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암
수술 후 두 달도 더 흘렀다.
이젠 수술에 대한 기억이 아련해서 심지어 내가 수술을 한 게 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암수술'이란 것만으로도 걱정이 많이 되고 두려웠다.
더구나 의사는 입원해 봐야 언제 수술할지 얼마나 수술할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처음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입원 날짜'뿐이었다.
그 때는 검사를 입원해서 하라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검사인데 왜 입원을 하지? 그냥 하루만에 안되는 건가?' 싶었는데 막상 입원해서 온갖 검사를 받고 보니 수술을 위해 검사가 얼마나 종류가 많고 힘든지도 알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검사를 했는지 일일히 기억나지 않지만 MRI 검사만 해도 50분을 했는데 50분 동안 꼼짝도 않고 누워서 기계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너무 괴로웠다. 이제 검사가 끝났으니 퇴원하라고 하는 날에도 마지막까지 항문기능검사를 받았는데 검사하는 분한테 검사에 협조적이지 않다는 핀잔도 들어야 했다.
내가 '무서워요'라고 얘기하니 '아프지도 않은데 뭐가 무서워요?'라는 그 분의 말에 살짝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픈 나를 자책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가 검사를 받던 때였던 것 같다.
"그래, 누가 아파서 이렇게 힘든 검사를 받으래....."
이런 생각을 속으로 수도 없이 많이 했다
그렇게 입원 검사가 끝나고 수술은 수술이고 당장의 검사가 끝나서 퇴원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나를 데리러 온 남편을 만나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병실 입구에 서 있던 '채송화'같은 의사를 만났다.
"마침 잘 만났네요."
라고 첫마디를 꺼내고는 나의 수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수술할 의사가 찾아올 거라는 얘기를 못들었기에 '깜짝 방문'같은 느낌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 때 '채송화' 의사는 나의 상태에 대해서 꽤 긍정적인 얘기를 해주어서 남편과 나는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뻤던 말은 수술할 때까지 '잘 먹으라'라는 말이었는데 여기서 '잘 먹으라'는 것은 몸에 좋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라는 것보다는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맘껏 먹으라'라는 뜻이었는데 막상 입원을 하고 보니 그 말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른다.
나는 장을 수술해야했기에 수술 전후 금식 기간이 너무 길었다. 그리고 금식의 의미에는 '물도 먹으면 안되는'것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모른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죽과 다진 야채 고기 등만 먹었던지라 수술 전에 잘 먹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수술 당일에는 생각보다는 담담했다.
그리고 나는 수술장에도 가족이 아닌 간병사와 둘이 갔었다.
애를 보고 있는 남편을 부르자니 애를 맡길 데가 없어서 그냥 간병사와 함께 가기로 했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수술실에 들어가며 가족끼리 애틋한 인사를 주고 받는 그런 장면은 전혀 연출되지 않았다.
내가 수술을 하러 들어갈 때는 침대에 실려간 것도 아니고 휠체어에 앉아서 갔으며 함께 왔던 간병사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혼자 수술대기실에 들어섰다.
수술 직전에 체온을 쟀는데 높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긴장되는 시간이 지나고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수술실이 생각보다 크고 공장처럼 기계가 많아서 놀랐다.
내 발로 수술대에 올라갔고 수술대에 몸이 고정되고 마취가 시작되고 그 후 나는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정말 아팠다.
회복실에는 나 말고도 몇 명이 더 있었는데 다들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 때 들었던 얘기는 아플 때는 심호흡을 하라는 것이었는데 그 후로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조금씩 덜 아파지기 시작했지만 처음 2-3일은 진통제를 몇 종류는 맞았던 것 같다.
금식이 끝나고 미음을 먹고 죽을 먹게 된 날이니 수술 후 4일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회복이 빨라서 낼모레 퇴원하라는 얘기까지 나오던 그 때, 점심을 먹고 잠이 와서 누웠는데 39도 고열이 올랐다.
그 이후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달려왔고 혈액검사를 했고 CT도 찍었던 것 같고 거의 나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정신을 차리게 된 건 처치대에 엎드려 있게 된 때였다.
의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000님. 채송화 교수님이 특별히 부탁해서 제가 해드리는 겁니다. 저는 000과 000입니다."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것보다는 좀 길게 말했던 것 같다.
그 때는 나는 죽겠는데 빨리 치료 좀 해주지 왜 저런 얘기를 할까 싶었는데
무언가 처치를 하려던 의사는 왜 소변을 안비우고 왔냐며 죽어가는 나를 일으켜서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했다.
그 때 화장실은 왜 그렇게 먼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나는 의식이 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의사는 내 엉덩이에서 관을 꽂아 아마도 복수를 뺐던 것 같은데 그 처치로 인해 나는 열도 내리고 살아났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 때 죽을 뻔 했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 나는 수혈도 받았고 다시 금식을 했고 조금이라도 열이 나면 간호사와 의사들이 달려왔다.
그리고 입원기간이 짧기로 유명한 그 병원에서 12일을 입원했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있다가 나는 간병사에게 그 때 상황을 얘기했다.
"그 때 그 의사선생님이 우리 교수님이 특별히 부탁해서 한 거라 그랬어요. 난 아파 죽겠는데 말을 길게 해서 힘들었어요."라고 얘기하니 간병사가 선생님 오시면 한번 얘기해보라고 했다.
나는 또 그리고 잊어버렸는데 간병사가 교수님이 아니라 그 밑에 내 담당의사가 내가 걱정되서 자주 와서 들여다보니 친해져서 그 때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 의사 말이
"그 분이 퇴근해서 집에 있다가 우리 교수님이 전화해서 특별히 오신 거에요. 그래서 아마 본인이 힘들 게 온 걸 어필하고 싶었을 거에요."
그제서야 나는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채송화가 김준완을 특별히 부른 것이다.(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본 분들이라면 이 한 마디로 이해가 될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채송화는 정말 훌륭한 의사다.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도 따뜻하고 또 일처리도 잘해서 항상 위기의 상황에서 환자를 구한다.
교수님은 나에겐 정말 채송화 같은 분이었는데 그 때 그 처치를 안했다면 나는 재수술을 하고 임시장루를 달았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무슨 상황인지 여기 저기 찾아보고 생각해보니 수술 후에 복수가 찬 상태이고 그 때는 재수술을 해서 복수를 빼고 임시장루를 다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리고 요양병원에서 만난 Y는 퇴원 후에 복수가 차서 응금실에 가서 재입원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때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지나고보니 퇴원한 상태가 이닌 입원 중에 열이 오르고 복수가 찬 것도 다행이었고 나의 채송화 교수님이 김준완 교수를 불러 특별 처치를 해 준 덕분에 나는 재수술을 하지않고 처치만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퇴원을 하고 암요양전문병원에 가게 되었다.
참 신기하게도 의사에게 감사하고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는 게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나에게도 일어났다.
본명은 다르지만 채송화 교수님은 나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의사선생님이 되었고 그리고 채송화 교수님 부탁으로 나왔던 김준완 교수님(드라마를 본 분은 알겠지만 솜씨는 좋은데 성격이 까칠한 의사다^^)에게도 나는 칭찬카드를 써드렸다
그 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정말 의사는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존경하고 감사한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