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삶을 다시 수정할 기회

by 북도슨트 임리나

여주는 자신의 실패한 삶을 다시 수정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남들과 다른 삶에서 실패했다면 이 번에는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 남편, 집안 살림이나 육아에 충실한 아내에 자신을 대입시키기로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은비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이었고, 그 딸을 남들 못지않은 나아가서는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것이 아이를 처음 키우는 엄마들의 환상이자 오류라 할지라도 현재 그것만이 자신에겐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여주는 우선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고 여기저기서 얘기를 들은 '책 육아'를 하기로 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아이에게 틈만 나면 책을 읽어주고, 그 나이에 읽으면 좋다는 책들을 검색했다.

육아 카페에도 가입했는데 그곳에선 책을 읽어줬더니 빨리 한글을 깨쳤다는 얘기부터 영재원에 다닌다는 예시들이 수두룩 했다. 여주는 은비가 평범한 아이라면 자신의 노력으로 영재가 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책을 읽어줄 때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주는 매일 목이 아프도록 책을 읽어줬다.

여주는 또 은비가 공부만 하는 아이로 자라지 않았으면 해서 동네 산책부터 시작해서 여행도 자주 다녔다.

누군가는 유난스럽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가정과 아이에게 쓰는 것이 자신의 선택한 삶에서 성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은비를 키우는 내용들을 비공개로 블로그에 쓰고 있었다. '연사부'를 올리던 블로그에 일단 쓰기로 했고, 은비가 태어난 후 연사부 글은 이미 삭제했다. 그렇게 과거를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은비 이야기만이 아니라 은비가 자라면서 겪는 엄마로서의 여주 이야기도 함께 올렸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지만 '아이를 키우며 버려야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잠', '식사', '친구' 등의 제목으로 아기를 키우기 전과 키우고 난 후 얼마나 엄마의 마음과 몸, 상황이 변하는지 써두었다.


그렇게 삼 년쯤 흘러 은비를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며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여주는 자신이 썼던 글을 모아서 책을 내고 싶었다. 슬슬 주부만으로는 자신의 인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도 있었지만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과연 이런 모습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윗집 여자가 정장을 입고 '아이가 혹시 시끄럽게 하는 건 아닌지 미안하다'며 아주 예의 바르게 사과를 할 때,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화장도 하지 않고 대충 걸쳐 입은 원피스로 마주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열등감이 느껴졌다. 분명 사과하는 윗집 엄마가 을인 것 같은데 왜 자신이 을인 것만 같은지.


그날이었을 거다. 분명히 자신은 '평범한 삶'을 살겠다고 스스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워킹맘'으로 보이는 그 여자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겠다는 것도, 남들과 같은 삶을 살겠다는 것도 그 '결심'과 '결과'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아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은 끊임없이 자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다시 작가가 되기로 했다. 아직은 손이 많이 가는 네 살 아이를 두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비공개 블로그에 올렸던 글 중에 '아이를 키우며 버려야 하는 것들'을 모아서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

전에 책을 냈던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또 다른 출판사에도 투고를 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출간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명문과 '연사부'를 운영하던 그 시절에는 출판사가 찾아와서 출간을 하자고 하지 않았던가.

경력단절은 회사원만이 아니라 작가에게도 적용된단 말인가. 아니면 트렌드를 읽고 있지 못한 자신이 문제인가 싶어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후배에게 자존심을 굽히고 연락을 했다.


"언니. 우리 출판사도 출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여주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은 몇 군데 출판사에 보냈는데도 연락이 안 와서 뭐가 문제인가 알고 싶은데...."

후배는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진실을 얘기했다.


"일단 언니가 그다지 유명인사가 아닌 것도 있고요. 그리고 아이도 평범하잖아요? 언니도 육아책들 봤죠? 엄마가 유명하거나 아이가 영재이거나, 아님 아주 핸디캡 있는 아이를 키우거나요. 한 마디로 그냥 아이 키우는 얘기는 너무 흔해요."


여주가 크게 착각했던 게 맞았다. '평범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일을 특별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세상은 아이들이 소중하다고 하면서도 '평범한 아이'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했다.

일단 자신의 원고가 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은비를 똑똑하게 키워보기로 맘먹었다. 꼭 책을 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은비를 낳았을 때부터 결심한 '잘 키우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지금은 4살이라 아직 영재성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최소한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노력한다면 아이는 영재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주의 노력과 달리 은비의 영특함이 보이지 않았다. 밤낮으로 책을 읽어줬지만 영재라는 아이들이 이미 한글을 뗐다고 하는데 저절로 뗀다는 한글은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여주는 한글 학습하는 어플을 깔아주어 여섯 살에 한글을 뗐다. 한글만이 아니었다. 영어 CD를 틀어가며 매일 들려주었지만 알파벳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은비는 그렇게 평범한 일곱 살이 되었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여주는 그제야 아이에게 자신이 무슨 기대를 하고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명문과 결혼해서 아이가 없는 딩크족으로 살아보려 했던 삶이 실패로 끝났고, 이번에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자고 생각했고 평범한데 여주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과 다른 삶, 남들과 같은 삶.

그 둘 중에도 답이 없다면 여주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여주는 그때부터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가 실망해서가 아니었다. 평범한 남편과 평범한 아이 때문에 실망하는 자신 때문이었다. 평범한 삶이라 해놓고 그 안에서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착각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명문은 달랐다. 명문은 아동문학가로 보란 듯이 성공했다.

무슨 차이였을까?

여주는 명문의 인스타그램에서 가족사진을 보고 놀라서 더 보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해서 책, 블로그를 찾아보았다.


명문의 블로그를 찾아서 글을 읽어보려는 순간 '바람 도서관'이라고 전화가 왔다.

"어머님, 북 토크 취소하신 분이 있어서 마침 두 자리가 비었어요."

"아~네."

여주는 당황하기도 했지만, 또 선뜻 명문의 북토크에 가는 게 좋을지 몰라서 애매한 투로 대답을 했다.

"은비하고 오실 거지요?"

재차 확인하는 사서의 목소리.

그 순간 여주는 은비가 가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네."

라고 대답했다.

"어머님 혹시 못 오시게 되면 꼭 연락 주세요. 지금 대기자가 많아서요."

여주의 불안한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사서는 그렇게 당부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전 남편의 북 토크에 가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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