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갖고 싶은 건 핸드폰

by 북도슨트 임리나

은비가 제일 갖고 싶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이 너무 갖고 싶어서 엄마도 졸라 보고, 아빠도 졸라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중학생이 되면 생각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중학생이 되면 사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겠다니.


며칠 전에 같은 반 친구인 지민이가 삼성 지플립을 갖고 와서 자랑을 하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백만 원쯤 한다는 최신 핸드폰을 사주는 부모님을 둔 지민이가 얼마나 부러운지 몰랐다.

엄마가 왜 핸드폰을 사주지 않는지 은비는 잘 알고 있었다. 핸드폰을 사주면 아이를 망친다고 오은수 박사님이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틱톡을 보려고 엄마의 핸드폰을 달라고 하면 엄마는 오은수 박사님이 나오는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들... 24개월까지는 절대 보여주면 안 되고요. 그 후에도 조심해야 해요."

은비도 오은수 박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걸 여러 번 들었다.


그렇지만 은비가 핸드폰이 없다고 핸드폰을 보지 않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보고 싶을 때마다 엄마 핸드폰을 달라고 하는 게 귀찮을 뿐이었다.

핸드폰 하나로 엄마도 쓰고 은비도 쓰는 셈인데 이럴 바엔 차라리 각자 핸드폰을 하나씩 쓰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엄마한테도 여러 번 말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잠을 많이 자는 바람에 그 시간에 은비는 핸드폰을 맘껏 볼 수 있었는데 요즘 엄마는 깨어 있는 시간도 많고 그러다 보니 핸드폰을 많이 쓰기도 해서 은비가 달라고 하면 엄마가 보는 게 있으니 기다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 은비는 어쩔 수 없이 책을 펼쳐 들고 엄마가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엄마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았는데 엄마는 '진여주', 엄마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었다.

은비도 호기심에 '진여주'를 검색했다.


엄마인지 아닌지 모를 검색 결과들 중에 책 하나가 보였다.

"빛나는 당신, 오늘도 사랑하라"라는 제목의 책이었고 '진여주'라는 엄마 이름이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엄마가 책을 썼다고? 엄마는 은비를 낳기 전에 회사에 다녔다고 했다. 도대체 엄마가 언제 책을 쓴 거지?

연도를 보았다. 2010년 은비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그럼 은비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작가였나?


"엄마, 엄마. 엄마. 작가였어?"

은비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달려가서 물었다.


"......... 응. 그랬지......."

엄마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는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안 써? 엄마도 김명문 작가처럼 애들 책 써봐. 엄마는 어른 책만 썼었나 봐. 엄마가 책 쓰면 나 막 애들한테 자랑할 거야."

은비는 정말 엄마가 예전처럼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은비는 그래서 어렸을 때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주었던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엄마는 은비에게 책도 읽어주지 않고 피곤하다며 잠만 자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여주는 은비가 '김명문 작가처럼 애들 책 써봐.'라고 할 때 그 말이 마치 가시가 되어 여주의 목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여주는 명문이 아이들 소설을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여주와 결혼 생활을 할 때는 본인은 SF소설만 쓰겠다며 다른 장르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특히 '연사부'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자기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 블로그는 간단하게만 쓰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래서 처음에 북 토크 현수막을 봤을 때 그 '김명문'이 그 '명문'인지 의아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핸드폰에 '김명문'이라고 입력하고 검색해 보니 바로 네이버 인물 사전이 떴다.

사진과 함께 아동문학가라고.

아동문학? 이 사람이 아동문학이라고?

SF소설을 쓰던 사람이니 못할 이유는 없지만 분명 결혼 생활 내내 '아이가 필요 없다'라고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여주와 아침밥 타령 따위 하지 않겠다며 결혼을 결정할 때 '바이러스'같은 인간을 늘리지 않기 위해 아이를 낳지 말자는 합의도 했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갖고 결혼을 하고 이제는 아동 소설을 쓰다니.

명문의 북 토크 현수막을 본 이래 자신의 분노를 정의할 수 없던 여주는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건 두 번째 '배신감'이었다. 첫 번째 배신은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라면 두 번째 배신은 아이는 귀찮고 불필요한 존재라고 하던 사람이 아이를 위한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거기다 세 번째 배신감도 추가해야겠다.

명문은 심지어 유명 작가가 되었다.


분명히 이혼 후에 몇 번은 검색을 해본 것 같은데 어느샌가 더 이상 새로운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만두었었다. 전 남편과 여주의 공통 지인은 이혼 후에 여주가 절연을 했고 또 여주는 회사 생활에 충실했기에 삶의 영역이 아예 달라져 누군가를 통해서라도 근황을 들을 기회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여주는 명문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인생의 낙오자로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 글을 쓰더라도 별로 히트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여주가 사람들에게 잊힌 것처럼 명문도 잊혔다고 생각했다.

'권선징악'을 실천하는 신이 있다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한 여자를 배신한 남자에게 신이 관대하다면 그건 신이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아동문학가 아래에는 그의 대표작으로 '가로 세로 탐정'과 함께 그 작품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있었다. 전남편이라서일까. 그 책이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의 책만이 아니었다. 그의 페이스북, 인스타 등등 알고 싶지 않은 그의 사생활들이 속속 펼쳐졌다.

그의 가족사진에는 명문만큼이나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은주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코로나 단계가 떨어지자마자 가족 여행을 다녀온 사진과 글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줄줄이 달린 댓글들. 다들 좋은 아빠라는 칭송이 자자했다.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는 여주 자신과 달리 명문의 화려한 부활을 보며 신은 남자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고,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는데 아직 그 신이 살아 있다면 자신이 죽이고 싶었다.

https://brunch.co.kr/@jinnyim/156


이전 05화해봤어요.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