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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Aug 30. 2023

훔친 시간에 읽고, 숨은 시간에 써라

[끌리는 제목, 울리는 문장]을 쓰려면

당신과 함께 있는 것, 당신과 함께 있지 않는 것이
내가 시간을 측정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처럼>>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훔친 시간'이라고 했다.

마치 연애할 시간이 없어서 연애를 못한다는 말처럼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말이 성립이 안 된다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올랜드 디즈니 월드 리조트를 여행할 때였다. 올랜드 디즈니 월드 리조트는 디즈니 테마파크만 해도 네 곳이 있는 곳이라 우선 '비지터 센터'라는 곳에 모두 내려서 각각의 테마파크로 셔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나는 혼자 여행 중이었고 한국의 가족들이 마침 버스 안에 같이 있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과 부모였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여행에 대한 어린저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 중 한 아이가

"엄마, 오늘 해리포터 100페이지까지 읽을게요."

라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교과서가 아닌 소설을 페이지를 정해놓고 읽는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이란 재미있으면 읽는 만큼 읽는 게 아닌가. 만약에 100페이지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대로 덮고 내일 읽을 수 있을까?

그 당시 나는 아이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그 아이의 독서법이 영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를 책 읽기로 시키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책을 페이지를 정하거나 권 수를 정하고 읽는다는 것을. 특히 <<해리포터>>는 그 책을 읽는 것이 마치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을 보장하는 것처럼 아이가 영어 책을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이 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책을 시간이나 분량을 정해놓고 읽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하루에 한 시간은 책을 읽어야지라고 계획을 세우거나 오늘 200페이지까지 읽어야지 라는 다짐을 해본 적도 없다. 오로지 책이 재미있어서 틈틈이 읽으려 하거나 잠을 못자면서 읽는다. <밀리의 서재>의 나의 독서 통계를 보면 주로 새벽에 읽는 것으로 나오는데 아마도 그 시간이 내 여건 상, 가장 시간을 훔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없던 시간마저 만들어 내고, 잠을 줄여가며 데이트를 하듯이 훔친 시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좀처럼 책을 손에 집어들 수가 없다.


그렇다면 글 쓰는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사람들은 '글을 어떻게 쓰는지' 질문할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전에 '언제'를 물어보고 싶다.

'언제 글을 쓰시나요?'라고 말이다.

책을 읽는 시간마저 훔친 시간인데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쓰는 시간'은 과연 어떤 시간이란 말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글을 쓰는 시간은 어딘가로 숨어야만 가능했다. 때로는 버젓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잠시 숨쉴 틈을 찾듯 숨을 틈을 찾아 몇 줄이라도 끄적거려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책상으로 숨는 시간부터 회사를 다니고는 일에서 잠시 숨는 시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잠시 가족들로부터 숨는 시간,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상황들로부터 숨어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글쓰는 시간이 되었다.

여행을 가서도 글을 쓰려면 좁은 숙소에서 한쪽으로 숨어야 했고, 때로는 너저분한 주방의 식탁 한쪽에 숨어야 했고, 아이를 재운 컴컴한 안방 옆의 작은 테이블에서 숨어야 했다.

사람들이 날 찾지 못하게 숨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이렇게 세상과 내 주변과 숨바꼭질을 하며 머리 카락이 보일 땐 들키고 잘 숨으면 조금 더 오래 글을 쓸 수 있었다.


그 숨은 시간이 글이 되고 책이 되어 독자를 만날 때, 나의 숨은 시간이 누군가의 훔친 시간과 겹쳐질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공범자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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