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약사에게 수술은 의사에게 암은 암환자에게

너도 암?

by 북도슨트 임리나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라는 말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아프고 보니 이 당연한 말이 왜 표어까지 됐는지를 알 수 있었다.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받게 되는 암선고, 준비라고는 보험을 들었다면 다행인 거고 주변에서 암에 걸린 사람을 봐도 심지어 부모님이 암에 걸려 돌아가신 경험이 있었어도 암에 걸린 후에 어떻게 되는지 앞으로 자신이 뭘 해야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입원해서 검사하라니 검사하고 수술해야 한대서 수술하니 수술 끝났다고 퇴원하라고 해서 퇴원했을 뿐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프기도 했지만 이 아픔이 언제까지 가는 건지, 언제 밥을 먹어도 되는지 왜 두통이 오는지 왜 불면증이 생기는지 등등.

이런 개인적이고 사소한 증상들을 어디 해결할 곳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도움이 되는 사람은 '환자선배'였다.

먼저 나와 비슷한 병을 앓았던 사람들이 말이 가장 신뢰가 되었고 도움이 되었다.




h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암전문요양병원의 '고참'이었다.

'고참'이란 표현이 다소 부정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긍정적인 의미의 고참이었다.

h는 내가 입원했을 때 항암과 방사선치료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암전문요양병원에서 5개월 넘게 입원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h에게 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설명을 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h에게 사람들이 자문을 구하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는 이유만이 아니었다.

h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습득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h는 유방암 환자였는데 유방암 카페의 글을 모두 읽었다고 한다.

암환자라면 자신의 병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부할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리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면에서 h가 그 글을 다 읽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고 그래서 더욱 궁금한 것이라면 직접 인터넷을 찾기 보다는 h에게 물어보면 더 빠르고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항암치료를 하게 되면 손톱발톱이 약해지니 손발톱 영양제도 발라야 하고 구내염이 걸리기 쉽다니 칫솔도 치약도 바꿔야 하고 또 음식도 조심해야 하니 뭘 먹으면 되고 안되고 등등, 각종 궁금한 것을 하루에도 몇번씩 h에게 묻는 일이 생겼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본인이 다니고 있는 병원에 대한 의사선생님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어서 환자들에게 추천을 해주기도 했는데 다들 h의 추천에 만족했다.

그 때 생각한 것이지만 환자에겐 의사를 고를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의사는 자신에게 온 환자는 무조건 진료를 해야 하니 환자보다 선택권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는 여러 가지 h에게 묻고 도움을 받았지만 그 중에도 보험사에 대한 대응이었는데 보험회사에서 당연히 지불해야할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서 전화를 하기 전에 h에게 물어봤었다. 덕분에 보험을 지급받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h도 처음부터 박학다식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4살의 딸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돌보며 5차까지 집에서 항암치료를 하고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암전문요양병원을 알아보다가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 2주일만 있어보려고 왔다가 보험이 된다는 걸 알고는 더 있게 된 경우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병원에 있던 환자들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런 h도 1년가까이의 긴 치료를 마치고 퇴원을 준비하고 있다. 퇴원이 기쁜 일임에도 h의 퇴원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쉽게만 느껴진다.



'약은 약사에게, 수술은 의사에게, 암은 암환자에게'

라는 말은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농담처럼 한 말이었는데 사람들은 참 이말을 재미있어 했다.

내가 이 말을 한 이유는 약사나 의사를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해주는 일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수술'과 '약처방'으로 요약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데 그 나머지는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나의 경우는 수술이 끝난 후 잦은 배변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언제까지 계속되는지 나아지는 건지 너무 궁금했다. 의사의 말로는 6개월 후면 좋아질 거라 하는데 수술 후 한달이 지나는 것도 길게만 느껴지는데 6개월이라니 전혀 와닿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같은 병원에 있는 직장암 선배를 찾아갔다. 그 선배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그 분은 방사선과 함앙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나는 수술로만 끝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도 받지 않으니 선뜻 물어보기가 미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지금 필요한 사람은 그 분이란 생각이 들었고 다소 뻔뻔하게 찾아가서 상담을 좀 하고 싶다고 했다.

역시 내가 가장 신뢰가 되면서도 위안을 받은 것은 그 분과의 대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대장암(직장암)의 경우 고기를 많이 먹어서 걸린다고 하는데 그 분은 김치만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된 증상인 혈변도 조금 나왔다고 하는데 3기였다고 한다.

나는 고기만 먹는 게 아니라 뭐든 잘 먹는 사람이었고 다소 운동이 부족하기도 했고 혈변이 심했으나 2기초였다.


내가 겪어보고 주위의 암환자들을 봤을 때 '이렇게 하면 암에 걸린다'라는 말은 대부분 틀린 말이었으며 이렇게 하면 암에 걸린다는 것은 없었다.

또 증상이 심하다고 병이 깊거나 증상이 약하다고 병이 약하지 않았다.

암에 걸리면 살이 빠진다고 하는데 체중 변화가 없어도 암에 걸리기도 했다.

암은 그냥 어느 날 갑지가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아마 내가 다른 환자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원인으로 자책을 했을지 모르지만 운동을 많이 한 사람도 긍정적인 사람도 암에 걸리는 걸 보면 '암 예방'이란 것은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암에 걸린 후의 대처가 더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말 이렇게 자주 화장실 가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거냐고 그 분에게 묻고 그 분이 나아진다는 대답을 듣자 나는 정말 안심이 되었다.

요양병원에 있는 동안은 바로 약처방도 받을 수 있고 의사 진료도 받을 수 있었는데 막상 퇴원을 해서 몸 상태가 안좋아지면 어떨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그 분의 말을 듣고 나는 안심하고 퇴원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환자의 입장이 되면 짧은 치료 시간 외에 견디어야 하는 나머지 긴 시간의 고통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 되고 만다.

그럴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도움이 가족에게서 받을 수도 있지만 자신과 비슷한 입장의 환자에게서 도움도 받고 위안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경험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h가 그랬다.

항암치료 때분에 머리가 다 빠지고나서 집에서는 아이가 놀랄까봐 비니를 꼭 쓰고 생활했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엄마의 머리카락을 가지가 미장원 놀이를 하는 아이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진 것이 너무 걱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4살 아이는 엄마의 비니에 절대 손대지 않고 온갖 머리핀을 머리카락에 꼽는 대신에 엄마의 옷에 꼽아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한테 예쁘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앞에서도 민머리를 보일 수 없었던 h는 병원에선 민머리로 돌아다니 수 있어서 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을 숨기지 않아도 되서 좋다고 했다.


암환자로서 가족에게도 말 못할 괴로움과 고통이 있다. 그럴 때 같은 환자끼리 공감하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알기에 '암은 암환자에게'라는 나의 유머스런 표현에 다들 많이 웃어주었던 것 같다.


이제 5살이 된 딸에게 돌아가는 h. 병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더 씩씩하고 똑똑하게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h와의 재회를 설레는 맘으로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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