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암
암진단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어떤 감정이 들까?
나의 경우는 일단 '놀라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찾아온 건 의외로 '죄책감'이었다.
이 죄책감은 여러 가지였는데
'내가 뭘 잘못해서 병에 걸렸을까?'
'왜 진작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
'건강검진을 왜 미뤘을까?'
'건강 관리를 왜 안했을까?'
'왜 운동을 안했을까?'
'왜 고기를 많이 먹었을까?'
끝도 없어서 진짜 굴을 파고 들어가 앉아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일단은 치료가 먼저이니 치료부터 받자고 생각하면서도 할 일이 많은데 병원에 누워 있는 죄책감, 가족한테 미안한 죄책감,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죄책감.....
치료를 받으면서도 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 발생하면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실제 원인이 결과를 만드는 논리적인 작업처럼 보이지만 원인을 알아야 안심할 수 있는 심리적인 이유가 크다.
그래서 남 탓을 하는 것도 실제 원인을 찾아서라기 보다는 마음 편하기 위한 원인 찾기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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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사에게 원인을 물어본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인 이 저자분도 원인은 밝히기가 어렵고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항간에 퍼져 있는 암예방에 관한 얘기들을 부지불식간에 듣고 있다.
예를 들면 자연분만하고 모유수유하면 유방암이나 자궁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도 정말 수도 없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 반대로 암에 걸리는 이유로 담배를 피면 폐암, 고기를 많이 먹으면 대장암 등등.
마치 일반 상식처럼 퍼져 있는데 실제 암환자들을 보면 이런 속설들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내가 요양병원에서 만난 유방암환자들은 대부분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한 사람들이었다.
왜냐면 나는 출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궁암이나 유방암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많은 유방암 환자들과 대화하면서 또 그들을 관찰하면서 어떤 이유로 유방암이 걸렸다고 하기에는 유의미한 원인들이 없었다.
또 증상도 마찬가지이다. 증상이 심하면(통증이 심하면) 암이 많이 진행된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증상이 심해도 초기일 수 있으며 증상이 없어도 말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암에 대해서 몰랐을 때는 '아주 많이 아프다'라고만 생각해서 내가 그렇게 많이 아픈 게 아닌데 암이 걸렸을 리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주된 증상이 혈변이 있었을 뿐 딱히 못움직일 정도로 드러누워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만약에 긍정적인 사람이 암에 안 걸리다고 한다면 나 또한 그에 못지 않은 긍정적인 사람이고 나보다 몇 배는 더 긍정적인 사람도 요양병원에 있었고 운동을 하면 암에 안 걸린다고 한다면 몇십년을 몸을 관리하며 요가 강사를 하던 사람도 암에 걸리고 두 명의 아이를 자연분만하고 모유수유를 한 엄마가 유방암에 걸리고 유기농만 먹은 사람도 위암에 걸리고.....등등.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아니면 상업적인 이유인지 말도 안되는 암의 원인들이 너무 많이 퍼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 의학적으로 암의 원인을 밝혀 놓은 것도 없고 그야 말로 '랜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암에 걸리는 원인도 모르고 예방도 불가능하다면 너무 공포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의 앞날을 모르는 것은 단순히 암만이 아니다. 많은 일들이 '랜덤'이고 우리는 앞날을 모른다.
단지 내가 생각한 유의미한 원인은 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나의 경우는 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셨고 친가쪽 어른들이 대부분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진표에는 가족 중에 암의 이력이 얼마나 있는지 기입하는 란이 꼭 있었다.
이렇게 되면 부모님이 암에 걸리셨다면 본인도 그 가능성을 생각해 볼만한 것 같다.
요즘 코로나 사태를 보며 드는 생각은 마치 코로가 '나쁜 짓'을 하면 걸리는 병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지 말라는 곳에 가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면 코로나에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 중에는 성실히 사회생활한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냥 일상생활 했는데 코로나에 걸렸어요.'라고 하는 건 기사회되기 어렵고 사람들에게 회자되지 않는다.
바이러스라는 게 꼭 선인과 악인을 구별해서 악인에게 더 센 전파력을 가진 게 아니다.
누구라도 운이 나쁘면 걸릴 수 있는 것처럼 암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조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다고 안 걸리지 않기에 걸리고 났을 때 죄책감보단 치료에 집중하자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본 많은 암환자들은 '암에 걸릴 만한 원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사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엄마로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던 사람들이었다.
인성과 병은 무관한데 혹시 동일시 해서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는 건 아닌지.
유명유죄 무병무죄는 아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암에 걸려 마땅한 사람은 없다.
나도 누구도.
그러니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고 치료에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