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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Aug 27. 2023

글쓰기라는 회피로의 환대

세상의 현실적인 일들이 결코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린 예술가는
현실적인 활동(Activity)세계에서 빠져 나와
상상의 세계 속에 스스로 숨어버린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마크 로스코, <예술가의 리얼리티>


나에게 글쓰기는 '회피'다.

생활 신조 또한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못 피하는 것만 '대응'하자임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안된다는 것을 내 스스로 증명하며 살고 있다.

이혼만 피하자 생각했는데 이혼했고, 재혼은 꼭 피해보자 했는데 재혼했고, 그 다음은 육아라도 피해보자 했는데 입양했고, 아무리 아파도 암은 안 걸리겠지 했는데 암도 걸렸다.(지금은 회복하는 상태이고 건강하다. 내일 정기 검진 결과를 들으러 간다.)

작년에는 집안 일을 피해보자는 취지에서 온갖 가전제품과 가사 서비스를 체험했다. 그러나 여전히 집안 일을 100% 피할 수 없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다.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이유를 명확하게 얘기하는 분들이 부러웠다.

강의를 하는 나는 오히려 왜 글을 쓰는지 답을 찾지 못하고, 어렸을 때부터 썼으니까 그저 계속 쓰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개인적 고찰의 이유도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라는 타인을 위한 이타심의 실현도 스스로를 납득할 만한 이유가 아니었다.

이쯤되면 작가로 태어났다는 '소명'을 거들먹거려 볼까도 생각했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글쓰기보다 돈이 더 잘 벌리는 일이 있다면 바로 접어두고 그 일을 할 만큼 소명의식도 없었다.

일례로, 나는 포털, 게임 등의 회사에서 웹기획자로 10 년가까이 일했다. 글과 아주 관련이 없는 일은 아니지만 '작가'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고, 그 당시 언젠가는 글을 쓰겠다는 다짐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시간은 늘 나를 '글쓰기'로 데려다 놓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을 했고, 대학을 다닐 때도 글쓰기로 소소한 상금을 받았고, 졸업 후엔 책도 내고 소설가와 결혼도 했다. 그와 이혼 후, 글쓰기와 절연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다시 책을 쓰고,  글쓰기 강의까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쯤되면 사람은 저마다의 인생에서 출구를 못찾는 미로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출구로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국 다시 미로가 시작되는 영원한 뫼비우스의 띠같은 미로 속에 갇혀 사는 것만 같다.


어렸을 때부터 집을 떠나고 싶었다.

늘 집안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웠다. 우리 집에는 웃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고, 또 언성이 높아지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아니 강요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입다물고 있는 것이, 심지어 못들은 척 하는 것이 나의 생존법이었다. 그 당시 며느리 생존법이라 하는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장님 삼년이 어쩌면 내가 태어나서 겪은 9년의 세월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9살부터는 내가 그 소란을 피하는 방법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몸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서 영혼은 집을 떠나곤 했다. 영혼이 집을 떠나는 방법은 책읽기와 글쓰기였다.

현실에 있으면서 현실을 피하는 방법, 그렇게 내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처음 동시를 써서 라디오에 보냈고 방송을 탔다.

그 시의 내용은 '동생의 눈물엔 자석이 있나봐요. 동생이 울면 엄마가 당장 달려와요.'라는 것으로 아직도 기억한다.

나를 외면하는 엄마가 동생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시로 써서 라디오에는 보냈지만 정작 엄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던 말조차 나는 인지하지 못한 채, '내 시가 라디오에 나왔다'라는 것만 뿌듯했다.

그 시를 엄마가 들었는지, 엄마가 들었다면 나보다 동생을 예뻐한다고 생각한 나의 속마음을 엄마는 생각해보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현실 ‘회피’의 글쓰기가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여전히 나에게 글쓰기는 '회피'다.

살면 살수록 답을 찾기 어려운 인생에 대한 회피이고

가까워진 것 같으면 멀어지는 관계에 대한 회피이고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홀쭉한 내 주머니에 대한 회피이고

다 키웠다 생각하는 순간 속을 뒤집는 아이에 대한 회피이고

익숙하다 싶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나타나는 내 일에 대한 회피이다.


그런 내가 요즘 즐겁다.

다름 아니라 이렇게 나처럼 글 속으로 회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정면 승부하는 것도 연대가 필요하지만 회피도 연대가 힘이 된다.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나 혼자만 피하고 싶은 게 아니구나.

그 동안 내가 혼자 앉아 있다고 생각한 '숨어 있기 좋은 동굴'의 테이블에는 손님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어도 나를 환대하는 친구는 있을 수 있다.

이제 나는 준비하려고 한다.

'회피로의 환대'를.


작가는 다른 사람보다 글쓰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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