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은 어떤지 몰라도 최소한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인생이라도 부러웠다.
학교를 진학하는 때가 있는 것처럼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며 그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삶.
예를 들면 '결혼을 했나요?'란 질문을 적당히 받고, '아이는?'이란 질문도 적당히 받고, '둘째는?'이란 질문도 적당히 받는 그런 인생 말이다.
여주의 인생은 '아이는?'이란 질문만 7년째 받는 삶이었다.
그때는 그 질문을 하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본인은 투사처럼 그 질문에 대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야만 '행복'할 거라고.
하지만 이혼 후, 회사에 취직해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홀로 섬처럼 지내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평범한 것은 불행한 것이고,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 것 또한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을 만들었으나 평생 고독했던 샤넬이 아니라 명절 때면 시어머니 욕도 하고 아이들의 시험 성적을 고민하고 가끔 맘충이라고 욕을 먹을지라도 그런 대한민국의 중년 여자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멀찍이 서라도 관찰하면서부터였다.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라서 알고 싶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삶이 훅 치고 들어오기도 했고 여주가 아무리 조용히 일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내뿜는 공기부터 읽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지각도 조퇴도 없이 직장에 나와서 일하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놀러 가서 카톡의 프사를 바꾸고는 했다. 점심을 먹을 때 '와이프가 육식 그만하랬는데...'라며 젓가락을 들고 머뭇거리거나 '큰 애가 중학생인데 수행평가 때문에 잠을 못 잔다'며 대한민국의 교육 환경을 성토하기도 했다.
여주는 김 부장을 보며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란 생각을 했고, 왜 자신은 저런 남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싱글인 한대리는 끊임없이 핸드폰으로 문자가 오고 저녁마다 약속이 잡혀 있었다. 남자 친구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같았는데 요즘 트렌디한 것은 죄다 꿰차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영어 스터디도 하고 있었다.
한대리의 대부분의 일들은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그게 또 부러웠다. 여주는 이혼 후 많은 관계들이 단절되었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회사와 집만 오가고 있었다.
갓 아이를 낳고 복직한 이대리는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오느라고 지각을 할 때가 많았다. 얼굴에 다크서클을 달고 살고 있었지만 자신보다는 이상하게 생기가 넘쳐 보였다. 가끔 전화로 부부싸움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살기가 아닌 생기로 느껴졌다.
퇴근하면 편의점에서 하겐다스 아이스크림과 맥주 한 캔을 사서 들고 들어가 노트북으로 다운로드한 영화를 보다가 잠드는 게 전부인 여주는 김 부장의 삶에도, 한대리의 삶에도, 이대리의 삶에도 공감할 수 없었고 대화에 낄 수도 없었다.
남편이 꼬박꼬박 벌어다 주는 돈으로 전업주부의 생활을 한다는 건 '복에 겨운 일'일지도. '복에 겹다'는 말도 이상하게 여자에게만 쓰는 말이었다. 여자가 조금이라도 편해 보이면 하는 말 '복에 겨운 팔자'라고. 남자한테는 복에 겨운 놈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복에 겨운 팔자는 남자보다 여자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 그런 평범한 여자들의 삶이 불행할 거라고 단정 지었던 스스로가 부끄러울 정도로 '평범한 삶'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
막상 겪고 보니 이혼은 차선이지 최선이 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혼을 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하고 다시 결혼 생활을 돌려보려고 한다. 하다 하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차선으로 이혼을 택하는 것이다.
흔히 맞고 사는 것보다 이혼이 낫다고 하지만, 비교 대상은 '맞고 사는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삶'이거나 최소한 '평범해 보이는' 결혼 생활이어야 했다. 그런 결혼 생활보다 이혼이 나을 리는 없었다.
명문과 헤어지며 다시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며 혹시 다시 결혼한다고 하면 성을 갈겠다고 친구인 다린과 술을 마시며 얘기했었다. 다린은 여주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삶으로 학습지 방문교사를 하며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는데 여주를 볼 때마다 '결혼은 안 하거나 늦게 하는 게 좋다'라고 입에 달고 살다가 이혼도 가장 먼저 축하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다린이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결혼을 칭송하며 남편의 사랑을 블로그에 적어가던 자신과 달리 만날 때마다 결혼이 얼마나 여자를 힘들게 하는지 열변을 토하던 그녀가 오히려 이혼하지 않고 있었다.
"돌싱이라고는 하는데 공무원이란다."
이렇게 전화를 걸어 남자의 정보를 얘기한 다린은 참으로 핵심적인 걸 잘 말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점이지만 여주가 공감할 만한 '돌싱'이란 단어와 마치 여주가 지금 평범한 결혼을 꿈꾸고 있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공무원'이란 본론까지.
그리고 머뭇거리는 나에게
"사십되기 전에 만나봐."
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여주는 다린이의 말에 아무런 저항 없이 돌싱이며 공무원인 남자를 만나러 나가고 말았다.
https://brunch.co.kr/@jinnyim/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