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는 언젠가부터 엄마에게 아빠를 어떻게 만났는지 또 아빠가 엄마한테 어떻게 프러포즈했는지 자주 물어보았다.
은비는 뚱뚱하고 배 나온 아빠가 얼굴이 푸석푸석한 엄마와 사귀고 결혼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잘 생긴 남자가 예쁜 여자한테 사귀자고 하고 프러포즈도 하는 걸 자주 보았는데 집에 같이 살고 있는 엄마 아빠는 그런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엄마 아빠가 연애를 했다니 은비는 의심스러웠다.
엄마는 아빠를 처음 만난 날 신발을 뭘 신고 나갈까 고민했다고 했다. 오랜만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는데 마침 그 구두가 오래된 구두라 구두굽이 낡아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걸을 수가 없어서 당황했는데 아빠가 엄마를 업어줬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믿음직스러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아빠가 배가 나오고 뚱뚱해서 엄마를 업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 누가 먼저 프러포즈를 한 거야?"
"아빠가 엄마한테 했지."
아빠가 아무리 배가 나오고 뚱뚱해도 또 푸석푸석한 얼굴의 엄마한테 프러포즈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은비는 주말에 늘 자신과 놀아주는 아빠한테도 엄마 몰래 물어보았다.
"아빠, 아빠가 엄마한테 프러포즈했어?"
"응. 엄마가 너무 예뻤거든."
"정말?"
"그럼. 지금은 엄마가 아빠처럼 배가 나왔지만. 하하하하."
하긴 은비가 태어나기 전에 찍었다고 하는 엄마의 사진을 보면 지금과 다른 엄마의 모습이긴 했다. 화장도 진하고 옷도 화려하고 많이 웃고 있었다. 지금 엄마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은비는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엄마는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된 걸까. 몇 년 전만 해도 은비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은비를 바라봐주고 함께 놀러 가고 밤에는 책을 읽어주었다. 은비는 엄마가 다시 그렇게 자기를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신청했다는 '김명문 작가 북 토크'에 꼭 같이 갈 수 있기를 바랐다.
여주는 다린의 소개로 지금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느낌이 없었다는 것보다는 전형적인 평범한 남자로 보였다. 가을이라 긴 팔 셔츠와 색깔도 기억이 안나는 바지를 입은 그 남자는 전형적 한국의 40대 직장인의 이미지였다. 안경마저 평범했다. 원래 사랑이 시작될 때는 다른 모든 사람이 배경이 되고 그 사람만 주인공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남편은 그저 카페에 무수히 많은 배경 인물 중 한 명으로 보였다.
그렇게 별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첫 만남의 날, 마치 반전처럼 '구두'가 말썽을 일으켰다. 말썽인지 마법인지 모르겠지만.
여주는 회사를 다니면서 구두를 신지 않았다. 출퇴근을 편하게 하려고 어떤 신발을 신어도 5cm 이하의 굽을 선택 했다. 그러다 보니 하이힐을 몇 년 동안 신지 않고 방치했는데 소개팅이라고 구두를 신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물건이 시간이 흐르면 낡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눈에 보이는 모양이 그대로인데 그 안에서 썩고 있었다. 그래서 구두를 신고 만남의 장소인 카페까지 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카페에서 일어나 밥을 먹으러 갈 때 구두 굽이 한쪽 떨어져 나갔다.
그때 남편은 다짜고짜 여주를 업었다. 아무런 계산도 없이 그저 못 걷는 사람에 대한 재빠른 배려였지만, 그런 상황에서 여주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했겠지만, 그런 마음과 실천력을 가졌다면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 않더라도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첫 만남의 그 사건 때문에 두 번째 만남이 당연하게 이어졌고 '데이트'라는 이벤트가 여주의 일상에 들어왔다.
그렇게 데이트를 이어가던 세 달 후, 여주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무당도 자기 앞 날은 모른다는 말이 딱 맞았다.
여주의 엄마는 일주일 전에 여주에게 만나는 남자가 있는지 묻고 올 해는 삼재니 절대 결혼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어차피 당분간 결혼 생각이 없다고 대답한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엄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것도 기도를 하러 가는 산 길에서 중앙선을 넘어오는 트럭과 정면충돌을 하고 말았다.
남의 미래를 심지어 가족의 미래를 본다는 엄마가 바로 몇 초 후 자신의 충돌을 알지 못했다.
여주는 엄마의 소식을 듣고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의 친구라는 사람들도 평소에 못마땅했던 사람들이라 믿을 수가 없었다. 남자 친구였던 남편에게 결국 많은 걸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여주가 해야 할 많은 일처리를 도와주었다. 여자라서 남자한테 의지한 게 아니었다. 어쩌면 엄마가 돌아가셔서 천애의 고아가 된 기분이라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외로움은 남녀를 가리는 게 아니니까.
그런 남편에게서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 쉽게 승낙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오로지 엄마의 예언 때문이었다.
본인의 삶을 예측도 못하는 엄마가 남긴 말
때문이었는데, 엄마의 예언이 아니라 유언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올해 결혼하면 안 된다는 말이라기보다 신중하게 결혼하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렇지만 마냥 결혼을 미룰 수 없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회사에 무기한 휴가를 내고 있었다. 부모님 사망으로 낼 수 있는 휴가가 끝나고도 다시 회사에 출근할 수가 없어서 남은 연가를 일단 쓰는 것으로 부장과 얘기를 해두었다. 그렇지만 다시 회사를 복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여주는 혼자 살고 있었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 자연스럽게 남편이 머물게 되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삼우제까지 집에 함께 있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거의 동거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남편은 그렇게 여주의 삶에 들어왔다.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같이. 주인공이 있어야 배경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뀌어 배경이 없으면 주인공도 없다는 생각으로 바뀔 때쯤이었다.
수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두 번째 결혼이 자연스럽게 다가왔지만 올해 안에 결혼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 때문에 음력으로 날짜를 따져서 설이 지나 혼인신고를 했다.
그렇게 여주는 사회가 아니라 가정으로 들어갔고 1년 후에는 은비를 낳았다. 그리고 육아가 시작되었다.
작가에서 회사원이 되었을 때 부러웠던 '평범한 삶'으로 입문한 셈이었다.
남들이 사는 평범한 삶이 막상 자신의 것이 되고 보니 경쟁적이고 치열하고 바빴다.
여주가 경험한 육아가 그랬다. 주변의 엄마들과 SNS에서 보는 엄마들은 각종 정보를 모아서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주고 있었다. 돈이 없어도 육아는 장비빨이라고 좋은 아이템을 구매하기도 하고 아이가 똑똑해지길 바란다면 카드 할부로 전집을 사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모든 걸 초월하고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어 천천히 키우라고 하는 것을 믿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가 조금 빨리만 걸어도, 또 말을 빨리 해도 그것은 엄마의 성과가 되었다. 아이한테 어떤 것을 해줬길래 아이가 똑똑한지 정보를 캐고 또 캤다.
육아는 마치 정글 게임 같았다. 육아를 잘해야 엄마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만 같은.
여주는 '연사부'로 블로그를 했던 것처럼 육아에 대한 블로그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혼으로 인해 닫아버린 블로그에 대한 기억 때문에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공개로 육아에 대한 글, 은비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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