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암
죽음은 나와 가까운 일상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잊고 지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더 이상 죽음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얘기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죽음을 가장 가깝게 경험했던 때는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였다.
그 이유였을 것이다. ‘죽음=암'이란 공식이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암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 곧 죽는 건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오히려 그 생각 때문에 내가 남은 시간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니 마음이 바빠져서 의외로 담담해졌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니 슬퍼할 시간조차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아마 대장 수면내시경을 할 때 의사에게 불려 가서 심각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남편도 나처럼 나의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나중에 시누이에게 들은 얘기지만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고 울고불고했다고 했다.
물론 내 앞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중에 내가 봤을 때도 종양의 크기는 꽤 컸다.
도대체 어떻게 하다 저런 종양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 종양이 장을 막아 장폐쇄로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지금 살아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운이 좋았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혹시 내가 그동안 착하게 살아서 신이 날 예뻐해 줬거나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평생의 행운을 지금 다 쓴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4.16 소화기외과, 소화기 내과 진료
4.25 검진 및 ct 촬영
5.6 대장내시경
5.21 직장암 진단
5. 22 아산병원 진료
6.2 검사 입원
6.11 수술 입원
6.12 수술
6.15 수술 후 복수가 차서 응급처치
6.21 아산 병원 퇴원, 요양병원 입원
7.6항암치료 여부 진료(항암치료 필요 없다고 들음)
7.25 요양병원 퇴원
더구나 나의 병기는 수술 전에는 림프절 전이가 의심되어 3기였으나 수술 후 2 기초로 진단을 받으며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내 행운을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병원에서 많은 암환자들의 고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암환자들 속에서 나는 다소 심각하지 않은 환자 측에 속했다.
그래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며 자꾸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와주고 챙겨주었는데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그들은 나에게 미안해하며
"너도 환잔데....."
라고 했다.
암에 걸린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다 사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된다.
아버지의 암을 겪었을 때는 오로지 아버지만 보고 있어서 암의 고통스러움과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을 보며 암이 무섭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암에 걸려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되니 '암'의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암'에 대해서 잘 모를 때는 '암에 걸렸다'라고 말하지만 암에 걸리고 난 후에는 누군가 '암'이라고 하면 무슨 암인지 궁금해지고 또 몇 기인지 수술은 했는지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는 하는지 구체적으로 궁금해졌다.
일단 신체 어느 부위에 생긴 암인지에 따라 징후가 아주 다르고 수술이 불가한 암도 있고 항암치료가 불가한 암도 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의 사인이었던 폐암은 아주 늦게 발견되는 암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겪은 직장암은 수술로 제거가 쉬운 암이라고 한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수술이 가능한 경우 불가능한 경우, 항암치료가 짧은 경우 긴 경우, 재발이 많은 경우, 전이가 쉬운 경우 등등.
같은 암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겪는 자기만의 암은 자기만의 고통으로 생각될 정도로 각자의 고난을 겪게 된다. 그런 다양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 어떤 사람은 죽게 되고 어떤 사람은 살게 된다.
나는 죽음에 가까이 갔던 사람들이 '이제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걸 들으며 어차피 살아 있는 건 똑같은데 왜 그런 표현을 할까 싶다.
그런데 내가 막상 겪고 보니 살아 있는 지금이 현실이 아니라 나는 이미 죽었고 그 죽은 내가 삶이 계속되는 꿈을 꾸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만큼 암에 걸려 치료하던 그 시간 동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살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변함없는 일상이 너무 신기하고 소중해서 현실이 맞는지 내 볼을 꼬집어 보고 싶을 때도 많다.
만약 꿈이라면 깨지 않게 해달라고 맘 속으로 기도하며 살아가고 싶고 진짜 내가 살아 있는 거라면 더 삶을 누리겠다는 다짐을 한다.
암에 걸리면 다 죽는 건 아니지만 죽음과 가까워지는 경험은 꼭 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남은 인생이 덤이란 생각이 들어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게 아닐까.
이 글을 쓰는 토요일 아침, 아이가 뭐가 즐거운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다소 시끄럽다. 그러나 이런 불평스런 마음도 살아서 느끼는 것이니 감사하기만 하다.
암의 얼굴로 다가온 ‘죽음’이 나에겐 ‘삶’의 소중함을 알려주니 이 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