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봄날은 간다>의 영화에서 '라면 먹고 갈래?'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대사를 얘기할 때 여주는 "해봤어요. 한 번."을 떠올리곤 했다.
유지태가 이영애를 처음 만나 당연히 미혼이라고 생각해 '(챙겨주는 사람이 필요하면) 결혼해요. 그럼.'이라고 말하자 이영애는 유지태를 조용하게 한방 먹이듯 '해봤어요. 한번.'이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처음 만난 남자에게 자신이 이혼했다는 걸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마치 새로 나온 베스킨라벤스의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는 말보다 더 감흥이 없는 말투로 말이다.
여주는 그 대사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영애가 무슨 말을 한들 멋있었을 거다. 이혼한 걸 숨기고 '아직 (결혼) 생각이 없어요.'라고 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사람들은 앞뒤가 헷갈린 상태로 어리석은 판단을 한다.
여주는 그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자신이 이혼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혹시라도 이혼을 한다면 꼭 저렇게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할 땐 꼭 얼마 전에 먹은 베스킨라벤스의 새로운 맛이 아주 별로라고 상상하리라고.
사람들은 이혼을 본인이 겪기 전까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다. 심지어 주인공으로 못생긴 이혼녀는 등장하지 않는다. 현실의 이혼이 아닌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판타지 같은 이혼을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심지어 평생 이혼을 경험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로만 접하는 사람도 대다수다.
여주의 엄마도 무당이 되고 난 후 아빠가 떠났다고 했다. 그렇게 가까운 엄마의 이혼마저 여주는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 못했으니까.
연예인이 아닌 이상 이혼 후에 세상에 공표하는 절차가 없다.
그러니 여주는 늘 자신의 상태를 어떤 사람에게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잘 지냈어?'라고 물을 때 '아니. 나 이혼했어.'라고 대뜸 말하는 것도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잘 지내.'라고 답하면 영영 그 길로 이혼이란 말을 꺼내기 어려워지곤 했다.
남자들을 만날 때도 그랬다.
여주의 나이대라면 이미 '기혼자'라고 생각해서 미혼인지 기혼인지 묻지 않는 것이 예의가 되었다. '결혼했어요?'라고 묻는 것도 상대방이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일 때까지였다.
그러다 보니 아주 사적인 관계가 되기 전까지 먼저 '전 이혼녀예요.'라고 말하는 거나 '저 결혼 안 했어요.'라고 고 말하는 거나 둘 다 자연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얘기는 여주가 영화나 드라마 속 '이혼녀'가 아닌 현실의 '이혼녀'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했다. 시어머니가 준 전셋집이 있고 약간의 저축이 있어서 몇 달은 버티겠지만 그 후로는 대책이 없었다.
물론 어렸을 때처럼 엄마의 무당 일을 도우며 엄마에게 기생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 일만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심리학을 배웠고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같은 일을 하는 남자를 선택했었다.
지금도 엄마처럼 혼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엄마와 다른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주는 자신의 사생활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반성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 일이 자신이 브랜딩이 되고 유니크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개인이 무너지면 그대로 망하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회사에 들어가 개인이 아닌 조직의 일원으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축했던 돈이 생각보다 빨리 떨어져 가고 또 이혼하며 남편 이름의 통장에 있던 돈을 자신의 통장으로 돌려놓지 않았던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할 때쯤 인터넷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회사 간부들에겐 면접에 붙기 위해 자신의 책과 블로그를 어필했지만 입사를 하고 나서는 그저 일개미로 충실하자 생각했다.
여주가 블로그를 닫고 강연을 거절하자 빠르게 잊혀 갔다. 그렇게 자신의 유니크함을 매장하면서 얻는 대가가 매달 월급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했다.
https://brunch.co.kr/@jinnyim/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