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엄마는 '한끼'를 굶기로 했다

0~7세까지의 기록

by 북도슨트 임리나
결국 엄마는 '한끼'를 굶기로 했다

내 아이가 입양아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황인데 그래도 새로 만난 사람들은 모르니 그 사람들에게 나는 언제쯤 입양을 말해야 하나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한번 만나고 스쳐갈 사람에게는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번 만나면서 친분이 쌓이게 되면 '입양'에 대한 커밍아웃을 하게 되는데 그 때 반응은 거의 똑같다.


대단하다. 내 아이도 키우기 힘든데....


물론 나도 상대방 입장이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내 아이도 키우기 힘든데....(남의 아이를)이라는 괄호안의 말이 생략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말에는 내 아이, 남의 아이 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희생이 필요한데 그것도 자기 아이가 아닌 이상 그 '희생'이 더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이 된다.


만약에 나에게 저렇게 말한다면 내 대답도 정해져 있다.


애 키우는 건 다 힘들어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아동 학대'의 뉴스를 보면 어떻게 아이를 학대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고 저런 사람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를 키우면서 오히려 '아동 학대' 뉴스가 이해가 간다. 아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졸려 죽겠는데 깨어 밤중 수유를 할 때, 밥 한 숟가락 떴는데 아이가 똥을 쌌을 때, 갑자기 이유 없는 울음이 그쳐지지 않을 때 아동학대 뉴스의 부모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그렇게 되면 안된다고 정신 줄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우리 부부가 서로 농담처럼 얘기하는 게 있는데

'우린 조심해야 돼, 잘못하면 뉴스에 나올 수 있어.' 라는 것이다.

친부모가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입양 부모가 학대하면 뉴스에 나오기 쉬우니까 말이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아이를 키우는 게 더 힘들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낳은 아이가 있었다면 비교해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로지 입양한 아이밖에 없으니 어떤 아이가 더 힘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여러 번 생각해보지만 내가 낳은 아이라도 지금처럼 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육아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예를 들면, 잘 키워야지)한다고 해도 그 의도보다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대응으로 점철되기 때문에 자신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희생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참 많다.

정말 리얼한 요리 장난감, 먹고 싶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내 일까지 하려면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별 일이 없으면 아이를 아침에 보내고 아침을 먹지 않고 일단 내 일을 시작한다. 이렇게 아침을 거르고 아이가 오기 1시간 전쯤 점심을 먹는다.

그렇게 해야 시간을 좀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육아란 희생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론 아이만 돌보지 말고 자신도 찾으란 말이 좋은 말인지 알면서도 때로는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 그러려면 또 무엇인가를 더 희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며 버린 것이 '한 끼' 뿐이랴.

이런 희생을 하면서도 아이한테 기대감을 갖지 않아야 좋은 엄마라고 하니 내 아이가 바보일까, 천재일까 하는 사소한 의구심마저 버려야 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