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와 영재(?)사이

0~7세까지의 기록

by 북도슨트 임리나

"아이가 어땠어요? 눈에 띄는 편 아니었나요?"


만 6세가 지나 아이를 조금 더 파악해보겠다고 덜컥 신청한 '웩슬러 지능 검사'의 결과 상담을 하러 간 나에게 검사자가 건넨 첫마디였다.

물론 내 눈에는 세상 누구보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눈에 띄는 아이였지만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 어떤지는 잘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로지 내 아이만 바라보며 살아온 6년이었다.


"글세요..."

라고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검사자의 질문처럼 아이가 눈에 띄는 편이었나 라고 혼자 생각해 보고 있는데


상위 0.*프로 영재입니다.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 아이가 영재라고?'


우선 기분이 참 좋았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본 기쁨이기도 했고 더 나아가 뿌듯함이기도 했다.

부모로서 들을 수 있는 아이의 평가 중에 최고가 아닐까.

더구나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닌, 입양아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과연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걸까?'

라고 스스로에게 자문을 하다가 공신력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답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검사자의 세부사항의 설명을 듣는 동안

아이를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리 아이를 처음 만난 건 생후 한 달이 좀 지나서였다.

30일된 우리 아이를 처음 만난 날, 난생처음 분유를 먹여봤고 아이는 분유를 먹다가 금방 잠이 들었다.

만약에 출산을 했다면 임신테스트기부터가 아이와 첫 만남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산부인과에서 임신을 알리며 찍어준 초음파 사진이 첫 만남이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뱃속에서 막 빠져나온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실감 나는 첫 만남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아이와 첫 만남을 성사시켜준 것은 입양기관의 복지사님의 전화였다.


"아이가 있어요. 그런데 다리에 점이 크게 있는데 그것 빼고는 건강해요."

딱 이 정도가 아이의 설명이었다.


입양 기관에 아이를 의뢰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조건을 얘기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혈액형을 맞춰달라, 사주가 좋다고 하는 띠나 달을 맞춰달라고 하거나 심지어 예쁜 아이를 원하는 등등. 하지만 우리 부부는 '딸'이란 조건 외에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딸'이란 조건을 내거는 것에 대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오히려 아이를 낳을 때 고를 수 없는 성별을 입양을 할 때 고른다는 것은 가볍게는 '반칙'같은 느낌에서 무겁게는 '생명 존중' 사상에서 어긋난다는 죄책감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들도 딸도 가리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입양 부모 교육에서 가족의 그림을 그려보란 강사님의 지시에 남편이 그린 그림에 너무나 정확히 딸로 그려져 있었고 아들보다 딸을 원하는 남편의 뜻을 따라 '딸'이란 조건 하나를 내걸었다.


입양의 절차는 간단하지 않았다.

절차의 간단하지 않음에 많은 입양을 하려는 부모들이 포기를 한다고 한다.

입양 부모의 조건은 재산, 학력, 건강, 범죄조회 경력 등등 아마 증명할 수 있는 서류란 서류는 다 제출해야 했다.


이 서류들을 준비하며 느낀 것은 부모가 된다는 조건에 대해서였다.

아이들이 방치되거나 학대받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 '부모의 자격'을 생각해 보면 입양 부모의 조건이 다소 까다로워 보이지만 어쩌면 현실적인 기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려면 경제력도 있어야 하고 몸도 정신도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신체검사에는 약물중독 검사도 필수이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류를 법원에 제출하고 최종적으로는 법원에 가서 판사에게 판결을 받아야 한다.

물론 그전에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 '보정명령'이란 것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우리 부부에게도 서류의 미비함을 보완하라는 '보정명령'이 떨어졌고 그때까지 5년간의 의료기록을 제출해야 했다. 다행히 모든 것이 통과되어 법적으로 부모와 자식이 되었다.


입양 절차의 벽에 부딪히는 사람들은 아이를 충분히 사랑으로 키울 수 있는데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어렵다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막상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진짜 '사랑'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가끔 입양부모의 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친부모보다 사랑이 덜해서 학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친부모라고 해서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걸까?라고 생각해 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주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자기가 낳은 자식도 '사랑'하지 못해서, 혹은 모성이 생기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엄마들을 볼 때가 많다.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 자연스러울 줄 알았는데 막상 아이를 키우며 보니 사랑마저도 쥐어짜야 할 때가 있다고.


나는 어땠을까?

나 또한 아이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노력했다고 쓰지 않고 노력했던 것 같다,라고 쓰는 이유는 솔직히 생후 50일 된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전과 아주 다른 삶을 살았고 제대로 못먹고 못자는 상태에서 사랑을 떠올리는 건 사치였고 배고프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었다.)


만약에 '사랑'만으로 아이를 키워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이 글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랑'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 있었던 무수한 시행착오와 절망과 희망들 엄마로서 길을 잃은 게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며 지내온 세월들 속에서 어떻게 지내왔는지....


나와 100% 유전자가 다른 아이라서 가늠도 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아이는 건강하고 밝게 심지어 지능까지 높게 자라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또한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엄마들을 만났다. 입양아 엄마만이 아니라 장애아 엄마 영재 엄마 등등. 그리고 깨달은 것은 어떤 엄마이기 전에 우리는 모두 '엄마'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충분한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낳은 아이이거나 아니거나 장애가 있거나 정상이거나 아이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아픈 아이를 키우거나 내가 남들과 다른 엄마라고 생각했을 때는 한없이 외롭고 답이 보이지 않던 일들이 나와 다른 듯 보여도 같은 '엄마'라 생각했을 때는 얼마나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고비고비마다 스승이 되어주었는지 모른다.


며칠 전에 도서관 컨설팅을 하러 이제 막 새로 생긴 작은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의 관장님은 교직을 퇴직하신 분이고 아들과 딸이 이미 성인인 분이셨는데 도서관 업무로 만났지만 같은 엄마로서 나눈 대화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장성한 아들과 딸을 둔 그 분은 '어떻게 해야 잘 키우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타고 태어나는 거야

라고 아주 간단하게 첫마디를 꺼내셨다. 그리고는 그 간의 노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얘기해주셨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처럼 입양아를 키우는 엄마들은 '유전적 영향은 얼마일까?'라는 참 궁금해진다. 타고 태어난 것이 있다면 내 노력으로 아이가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입양아를 키우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엄마들 맘 속엔 극단적으로 '우리 아이 바보일까? 천재일까?'라는 생각이 있다. 어느 날은 아무리 말해줘도 모르는 바보 같다가 어느 날은 가르쳐주지 않은 것도 알고 있으니 천재같기도 하다.

이럴 때 엄마 마음과 생각은 널을 뛰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끊임 없이 중심을 잘 잡으라는 충고도 한다.

그러나 엄마가 되어 보면 안다.

그 중심잡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나는 중심잡은 이야기 보단 아이를 키우며 고민했던 이야기 그리고 입양아에서 영재를 오간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그 동안 '엄마'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이도 다르고 아이도 다르고 사는 지역도 다르지만 '엄마'라는 공감대로 만날 수 있는 인연들은 참 소중하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으로 다른 아이를 키우고 있겠지만 같은 '엄마'로서 하나의 접점이 생기게 된다면 엄마로서 덜 외롭고 또 힘이 나지 않을까 싶다.


엄마로서 살아온 6년, 엄마로서 살아갈 시간이 더 많이 남았지만 아마도 그래서 이 글을 남기고 싶다. 앞으로 엄마로서 살아갈 날에 지금까지 기록이 날 다독여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