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초대

by 북도슨트 임리나

'일상으로의 초대'

명문의 블로그 제목이었다. '일상의로의 초대'라는 제목에 걸맞게 명문의 일상이 적혀 있는 것 같았다.

여주와 결혼했을 때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작가는 소설 아니면 '잡글'은 도움이 안 된다며 자신은 '연사부'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래서 '연사부'에는 주로 여주가 글을 썼었다.

그런 명문이 '일상' 운운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블로그 제목 아래로 오늘 올린 '공지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출간 임박> 아이를 키우며 버려야 하는 것들-아빠가 쓴 육아 이야기


'아이를 키우며 버려야 하는 것들'이란 제목에 깜짝 놀랐다. 은비가 네 살 때 출간하려다 거절당한 그 제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명문이 이런 제목으로 글을 썼단 말인가.


제목을 클릭해서 내용을 봤다.

여주는 내용을 읽으면서 무언가 모를 기시감에 또 놀랐다.


'첫째는 아내가 키워서 몰랐지만, 둘째는 회사를 다니는 아내를 대신해서 자신이 키웠고,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이 완전히 달라졌고 인생을 배웠다'는 내용이었다.

추측하건대 첫째는 여주와 결혼 생활했을 때 임신했던 그 아이였고, 그 후 둘째 아이가 태어난 모양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아이와 은비가 동갑이었다. 은주도 명문이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회사에 다녔으리라. 그러니 당연히 둘째 아이를 명문이 키워야만 했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여주가 아이를 키울 때 명문도 아이를 키웠다니 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 글에 댓글이 몇 백개가 달려 있었다.

하나같이 아빠 육아를 찬양하는 글이었다. 그리고 딸들이 좋은 아빠를 두어 부럽고, 또 그런 남편을 둔 명문의 부인이 부럽다고도 했다.


명문이 그동안 블로그에 써 왔다고 하는 '아이를 키우며 버려야 하는 것들'이라는 카테고리를 클릭해서 제목들을 보자마자 여주는 경악했다.

'잠', '식사', '친구' 등 자신이 육 년 전에 썼던 글의 제목과 동일했다. 그리고 클릭해서 글을 읽었는데 거의 자신이 썼던 내용과 같았다.

여주는 자신의 비공개 블로그를 열어봤다. 거의 글을 통째로 베꼈고 다만 명문의 블로그에 올린 날짜가 다를 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싶었지만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주가 함께 했던 '연사부' 블로그의 비밀번호를 몇 년 동안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블로그를 함께 썼지만 아이디는 여주의 것이었고 또 명문이 은주와 외도를 할 때부터 신경 쓰지 않았던 곳이라 이혼 후 그 블로그를 명문이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명문은 여주의 블로그의 글들을 그대로 퍼 날랐고, 그 글은 '아빠가 아이를 키우며 쓴 글'로 특수한 이야기로 포장되어 엄마들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더구나 엄마보다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엄마보다 아이도 더 잘 돌보는 아빠로 말이다.

심지어 출간 예정이라는 글을 보니 출간 계약까지 한 모양이었다.

여주에겐 평범한 엄마의 평범한 아이에 대한 글이라서 거절된 글이 작가가 아빠가 되니 출간이 가능한 책이 되었다.


세상은 왜 이렇게 '평범한 여자'에 대해 무심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는 것일까.

시대를 앞서가는 여자에게 한 없이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그 스포트라이트가 여자를 주목받게 할 수는 있지만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어떠한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하는 '평범한 삶'은 여자가 아닌 남자가 하면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여자가 회사를 다닌다고 해서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데 남자가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 여전히 특별한 세상이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추앙하는 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다. '엄마'들이 '엄마'가 아닌 사람들이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더 믿고 좋아하는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엄마가 명문이 '여복이 많다'라고 했던 말은 틀렸다. 여자를 이용하는데 도가 튼 나쁜 남자일 뿐이었다.


이제 여주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주는 출간이 거절되고 무기력에 빠져 지내는 동안 누군가는 그 글을 훔쳐다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니.

우선 여주는 비공개로 있던 글들을 다 공개로 바꾸었다. 이렇게 누가 먼저 글을 올렸는지는 명확해졌다.


그리고 출간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증명을 쓰기로 했다. 주소는 출판사로 하기로 했다.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주의 공개된 블로그 url만으로 충분하리라.


내용증명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뜨는 그날 명문의 SNS가 모두 비공개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람 도서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정말 죄송한대요. 은비 어머님은 대기까지 하셨는데... 북 토크가 취소되었어요. 작가의 개인적 사정이라고 하는데 알아보니 저희만 취소된 것 같지는 않고요. 정확한 사정은 모르는데.... 암튼 취소가 되었다고 하네요. 저희도 빨리 다른 작가를 알아보고 있어요."


여주는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일이 하나는 생긴 것 같았다.


"저, 혹시요 이번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진여주'라는 이름으로 검색해 보세요. 제가 아이를 갖기 전에 쓴 책도 있고요. 또 아이를 키우면서 블로그에 쓴 글도 있어요. 혹시 저라도 괜찮으면...."

여주는 자신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작가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걸 상대방에게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여주가 오랫동안 빠져 있었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발이었다. 그리고 은비에게도 명문의 북 토크가 왜 취소되었는지 제대로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문제든 정면돌파가 최고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남들과 같은 삶이든, 다른 삶이든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여주 자신 그 자체로 살아갈 테니 말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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