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한 번,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또 한 번.
하루의 반 이상을 의미 없이 잉여스럽게 보냈지만 하루의 끄트머리인 아이의 학원 버스가 오는 일곱 시에는 몸을 추스르고 외출 준비를 해야만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최소화된 외출 준비는 고양이 세수 정도가 아니라 침대에서 일어난 몸뚱이를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실었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쩔까 하는 걱정조차 지겨웠다.
씻지도 않고 거울도 보지 않은 채 집 밖의 엘리베이터 거울에서야 오늘 처음 자신의 모습을 본 여주는 얼굴을 확인하거나 옷매무새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거울에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지금 여주의 삶이 그랬다.
무엇이든 자신의 앞에 놓은 모든 것을 외면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그래서 살아지는 것이라고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면 반갑기보다 외면하고 싶어서 아이를 바라보면서도 뭘 했는지 묻지 않았다.
남편도 여주에게는 해 뜨면 없어지고 해지면 나타나는 무심한 달이었다.
매달 15일, 해와 교대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달이 보름달이 되는 것처럼 통장에 월급이 찍히면 남편이 회사를 다니고 있고 살아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돈을 한 달 내내 여기저기 이체하고, 카드값과 대출금이 빠져 나가고, 소비하면서 여주 자신도 살아 있구나 느낄 뿐이었다.
자신의 외면을 필살기처럼 여겨온 여주가 그날따라 외면할 수 없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그 짧은 사이, 마침 바람이 세게 불고 있어서 태극기가 아니라 현수막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가 퍼드득 아주 큰 새의 날갯짓처럼 들렸다.
그래서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목청껏 울어 젖히는 게 아닐까. 나 좀 봐달라고, 나 여기 있다고, 작지만 난 이 세상에 있다고.
‘퍼드득, 퍼드득, 펄럭펄럭.’
그 소리만 아니었다면 여주는 현수막을 지나쳤을 것이다.
‘김명문’ 북 토크-가로 세로의 만남, 바람작은도서관, 8월 20일 오전 10시’
처음 ‘김명문’ 세 글자를 보았을 때 혹시나 싶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현수막의 모든 글자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현수막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쓰인 ‘화수시 지원 프로그램-작가와의 만남’까지 다 훑어 보고서야 발검을 떼었다.
아파트 안으로 버스가 들어오는 소리, 그리고 버스가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 아이들은 요란스럽게 앞다투어 내리기 시작했고 은비는 늘 그렇듯 다른 아이들보다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차분히 내려오고 있었다.
여주는 언젠가부터 버스가 오면 버스 앞으로 더 다가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은비를 기다렸다. 분명 아이의 모습만 보여도 아이 쪽으로 발이 보이지 않도록 뛰어가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아이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먼저 움직인 적이 없었다.
‘엄마, 오늘 새로 오빠가 왔어.’
은비가 말을 걸었다. 여주는 의식적으로 리액션을 했다. 하기 싫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를 위한 리액션.
‘그래?’
‘그 오빠는 사이언스 스펠링도 몰라.’
은비는 이미 엄마를 기쁘게 하는 화법을 알고 있었다. 같은 반에서 자신이 뛰어남을 어필하면 엄마가 반응을 할까 던져봤다.
‘그래.’
여주의 반응은 딱 거기까지였다.
아이에게조차 입을 열기 싫었고 말 수를 아끼고 있었다.
은비는 더 이상 엄마에게 말을 하지 않고 영어 교재가 잔뜩 든 무거운 베닝을 어깨에 맨 채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은비는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눈은 바닥의 개미를 찾고 있었다.
어렸을 때 은비가 개미를 죽이려면 엄마는 ‘아가 개미가 엄마한테 가는 건데 네가 죽여버리면 엄마 개미가 얼마나 슬프겠어.’ 그렇게 말했는데 엄마는 지금 은비의 삶 속에서 떠나버린 것만 같았다. 은비가 뭘 보든 뭘 하든 엄마는 눈여겨보지도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가끔 엄마가 보는 유튜브에서는 높고 밝은 오은수 박사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요.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 거예요. 엄마는 아이를 자신도 모르게 방치하고 있어요. 방치가 학대보다 더 나쁜 거 아세요? 엄마, 엄마도 울어도 돼요. 하지만...’
그러면 은비는 엄마 핸드폰을 몰래 갖고 와서 ‘흔한 남매’를 검색했다.
남매가 아닌데 남매로 연기하고 있다는 것쯤은 은비도 알고 있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실은 남매인데 부부를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엄마가 낮잠을 자다 깨면 은비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챘다.
화도 내지 않고 아무 말도 없어서 마치 장난감을 교대로 갖고 노는 것처럼 이제는 엄마 차례인가 보다 생각했다.
바닥의 개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은비는 고개를 들어 고양이를 찾았다.
아파트 안에는 캣맘이 있어서 고양이들의 먹이를 갖다 놓는 작은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는 늘 길고양이들이 오가곤 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은비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길고양이를 먼저 발견하면 ‘은비야. 저기 고양이 있다.’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고양이 키우고 싶냐고 묻기도 했다. 은비는 엄마 말에 마치 내일이라도 고양이가 생길까 싶어서 매일매일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도 했다.
이제는 엄마 눈에 더 이상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지 은비가 고양이를 발견하고 엄마 손을 놓고 뛰어가도 엄마 특유의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가던 길을 갈 뿐이었다.
마침 고양이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달려가는 것을 발견해서 엄마의 손을 놓고 고양이를 쫓아갈까 하던 차에 그 위에 걸린 현수막에서 낯익은 글자를 발견했다.
‘가로 세로 탐정’
가로는 남자 아이고 세로는 여자 아이인데 그 둘이 싸우고 협력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었다.
그 책이 왜 현수막에 쓰여 있을까 나머지를 읽어봤다. 엄마의 걸음이 느려서 엄마의 손을 잡고도 현수막을 읽으면서 지나갈 수 있었다.
‘김명문’ 북 토크-가로 세로의 만남, 바람작은도서관, 8월 20일 오전 10시’
은비가 좋아하는 작가가 우리 아파트 작은도서관에 온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엄마는 이 책을 알 리가 없었다. 어렸을 때 책을 자주 읽어주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인가 아무 책도 읽어주지 않고 책도 사주지 않아서 학교 도서관에서 혼자 빌려 보고 반납한 책이었다.
엄마한테 가보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늘 그랬듯 이번에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그 책을 모르듯 그 작가를 알리도 없고 또 은비가 가고 싶다고 해도 엄마는 ‘그래?’ 혹은 ‘그래.’라고 말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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