오늘도 엄마는 알록달록 색깔들로 그림도, 하루도 채워나가실 듯 하다.  


2020.2.27.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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