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과 이혼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주처럼 혹은 족쇄처럼 여주는 엄마가 명문을 처음 보고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 재생되었다.
여주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옛 어른들 말 틀린 거 없어. 궁합이 좋아야 잘 살아."
여주는 그 말을 속으로는 비웃었다.
엄마가 궁합을 봐주고 좋은 날을 잡아줬던 부부들이 이혼하겠다고 찾아오기도 했고, 이혼했다고 찾아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금방이라도 다른 이유를 찾았는데 자식의 사주가 영향을 미쳤다거나 바람 난 상대 여자가 살이 낀 거라고도 했다.
어쨌든 통계상으로 보면 결혼하겠다고 찾아오는 경우보다 이혼하겠다고 찾아오는 경우가 적으니 궁합을 보고 결혼한 부부가 대부분 잘 사는 게 맞을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전체적으로 궁합을 보든 안보든 결혼해서 이혼하는 확률이 낮으니 결혼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통계가 된다.
이런 과학적 생각 때문에 여주는 엄마에게 명문과 궁합을 보고 결정할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혼하겠다고 통보하는 방법이 가장 낫다고 생각했다.
여주는 명문과 엄마가 만나기도 전에 '결혼할 남자'가 인사드린다고 말해버렸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본인에게 반대든 찬성이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명문을 만났고 명문과 헤어지고 딱 한 마디를 했다.
'여복 많은 놈.....'
그 말을 하는 엄마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엄마가 아니라 무당 같았다.
딸의 인생을 걱정하거나 새 출발을 축하하는 복잡한 마음의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직업 정신으로 객관적으로 남자를 평가하는 직업인 무당.
그리고 그때는 그 말을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천생연분'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 말을 명문에게도 전하면서
"자기야, 나 같은 여자 만난 게 자기의 여복 아니겠어?"
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결혼이 성공적이라고 믿었던 때는 여주가 만끽하고 있는 행복함은 본인이 그동안 공부한 심리학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보수적인 여성에 대한 프레임을 과학적으로 다 벗어난 후에 오는 행복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때는 엄마가 했던 '여복이 많은 놈'이란 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있었다.
명문이 외도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여주는 바로 '여복이 많다.'라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결혼의 실패는 내가 '복이 없어서'라는 운명적인 이유를 찾고 있었다.
'복'이라는 얘기는 유독 여자에게만 따라붙는다. 부모복, 남편복, 자식복... 등등. '박복한 년'이란 표현은 써도 '박복한 놈'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다.
막상 이혼을 겪고 보니 명문의 여복이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본인은 손대지 않고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여주와 은주의 대화로 정리된 이혼, 그리고 시어머니의 위자료 해결. 심지어 은주 뱃속의 아이도 여자 아이라고 했다.
남은 절차는 오로지 본인들이 법원에서 만나는 거였고 판사 앞에서 이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만 하면 되었다.
심지어 아이가 없으니 더 이상 길게 얘기할 것도 없었다.
"연사부는 어떻게 해?"
아이는 없었지만 공동으로 작업하던 블로그는 있었다.
"네가 알아서 해. 네 아이디잖아."
명문의 마지막 말도 무책임했다.
그 말에 화가 났다.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핸드백을 휘둘러 명문의 허리를 치고 말았다.
"네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니?"
생각해보니 첫 만남부터 그랬던 것 같다.
라디오 방송에서 '사랑'을 주제로 얘기한다며 남녀 작가 두 명을 초대했는데 남자 작가로 초대된 명문을 처음 만났었다. 명문은 달변가처럼 보이는 인상과 달리 의외로 말이 없었다.
"제가 글은 좀 쓰지만 말은 못 해서요."
라고 자신을 소개할 때 여주는 이미 방송이 끝나면 이 남자에게 질문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고 많으셨어요. 차 한잔 할까요?"
여주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다. 첫눈에 반했다고는 힐 수 없지만 첫말에 반해버렸다고는 할 수 있었다.
'글은 좀 쓰지만... 말은 못 해서요.'
라는 말이 이 남자는 내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내가 좋아도 쑥스러워서 먼저 말 안 할 테니 내가 말해야겠다는 암시에 걸린 것인지도 몰랐다.
"여주 씨가 좋으면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이지만 말 못 하는 남자의 최대한 긍정이라고 생각했고 배려라고도 생각했다.
