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세까지의 기록
36개월까지 꼭 엄마가 끼고 키워야 '애착'형성이 잘 될까?
아이를 키우면서 각 길목마다 부딪히는 고민과 갈등이 있는데 전 회의 주제였던 '모유냐, 분유냐'처럼 아이를 언제 기관에 보내느냐도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된다.
워킹맘으로 육아휴직을 했다면 아이를 출산하고 1년 후에는 어린이집을 찾거나 아니면 도우미를 구하거나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장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
워킹맘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자기 일'을 찾거나 돈 버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들도 많기에 언제 기관에 맡기느냐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모두 고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꼭 엄마의 상황만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서라도 언제 기관에 보내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측면도 있다.
이런 고민의 근거가 되는 이론도 있는데 '아이가 36개월이 되는 즉 만 3세까지는 엄마(주양육자)와 애착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때 형성된 애착이 성인이 된 후에도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이론의 근거가 '입양아'에게도 영향이 미친다.
'입양 특례법'이 생기기 전에는 입양의 시기가 아이가 태어난 후 바로 가능했다. 생모가 출산한 후에 입양을 한다고 하면 입양 부모가 바로 출생신고를 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입양 특례법이 생긴 이후에는 양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는 시기가 늦어졌다.
입양 특례법의 입양 절차를 보면 '입양 숙려기간'이 있다. 입양 숙려기간이란 아이를 출산한 후 7일 동안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입양을 보낼지 말지 결정하는 기간이다. 그리고 그 기간이 지나면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데 이때 아이는 생모가 출생신고를 해야만 한다.
전에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도 입양할 수 있었다면 현재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는 입양할 수 없다. 그렇게 아이가 입양 대상자가 된 후에 입양부모는 법원에 서류를 구비해서 재판을 청구해야 한다.
당연히 재판을 청구하고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더 걸리기도 한다.
이런 절차가 입양부모와 아이의 애착 형성의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물론 이에 대한 대책이 없는 건 아니다. 입양 부모가 입양대상 아이를 미리 위탁모의 자격으로 키울 수 있다. 나도 그런 기간을 거쳤다. 그런데 문제는 간혹 재판에서 입양 허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아이와 부모에게는 참 난감한 상황이 된다.
내가 위탁모 자격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던 건 생후 50일부터였고 그 이후 26개월에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러나 나는 36개월까지 기관에 보내지 않고 꼭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아니고 26개월에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결정하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다.
아이가 7개월쯤 되었을 때 정말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뭐가 더 특별히 힘들거나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처음 접하는 육아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이도 많은 내가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서 어린이집 대기를 신청했다. 그때는 3월에 어린이집이 새 학기가 시작한다는 것도 몰랐고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로 국공립어린이집이 좋다는 소리에 대기를 넣었고 입양아는 2순위는 된다는 기준을 보고 입양아 증명 서류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이집에서 연락은 오지 않았고 그렇게 돌이 지났다.
그 즘에 '시간제 보육'이란 제도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가정 보육을 하는 아이들도 필요한 경우에는 시간제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서비스였다.
당장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는 나는 고양이 손을 빌리는 심정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론과 현실이 다른 문제가 있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맡긴다는 이론은 좋았지만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은 아직 어린아이가 '시간제 보육'에 가서 잘 있느냐? 는 것이었다.
어린이집에 처음 갈 때도 아이들의 적응 기간이나 방법이 중요한데 가끔 필요할 때 맡기는 시간제 보육에서 아이가 얼마나 잘 있느냐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시간제 보육도 적응을 생각해서 처음에는 2시간씩 한 달간 거의 매일 맡겼고 아이가 적응이 되었다 싶을 때는 필요할 때 맡길 수 있게 되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니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아이를 꼭 어디에 맡기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했던 나에게도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이 생겼는데 그건 바로 아버지가 위중해져서 입원하시게 되었을 때였다.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은 아버지를 돌보려면 아이를 어딘가에 맡겨야만 했다.
다행히 시간제 보육에 아이가 잘 적응해서 긴 시간 아이를 맡기고 병간호를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입원하기 몇 달 전, 이런 앞날을 모르고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었는데도 아직은 아이가 어리니 시간제 보육을 활용해서 더 데리고 있기로 했었는데 막상 아버지가 위독해지시니 그 결정이 후회되기도 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인간이 앞일을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아이를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때 엄마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 또한 아버지의 병간호를 포기하고 아이를 돌보는 선택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으로 가고 있는 아버지를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아이도 또한 애착형성에 중요하다는 시기가 아닌가.
부모와 자식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잔인한 선택 앞에 놓인 셈이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아버지를 선택했고 아이는 시간제 보육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 때 아이를 2순위로 생각했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미안함이 꽤 오래 갔던 것 같다.
그래서 아침이면 아이를 시간제 보육에 데려다 놓고 아버지 병원으로 향했고 저녁 때는 병원에서 나와 아이를 찾으러 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는 한 달 정도 입원 후에 돌아가셨고 나는 다시 아이를 돌보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병환과 별세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방치했던 몇 달 때문에 스스로 죄책감을 느껴 한동안 시간제 보육도 보내지 않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상실로 마음이 너무 아팠던 나는 어떻게 아이를 돌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늘 이중적인 메시지에 놓이는 것 같다.
36개월까지 엄마가 끼고 키워야 애착형성이 잘 된다는 메시지가 있다면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다른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한다면 36개월까지 아이를 꼭 엄마가 키우라는 얘기는 남의 도움을 받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남의 도움을 받더라도 엄마가 아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초반에 아이를 키우는 36개월은 아이에게만 애착형성이 중요한 시기가 아니라 엄마도 아이의 육아에 적응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가 뭐라 해도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된다. 어제는 없던 아이가 오늘 내 앞에서 24시간을 버티고 있다. 그렇게 벌어지는 매일의 일상은 아이가 없던 시절에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의 일들이 된다. 그런 엄마에게 36개월의 시간이란 '엄마가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는 처음 36개월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에게만이 아니다. 엄마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지금까지 36개월이 앞으로 36년 그 이상, 엄마로 살아갈 날의 소중한 바탕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36개월 동안 꼭 엄마가 끼고 키워야 하고 또 그러지 못한 경우 아이의 인생에 내가 큰 실수를 한 것만 같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엄마도 자라고 아이도 자라면서 늘 우리 앞에는 다른 과제가 놓이게 되므로 현재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이와 엄마의 애착 형성, 그 본질이 아닐까. 36개월만 엄마가 아니라 우리는 쭉 엄마일테니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여전히 나에게는 아버지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