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암?
한가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주말에는 항암이나 방사선치료가 없어서 환자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는 주로 외래 시간인 평일에 하기 때문에 외래진료가 없는 주말에는 의사도 쉬고 환자도 쉴 수 있다
특히 방사선치료는 월~금 매일 통원하는 스케줄이기 때문에 정말 학교에 등교하듯 회사에 출근하듯 다녀야 한다
짧게는 1주, 길게는 3주 주기로 하는 항암치료는 집에서 다닐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매일 가야 하는 방사선치료를 하게 되면 통원 그자체의 어려움 때문이라도 병원근처의 요양병원에 입원해서 다니는 게 여러모로 환자가 편하다
이렇게 치료 스케줄 없어 한가한 것과 더불어 한산하다는 건 치료의 스케줄이 없기에 집에 다녀오는 외박이나 외출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평소보다 환자의 수가 적다
마치 집이 멀어 다녀오기 힘든 학생들끼리 기숙사에 남아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수다를 떠는 것처럼 요양병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분위기는 그렇지만 학생들이 아니라 환자이기에 주로 휴식을 취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돈을 걷어 주말 동안 맛있는 것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항암치료 때문에 잘 먹지 못하니까 어떻게든 입맛 도는 음식을 먹어보려는 노력이었다
항암치료를 하게 되면 속이 울렁거려 음식을 못먹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먹지 못해 체력이 떨어지면 항암치료를 못받을 수도 있으니 먹을 수 없어도 먹어야 하는 아주 괴로운 시기를 보내게 된다
전 회에 등장했던 S언니의 경우처럼 항암의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경우도 많고 그 외에도 흔한 부작용 중에 속이 울렁거리는 증세가 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항구토제를 처방해주는데 워낙 증상이 심한 사람이 많아서 두 가지 이상, 심지어 다섯 가지, 그리고도 호전이 되지 않으면 요양병원에서 항구토제를 더 처방받기도 한다
약을 과다복용하는 게 아니냐 걱정할 수도 있지만 워낙 증상이 가라 앉기가 힘들어서인지 가라앉을 수 있다면 약을 몇 가지라도 먹으라고 처방해주는 모양이었다
몸의 모든 세포를 죽인다는 항암치료가 얼마나 약이 독한지 부작용만 봐도 짐작이 된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손발톱이 빠지거나 위염같은 증상들, 근육통, 불면증, 무기력함, 딸꾹질을 하는 등 한 가지만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부작용에 시달린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본인에게 부작용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본 환자들은 강도나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부작용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환자들 사이에서도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 사람이 항암치료를 하는 사람을 더 배려하고 챙기게 된다
수술만 하고 항암치료를 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암환자전문요양병원에서는 멀쩡한 사람축에 속했다 나도 수술 후 몸이 회복된 상태는 아니지만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을 보면 무언가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것저것 챙기게 되었다
나야 그렇다지만 본인도 항암치료를 하면서 다른 환자들을 챙기는 p언니가 있었다
p언니는 정말 손이 커서 회장언니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물을 사도 박스로 사고 복숭아를 사도 박스로 사서 다른 병실 사람들까지 챙겨서 나눠먹도록 했다
그래서 병실엔 늘 먹을 게 넘쳐났고 사람들도 자주 와서 늘 즐거운 분위기의 병실이 되었다
p언니는 정말 동생들을 살뜰히 챙겼는데 누가 무얼하고 있는지 어디를 가는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p언니는 스스로를 챙기지 않았다
자궁경부암인 p언니는 상태가 좋지 않아 꽤 크게 개복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후 집에 가서 살림을 다 했고 이 병원에 입원한 첫날도 티슈로 자꾸만 바닥을 닦아서 우리가 말리기도 했다
개복수술로 배가 아물지 않아 환자복 바지를 입으면 허리 주변이 가렵고 불편한데도 그냥 입고 있길래 불편하면 안입어도 된다고 원피스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또 p언니는 뭔가 불편하고 아파도 자꾸만 괜찮다고 참으며 약도 안먹길래 우리가 다들 참지 말고 약먹으라고 여러 번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 p언니도 점점 변해서 이제는 아프면 간호사에게 얘기해서 약도 타먹는 등 많이 자신을 챙기게 되었다
p언니는 항암치료가 3차까지 진행되는 동안 딱히 부작용이 없어서 p언니 스스로가 잘 먹어서 그런가보다 라고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3차 항암을 하고 나서 두통, 속 울렁거림,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p언니를 보며 다시 한번 항암치료에는 장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유쾌한 웃음도 잃었고 쉼없이 움직이던 대신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으며 손가락을 베며 동생들에게 복숭아를 깎아주던 대신 먹으라고 말만 할 뿐이었다
p언니가 병실에 둘만 있던 조용한 오후에 말을 꺼냈다
나 치료 끝나고 집에 가면 심심할 것 같아 여기서 이렇게 같이 웃고 떠들다가 혼자 있으면 많이 그리울 것 같아 너희들이
p언니는 오십대 중반, 큰 딸이 29살이란다 아이도 다 키우고 젊은 날의 고생스런 시절을 지나 이제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보내고 있다고 한다
비록 암에 걸려 큰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지만 병원에서 동생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우리 퇴원하고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치?
언니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은데 나는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여기 환자들은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고 각자의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 다시 사회로 돌아간다면 아이 키우며 일해야할 바쁜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든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다들 집이 머니까 자주 만나기는 그렇고 시간 맞으면 00가 있는 광주도 가고요, 00가 있는 여수도 가고요....그러면 넘 잼있겠죠?
우리는 자주 꿈꾼다
환자가 아니라 다 치료가 끝나고 밖에서 만나는 모습을...
그때 서로 못 알아보는 거 아니냐고 하하호호 웃는다
그 웃음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나중에 만난지 못하더라도 설사 거리에서 마주쳐 못알아보더라도 건강하게 살아 있다면 우리의 우정은 지켜지고 있는 게 아닐까
p언니가 더 아프지 않고 항암치료를 끝낼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가 어디서 만날지 즐거운 고민을 할 수 있기를....
한가하고 한산한 주말이 지나 월요일 새벽부터 각종 검사와 치료로 외출을 하고 빈 병실에서 혼자 남아 이 글을 쓴다
물론 나도 기력이 없어 글을 마치고 잠을 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