결혼을 결정할 때도 그랬다.
"난 아침밥 타령 안 하는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난 아침밥 안 해줘도 되는데...."
"그럼 하자. 우리."
그렇게 만나지 3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내가 '아침밥'을 얘기했던 건 결혼해서 여자가 밥을 하고 남자가 돈을 버는 구시대적인 부부상에서 벗어나자는 의도였고 명문이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니 결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랑에서 결혼까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 비해 빠른 결정을 한 거라고 여주는 자신의 모든 결정이 옳은 것이라고 믿었다.
첫 만남부터 결혼까지 그리고 은주의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 '연사부'블로그에는 이 모든 과정이 로맨틱하게 쓰여 있다. 물론 대부분의 글은 여주가 썼다.
그런데 이제 와 복기하려니 로맨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명문의 유유 부단함이었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했던 여주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기획을 하고 있고 장단을 맞춰줄 배우를 하나 구한 게 아닌가 싶었다.
언젠가 명문은 왜 여자에게 꽃다발을 선물해야 하냐며, 오히려 콩나물 다발이 더 효용가치가 있는 게 아니냐고 하길래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명문은 콩나물이라도 사서 여주에게 건넨 적이 없었다.
연사부에 글을 쓰는 것도 그랬다. 여주는 만남부터 일상을 소소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명문은 아주 짧은 단상만을 남기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여주의 글보다 짧은 명문의 글이 임팩트가 있었는지 조회수도 높았고 댓글도 많았다. 그게 그냥 방법의 차이라고만 생각했다.
결혼 생활 동안 여주는 책을 두 권 쓰고 거의 매일 강의를 다니는 강행군을 하고 있었지만 명문은 단편 SF소설 하나를 썼을 뿐이었다. 물론 장편 SF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지만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누가 더 많이 주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이혼 앞에서는 뭐가 기브였고 뭐가 테이크였는지 계산해 보게 되었다. 왜냐면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해 내 잘못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남녀평등에 입각해 여주는 적극적으로 결혼을 했고 경제적으로도 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었고 또 같은 일을 하는 작가인 남편. 거기다 문제의 근원이 될 수도 있는 아이는 낳지 않는 조건.
이 결혼은 이상적인 결혼이어야 했고 또 평생 행복해야 했다.
행복의 '조건'은 완벽했는데 불행한 결혼 생활이 되고 말았다.
이혼 법정을 나와서 여주는 '연사부'의 마지막 글에 달린 댓글을 보았다.
'여주님, 요즘 글이 안 올라와서 너무 궁금해요. 명문님도 잘 지내시죠?'
'언니처럼 성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어요. 이번 주 강의에서 들을 수 있겠죠?'
'우리 남편은 결혼하고 나서는 한 번도 사랑한다고 한 적이 없어요. 명문님은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을까요.'
'다음 주에 결혼하는데 결혼해서도 여주님이랑 명문님처럼 연애하듯 살 수 있겠죠? 우리도 아기는 안 갖기로 했어요.'
평소라면 댓글에 댓글을 다는 것도 여주의 일이었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을 본다는 게 너무도 괴로웠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반성문을 보는 것도 힘겨운 일인데 이건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이 그저 자기가 잘났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만 같아서 역겹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삭제를 누르지 못하는 여주.
좀 전까지 명문을 향했던 분노가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이번엔 핸드백 대신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와장창 액정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바보 같았다. 핸드폰이 깨져도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쓴 글이 지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누구를 향한 원망인지는 알 수 없으나 누구도 답을 할 수 없는 그 질문을 속으로 삼키며 가슴을 치며 울었다. 서른여섯살의 마지막 밤이었다.
은비는 책을 빌리러 작은 도서관에 들렀다. 작은 도서관 입구부터 김명문 작가와의 만남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었다.
"엄마가 조금 늦게 전화를 해서 대기인데 혹시 모르니 기다려봐. 취소하는 사람 있으면 연락 줄게."
사서 선생님은 자주 책을 빌리러 가는 은비를 알아보고는 마치 은비가 김명문 작가의 북 토크에 꼭 오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해 주었다.
은비는 엄마가 북 토크를 신청했다는 말에 신이 났다. 최근에 엄마랑 외출한 기억이 없었다. 부디 취소하는 사람이 나와서 대기 순서가 오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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