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세까지의 기록
모유수유 꼭 해야 하나?
아이를 처음 만났던 생후 30일, 그리고 아이를 데려 오기까지 약 20일 동안 아기 용품 구매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임신부터 출산까지 약 10여 개월은 입덧도 하고 태교도 하고 태교 여행도 가고 출산 용품도 쇼핑한다지만 나에게 그런 시간은 생략되고 오로지 20여 일 동안의 당장 아기에게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게 출산 준비(?)의 전부였다. 육아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 게 분유, 기저귀 등이었는데 이미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여동생이 욕조와 겉싸개, 속싸개를 알려주고 사줘서 아주 대강의 육아용품이 마련되었다.
아마 출산을 한 엄마라면 출산의 방식으로 제왕절개냐 자연분만이냐의 선택을 고민했을 것이고 모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모유냐 분유냐도 선택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선택이 아니라 당연히 자연분만이 좋고 모유수유가 좋으니 처음에는 시도하려 했을 것이다.
주위에서도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시댁과의 갈등이 있는 경우도 흔히 보았다.
그러나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생모가 제왕절개로 낳았다는 보고서를 보았지만 내가 낳은 게 아니니 그저 건강하게 낳아준 게 감사할 뿐이었고 모유를 당연히 선택할 수 없으니 분유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모유에 대한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모유 은행이란 곳이 있어서 모유를 먹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모유를 제공하는 곳이 있었고 또 맘 카페에서는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모유가 남으니 드리겠다는 글도 종종 있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후 남은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모유를 먹일 것인가? 아니면 분유를 먹일 것인가?
솔직히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고 또 엄마도 좀 편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유를 신청하는 것, 받는 것, 보관하는 것 해동해서 먹이는 것 등등 그 절차도 간단하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나는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고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고 나는 심지어 분유를 타는 것도 귀찮다고 액상 분유를 먹였다.
액상 분유란 음료수처럼 판매하는 것으로 뚜껑을 젖꼭지로 교체해서 먹이게 만들어진 것으로 아주 편리했다. 그리고 아이가 4개월부터 나는 아이를 데리고 매일 외출을 했고 7개월엔 해외여행을 갔었는데 이때 액상 분유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물론 모유수유가 외출이나 여행에 더 편한 것도 인정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4개월짜리 아이를 데리고 탈북했다는 여성이 이야기를 보며 어떻게 4개월짜리를 데리고 긴 여정의 탈북을 했을까? 궁금했는데 모유 수유를 했다고 그럼 탈북이 가능했으리라는 게 짐작이 되었다.
그러나 모유수유가 불가능한 경우라면 일단 아이가 잘 먹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굶주린 아이들이 나온다. 그 아이들을 보면 엄마가 없거나 아니면 저런 아이의 엄마들 모유가 과연 잘 나올까? 의심스럽다.
그런 아이들에겐 빨리 분유라도 먹이는 게 시급해 보인다.
극단적인 에이기는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물질적으로 풍요한 곳에 산다고 하더라도 젖몸살을 앓으면서도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 거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엄마들도 많이 있다.
심지어 모유가 잘 나오게 한다는 마사지, 모유가 잘 나오게 한다는 한약, 음식 등등을 챙겨가며 모유를 먹이기 위해 돈과 에너지를 쏟기도 한다.
지금 아이가 7살이 되고 보니 어떤 엄마도 아이를 모유를 먹여 키웠는지 분유를 먹여 키웠는지 묻지 않는다. 그리고 누가 모유를 먹이든 분유를 먹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모유 수유의 만능 신화 속에서 대놓고 모유를 먹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모유를 먹일 수 없었던 입양아 엄마로서 말한다면 모유냐 분유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잘 먹고 잘 자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잘 안 나오는 모유를 먹이기 위해 엄마만이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도 못 먹어서 고생한다면 분유 또한 아이를 키우는 또 하나의 방법이란 것을 얘기하고 싶다.
어찌 보면 입양이란 것도 가정을 가질 수 없는 아이에게 다른 가정을 제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모유 하나가 내 아이가 바보와 천재의 갈림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