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먼저 이혼이란 말을

by 북도슨트 임리나

여주와 명문은 그 누구도 먼저 '이혼'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여주는 명문의 실수로 걸려온 핸드폰에서 들은 은주의 목소리에 대해 일단 섣불리 묻지 않기로 했다. 은주에 대해 묻는 순간 진짜 판도라 상자가 열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판도라보다 못한 자신은 닫을 타이밍을 놓치고 모든 것을 잃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명문을 잃는 두려움이 아니라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 즉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때문이었다.


일단 마음의 준비든 법적인 준비든 뭐라도 하고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터뜨려도 터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신이 뭔지 실체를 알 수 없었다.

흔히 얘기하는 여자의 경제력이라면 현재 여주가 우위에 있었다. 대부분의 수입은 여주에게서 나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혼 후는 과연 어떻게 경제력을 가져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물론 연애가 아닌 다른 글을 쓸 수 있었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연애가 아닌 이혼에 대한 얘기를 쓰면 더 잘 팔릴지도 모르겠다. 연애 상담으로 잘난척 하던 여자가 이혼을 하게 된다니. 이거야 말로 중이 제머리 못깎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까지의 동경이 아니라 더 큰 동정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냥 막연히 '나는 할 수 있다. 이혼 후에도 잘 살 거야.'라고 생각하며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혼을 상담해 오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대책'이 먼저라고. 그게 현명한 거라고. 실상 그렇게 남들의 대책에 대해서는 잘도 말하던 사람이 자신의 대책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여주가 연애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소재'를 택한 게 아니었다.


여주의 엄마는 무당이었다.

정확히 엄마가 어떤 계기로 무당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할머니로부터 들은 얘기는 여주가 태어나고 일 년쯤 되었을 때 신을 받지 않으면 여주가 위험해질 거라는 스승 무당의 얘기에 그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누구는 태어나보니 엄마가 손예진일지도 모르지만 여주는 태어나보니 엄마가 무당이었다. 여주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한복을 입고 있었고 절을 하고 있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런 엄마의 자식으로 할 일들이 아주 많았다. 여주는 철이 들기도 전에 무당 보조 역할을 해야만 했다. 제사를 준비할 때 돕거나 무당을 만나러 온 손님들을 안내하기도 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빨리 깨달은 게 있었다.


여자들의 고민이 단순하다는 것이었다.

많은 젊은 여성들이 남자 문제를 들고 엄마를 찾아왔다.

남자가 없어서 문제, 있어서 문제. 결혼 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편 문제가 자식 문제로 바뀌거나 아니면 계속 남편 문제였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여자들의 큰 고민은 남자라는 걸 알게 되었고 엄마가 무당으로 상담을 했다면 여주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엄마가 무당이라 여주는 엄마가 늘 챙겨주는 부적이며 정기적으로 건네는 말들, '꿈자리가 사나우니 일찍 들어오라'거나 '물을 조심해야 하니 이번에 바닷가 여행은 가지 말라'거나 '그 남자는 팔자에 돈이 없으니 만나지 말라'거나 쉽게 반항할 수 없는 금칙들로 옥죄며 살고 있었다. 어쩌면 요즘 표현으로 가스 라이팅을 당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엄마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아 여주는 신이 나기도 했다. 엄마는 나름대로 논리적이라고 하지만 학문적으로 무당은 '미신'이었다.

하지만 엄마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가 무당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전성기가 지나고 나서도 주변 사람들의 점을 봐주면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여주는 엄마와 다른 길을 걷고 싶어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여자들의 고민을 들으며 부적을 써주고 굿을 했지만 여주는 들어주는 것으로 돈을 받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명문과 헤어지고 자신의 할 일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은. 연애 상담과 강연을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인생의 운명적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런 망설임도 명문의 가출이 모든 것을 끝내게 만들었다.

눈앞에서 남자가 다른 여자를 택하는 꼴을 쉽게 볼 수 있는 여자는 없다. 남자를 쫓아가서 죽이거나 자신을 죽이거나, 여자들은 두 가지의 선택 중에 하나를 택한다. 쉽게 다른 남자를 만나면 된다는 '선택'을 하지 못한다. 그런 선택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그러나 여주가 명문을 쫓아가거나 자신을 죽이기도 전에 여주 앞에 나타난 것은 은주였다. 그리고 은주가 나타난 효과는 강력했다.


"언니. 저 임신했어요."


남자의 배신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임신이라면 그만한 결정타가 있을까.

그리고 여주가 그 말에 반신반의하며 은주의 배 쪽을 쳐다보는데 은주는 그 몸으로 무릎을 꿇었다.


"왜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왜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드냐고. 왜 날......"

여주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디서 봤던가. 소송에 불리하니 절대 상간녀 몸에 손대지 말라는데. 소송이 아니라 임신한 여자에게 손대는 건 법이 아니라 양심이란 더 무서운 잣대가 있었다.


"언니. 저 이 아이 키우고 싶어요. 아이를 지우려고도 알아봤어요. 그런데 지금 아이를 지우면 임신하기 힘들대요."

분명히 은주도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이 진심이 아니라 교활함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교활함이라 해도 애가 무기가 되는 이 상황에서 여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적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는데 공격은커녕 울어야만 했다. 같은 눈물이 누구에겐 무기이고 누구에겐 패배였다.


다음 날은 시어머니가 찾아왔다. 지금 사는 집의 전세금을 가지라고 했다. 뭘 준다는 건 뭘 뺏어간다는 의미이다. 명문이 전세금의 가치도 없는 남자 임에 틀림없지만 그 전세금은 자신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생각하니 명문의 가치라 하면 크고 내 가치라 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다. 그래도 그 전세금 덕분에 잎에 풀칠은 할 수 있었으니 감히 '다행'이란 단어를 떠올려 본다.


"네. 바람 작은 도서관입니다."

"저.... 김명...."

"아, 북 토크 신청하시려고요?"

여주는 인터넷에서 바람 작은 도서관을 검색했다. 바로 '전화'만 누르면 통화는 연결되지만 그 버튼을 한번 누르기까지 마음속에선 버튼을 눌렀다가 취소했다가 수천만 번쯤 반복했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는 동안에도 전화가 연결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전화가 연결되어 상대방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전남편 김명문, 당사자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겨우 여주가 명문의 이름 두 글자를 말했을 뿐인데 담당자는 바로 나머지 말을 다 해버렸다.


"네......."

"혹시 아이랑 어머님이랑 같이 두 분 참석하시나요?"

"네......"

"어쩌죠? 지금 마감이 되어서요. 대기만 가능하세요."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여기서 깨끗이 그만두자 싶어 전화를 끊으려는데

"저 대기하시겠어요? 요즘 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아서 금방 마감되네요."

라고 되물었다.

"네.........."

굳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게 어색하다싶어 어쩔 수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고 생각했지만 그제야 깨달았다. 김명문의 북 토크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아직도 명문을 죽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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